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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Oct 27. 2024

은경과 기봉 (2)

기봉은 당혹스러웠다. 눈을 부릅뜨고 쏘아붙이는 주과장의 태도 때문은 아니었다. 주과장이 때로 까칠하고 성미가 급해서 그렇지 마음은 따뜻한 사람인 걸 기봉은 잘 알았다. 지난 12년간 기봉은 단 한 번도 주과장에게 실망한 적이 없었다. 주과장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직원이었다. 한두 마디 조언으로도 상사의 의중을 충분히 파악하고 잘못이 있다면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는 영리한 후배였다. 그런 주과장에게 불만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주과장은 지금 기봉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기봉이 보고를 받을 때마다 인상을 쓴다는 이유에서였다. 주과장은 기어이 기봉의 마음을 직접 읽겠다며 상술이 빤히 보이는 모자까지 구했다. 아니, 상술이 빤히 보인다는 건 어제까지의 생각이었다. 모자를 쓴 직후에 주과장의 휴대폰으로 전송된 단어가 ‘모기’라니. ‘마음을 읽는 모자’는 단지 마케팅용 문구만은 아니었던 거다. 


“이 모자 반품한다지 않았어?”


주과장이 내민 모자를 보고 기봉은 흠칫 놀랐다. 어제는 주저 없이 집어썼던 모자였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반품하려고 갔죠. 근데 불량이 아니래요.”

“부, 불량이 아니래?”

“네. 그래서 말인데요. 팀장님 혹시 모기 관련 프로젝트 진행하세요?”

“응?”

“모자가게 사장님이 그러더라고요. ‘모기’에 지나치게 몰두해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못한 것 같다고.”

“그, 그런 말을 해?”

“그러시던데요? 아무튼 불량이 아니라니까 한 번 더 믿어보려고요. 자, 얼른요.”


주과장의 다른 한손에는 보고서가 들려있었다. 그러니까 다시 내민 모자는 보고를 받을 때마다 모자를 쓰기로 한 약속을 지키라는 의미였다. 기봉은 모자를 선뜻 받아들지 못하고 멀뚱멀뚱 있었다.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참다못한 주과장이 다그쳤다.


“...... 혹시 저 마음 다칠까봐 그러세요?”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모자가 불량이 아니라니까 걱정되시냐고요. 제가 팀장님 진심을 알고 상처받을까봐.”

“아냐. 주과장이 상처를 왜 받아. 그럴 일 없어.”


기봉의 강한 부정이 되려 인정하는 말로 들린 모양이었다. 주과장의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팀장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다고 할 테지만 기봉은 알았다. 주과장이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고 있다는 걸.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해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못한 것 같다는 주과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요즘 기봉은 수시로 떠오르는 모기 생각 때문에 정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가 어려웠다. 보고를 받을 때는 물론 중요한 회의에 참석해서도 수시로 모기 생각이 웽 날아들었다. 한번 떠오른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가 정작 떠올려야할 업무 관련 생각들을 모두 밀어내버리곤 했다. 


모기가 기봉의 인생에 끼어든 건 작년 9월, 그러니까 아파트를 사고부터였다.


부동산이나 주식투자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던 기봉이 쉰이 다 되어서야 아파트를 산 건 회사 때문이었다. 기봉은 몇 년 전부터 자신이 회사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월급은 조금씩이나마 매년 늘었지만 회사에 대한 자신의 기여도는 오르는 월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봉이 밤을 새우며 쓰는 기획서를 후배들은 AI의 힘을 빌려 한두 시간 안에 뚝딱 써냈다. 회의 때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쪽도 젊은 후배들이었다. 대체로 엉뚱하고 빈틈 많은 아이디어였지만 기봉은 그마저도 떠오르지 않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하는 자신이 이제는 수명을 다한 기계처럼 여겨졌다.

기봉이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건 기봉 자신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젊은 직원들 무리에 자신이 등장하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는 걸 여러 번 느꼈다. 직원들이 웃음기를 거두고 급히 처리할 일이 갑자기 생긴 듯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기봉은 스스로를 겉돌고 있다고 느꼈다. 팀원들이 자기를 ‘거름망’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는 것도 전부터 알았다. 계산이 빠른 젊은 팀원들에게 기봉은 별 능력도 없으면서 자신들이 하는 일에 태클이나 거는 눈엣가시인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봉의 입사동기 열 중 여덟은 일찌감치 회사를 나가 중견기업에서 한 자리씩을 꿰차거나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남은 둘 중 하나는 핵심부서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하더니 작년 말 임원으로 승진했다. 기봉이 여태 잘리지 않고 버틴 건 잘 나가는 그 동기 덕인지도 몰랐다.

봐주는 것도 정도껏이지, 능력도 없으면서 언제까지나 회사에 붙어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봉은 염치도 눈치도 없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퇴사 이후를 떠올리면 걱정이 앞섰다. 젊은 사람들은 투잡이니 부캐니 하며 직장에 다니면서도 돈을 곧잘 번다던데 기봉은 회사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친구들처럼 퇴직금을 털어 사업을 할 자신도 없었다. 연봉을 낮춘대도 이제와 기봉을 받아줄 다른 직장이 있지도 않았다.


부동산 중개업자로 자리잡은 동기에게서 연락이 온 건 작년 가을이었다. 평소 소주만 마시던 동기가 웬일로 양주를 한 병 주문하고는 자기 고민을 늘어놓았다. 회사를 나오기 전 대출을 한도껏 받아 집을 여러 채 질렀는데 얼마 전 실거주 한 채를 남기고 몽땅 처분을 했다는 거였다. 불만은 세금이었다. 차익이 너무 커서 내야 할 세금이 소형 아파트 한 채 가격에 맞먹는다는 거다. 자신이 처한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에 기봉은 어떻게 맞장구를 쳐야할지 몰라 양주만 홀짝였다.

