집에 도착한 지우는 침대에 풀썩 누웠다. 푹신한 침대의 촉감, 지우를 반기는 엄마의 표정, 소파에 앉아 유튜브를 보는 언니의 쾌활한 웃음소리까지, 모든 게 평소와 같았다.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지잉.
지잉, 지잉.
아직 꿈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깨우쳐주듯 진동이 울렸다.
지우는 조금 두려웠다. 지금 지우는 선배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엿보고 있는 셈이었다. 게다가 선배는 이런 상황을 상상도 못하고 있을 터였다.
의도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는 지우도 할 말이 있었다. 선배의 ‘마음’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곳은 잠금장치가 걸린 일기장이나 로그인을 해야 하는 메일함이 아니라 지우의 휴대폰이었다.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전송되는 메시지를 지우는 그저 읽을 뿐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건 분명 지우에게는 기회였다. 승호를 좋아하는 여자애들 중에는 아이돌 못지않게 예쁜 애도 있고 전교 석차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애도 있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지우가 그 애들보다 선배와 가까워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승호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주말에 어디에서 뭘 할 건지 안다면 지우에게도 조금의 가능성은 생기지 않을까.
한번만, 마지막 딱 한번만이야.
지우는 눈을 질끈 감고 휴대폰 화면에 불을 밝혔다.
화면에는 지우와 함께 있는 동안 승호가 떠올린 생각들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승호는 지우가 주문한 떡볶이를 조금 맵다고 생각했고, 푸드코트에 사람이 많지 않아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그건 지우도 같이 한 생각이었다.
뒷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보고 승호가 부럽다고 생각한 건 뜻밖이었다. 그 자리에 가족이 있었는지 커플이 있었는지 지우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지우의 관심은 오로지 승호 한 명에게만 집중돼 있었으니까.
최근 전송된 메시지부터 확인 버튼을 하나씩 누르며 읽다보니 어느새 미처 확인하지 못한 몇 시간 전 메시지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공연 중 전송된 메시지들이었다. 승호의 대사와 다른 배우들의 대사가 교차되어 등장했다. 간간이 공연과 관계없는 승호의 생각이 섞여있었다.
메시지를 하나씩 읽어 내려가던 지우는 놀라고 당황해서 말문이 턱 막혔다. 승호의 이마에 난 상처의 비밀이 거기에 있었다. 승호가 감추고 있던 진실이 지우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손가락이 떨리고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 어쨌든 무대에 섰으니 됐어.
확인.
- 막이 오른다. 이제 시작이야.
메시지는 거기서 끝이었다. 공연이 막 시작한 때였다.
승호가 무대에 오른 순간. 지우가 빈자리를 찾다가 겨우 공연장 맨 뒤 철제의자에 앉은 순간. 지우는 그 순간으로 기억을 되감았다. 그때 지우 손에는 모자에서 떼어낸 태그가 있었고 인쇄된 큐알코드를 휴대폰 카메라로 인식하자마자 막이 올랐다.
지우는 공연 때부터 쭉 입고 있던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구겨진 종이가 만져졌다.
큐알코드 뒷면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 모자사용법 】
1. 태그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모자는 사용자의 생각데이터를 텍스트로 전환하여 휴대폰으로 전송합니다.
2. 이 모자는 성능개선을 위한 테스트용 제품입니다. 모자가 인식한 생각데이터는 수집되고 분석됩니다.
3. 판매자는 수집한 생각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정보를 포함한 고객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4. 수집 및 분석을 마친 생각데이터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완전히 파기됩니다.
5. 양도 또는 대여를 할 경우 반드시 동봉된 ‘모자사용법’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세요. 판매자는 이를 이행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모자였다. 지우를 이 꿈같은 세계로 데려온 건. 모자를 들고 성급히 가게 밖으로 달려 나올 때 점원이 뒤따라 나오려던 게 떠올랐다. 배웅이겠거니 생각했던 그 행동은 돌이켜보니 할 말이 있어서였다.
그러니까 오늘 벌어진 일은 꿈이 아니었다. 사고였다.
선배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아야 할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지우가 선배의 비밀을 알아버린 것도 드러날 거였다. 알리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사정을 일방적으로 들킨 선배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선배와 가까워지기는커녕 지금보다 어색한 관계로 아주 멀어질지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새 메시지가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지우는 선배와 함께 건물에서 나와 먼저 버스에 올라탄 순간을 떠올렸다. 지우가 버스에 오르자마자 선배는 더 이상 의식해야할 사람이 없다는 듯 모자를 벗어 가방에 넣고는 손가락을 상처 가까이 가져갔다.
- 따끔하네.
집에 와 휴대폰을 열었을 때 맨 위에 얹혀있던,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전송된 메시지였다. 마지막 메시지였다는 건 그 후로 선배가 다시 모자를 쓰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선배가 내일 모자를 돌려주겠다고 했으니 지우만 가만히 있으면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지잉. 진동이 울렸다.
- 지우, 잘 들어갔겠지?
선배? 지우는 순간 놀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었는데도 오래 안 사이처럼 편했어.
이어서 온 메시지에 지우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답장을 뭐라고 써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선배의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 이 모자처럼 말야.
모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방금 읽은 건 선배가 보낸 메시지가 아니었다. 모자로부터 전송된 선배의 생각데이터였다. 선배가 다시, 모자를 썼다는 의미다.
메시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 내일 점심에 모자를 돌려주면서 솔직히 말해볼까. 가까워지고 싶다고.
지우는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쿵쿵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