“너는? 아직도 그 동네 사냐?” 

동기가 물었다.

“그렇지 뭐. 전세 보증금이 올라서 다른 동네로는 이사도 못가.”

“뭐? 전세? 집을 여태 안 샀어?”

“못 샀지. 전세보증금 내기도 벅찬데 무슨.”

사실이 그랬다. 기봉과 아내는 벌써 십수 년째 매달 월급에서 얼마씩을 떼어 아파트 구입자금으로 꼬박꼬박 저축해왔다. 문제는 통장잔고보다 빠른 속도로 치솟는 아파트 가격이었다. 3년이면 살 수 있을 것 같던 아파트는 불과 몇 달 사이에 15년을 모아야 살 수 있을 가격으로 훌쩍 뛰어버렸다. 매매가가 오르자 전세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아파트 구입자금은 고스란히 오른 보증금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집을 사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냐. 요즘 20대들도 아파트 하나씩 갖고 있다니까? 회사 나오기 전에 무조건 집부터 사. 너, 거기서 나오면 대출 받기도 힘들다?”

“대출?”

“그래, 대출. 회사 다닐 때 담보대출, 신용대출 최대로 끌어다 일단 지르는 거야. 너 작년 이맘때도 내가 같은 얘기했지? 검색해봐라. 지금 너 사는 아파트 그때보다 2억은 올랐을 걸?”

기봉은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열어 아파트 가격을 검색했다. 가파르게 우상향 중인 그래프가 나타났다. 동기 말대로 지난 한 해 동안 2억 이상 올라있었다. 기봉은 머릿속에서 2억을 365일로 나눠보았다. 기봉이 며칠을 일해야 버는 돈을 집주인은 가만히 앉아서 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억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음날부터 기봉은 부동산을 줄기차게 드나들었다. 아파트야말로 퇴사 후 인생을 책임져 줄 동아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를 구입해 몇 년 살다가 딱 2억만 오르면 팔 작정이었다. 퇴직 후에는 지방으로 내려갈 계획이었으므로 지방 아파트를 사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쓰면 되겠다는 계산이었다.

열 군데가 넘는 아파트를 둘러본 끝에 기봉은 P아파트를 계약했다. 주변 아파트에 비해 매매시세가 평균 2천만 원 가량 낮았고 매물도 여러 건 나와 있어 꼼꼼히 둘러보고 결정할 수 있었다. 도시 외곽에 위치했지만 회사까지 버스로 40분이면 닿는 거리인데다 지은 지 8년이 갓 지나 비교적 깨끗했다.

무엇보다 기봉 부부의 마음에 든 건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연못이었다. 기봉은 연못에서 한가로이 노는 물고기들을 볼 때면 큰 걱정 하나를 해결한 자신의 여유로운 마음 상태를 마주하는 듯했다. 연못의 물줄기는 산책로를 따라 단지 내 곳곳으로 뻗어있었다. 기봉과 아내는 매일 저녁 물줄기를 따라 걸었다. 전세 살던 아파트에서는 없던 습관이었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P아파트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산책을 다녀올 때마다 기봉 부부의 팔다리에는 대여섯 군데씩 붉은 자국이 생겼다. 아파트는 사람에게만 살기 좋은 곳은 아니었는지 유독 모기가 많았다. 기봉의 아내는 하룻저녁에 열세 군데를 물린 적도 있었다.

모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활개를 쳤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면 모기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팔다리를 사정없이 흔들어야했다. 엘리베이터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몇 초 동안 모기가 날아들까 봐 기봉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기봉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모기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모기 문제의 심각성은 가려움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연히 가입한 입주민 카페는 온통 모기 얘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전기모기채 공동구매 글부터 모기 때문에 이마에 북두칠성이 새겨진 4살 아이 사진까지, 입주민 카페가 아니라 모기 카페나 다름없었다. 

기봉은 눌러보지 않아도 내용이 뻔히 보이는 제목들을 빠르게 넘기다 한 게시물에서 정지했다.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뿐 아니라 심장까지도 정지하는 기분이었다.


- 우리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 진짜 이유


글이 게시된 날짜는 기봉이 이사 온 바로 다음날이었다. 기봉은 떨리는 손으로 게시물을 눌렀다. 게시물의 맨 위에 뜬 건 아파트 시세 그래프였다. 전체적으로는 아름다운 우상향 그래프였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른쪽 끝부분이 아래로 꺾여 있었다. 글쓴이는 그 부분을 빨간 동그라미로 강조해두었다. 마우스를 쥔 기봉의 손이 떨렸다. 

글쓴이는 P아파트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길 건너 K아파트와 비교했다. 주변 환경과 시공사의 인지도, 시설 수준이 모두 비슷한데도 P아파트가 K아파트에 비해 2천만 원이나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거였다. 정체기에 이 정도 차이면 하락기에는 무자비하게 벌어질 거라고 글쓴이는 전망했다. 다음으로 K아파트와 매물건수를 비교한 도표가 등장했다. P아파트의 매물이 월등히 많았다. 기봉은 매물이 다양해 선택권이 많다는 중개인의 말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주변 아파트보다 가격이 낮은 것도 싸게 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만 여겼다. 두 가지 모두가 인기 없는 아파트의 징후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뒤통수가 얼얼했다. 

기봉은 모니터 앞으로 더욱 바짝 당겨 앉았다. 심장이 두근거려 한 글자씩 차분히 읽을 수가 없었다. 검지를 굴려 긴 글을 빠르게 훑었다. 우리 아파트 가격이 옆 아파트보다 낮은 이유, 앞으로 더 떨어질 거라고 글쓴이가 확신하는 이유.

그건 바로 ‘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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