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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엄마표 집밥

by 귤예지 Mar 17. 2025

오늘 점심은 '집밥'이다. 집밥은 집에서 먹는 밥일까 집에서 만든 밥일까? 오늘은 둘 다 해당된다. 엄마 집에서 얻어 온 반찬을 곁들여  집에서 먹는 밥.


엄마 집에 다녀온 후에는 늘 냉장고 안이 풍성하다. 지난 연휴에도 엄마는 모처럼 들른 내 손에 들려 보내려고 음식을 잔뜩 준비하셨다. 엄마의 흡족해하는 얼굴을 보려면 바리바리 다 싸와야겠지만 나는 귀한 음식을 기한 내 먹어야 하는 숙제처럼 여기고 싶지 않고 어영부영하다 상해서 버리는 건 더욱 질색이라 추리고 추려 꼭 먹을 것만 가져오는 편이다.

그마저도 아침 일찍 나가 저녁 7시가 지나서야 귀가하니 좀처럼 먹을 일이 없다. 많지 않은 양인데도 도통 줄어들지 않아 회사에 도시락을 싸갈까 고민하다가 식은 밥을 먹기는 또 싫어서 마음을 바꿨다.

오늘 점심은 집에서 먹자.

아침부터 그렇게 마음을 먹었더니 오전 내내 설렜다. 소불고기랑 진미채볶음이랑 김이랑 같이 먹어야지, 후식으로 식혜까지 먹어야지, 드라마 보면서 먹어야지, 맛있겠다, 막 이러면서.


점심시간, 부리나케 주차장으로 향하며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 나 집에 감.

구구절절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의미하는 바를 눈치챈 남편이 답장을 보내왔다.

- 응. 난 D형이랑 밖.

'나 집에 감'. 내가 가니 너는 오지 말라는 의미다. 점심시간에 집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의미다. 점심시간만이라도 혼자 보내고 싶다는 의미다.

남편이 숨겨진 의미를 바로 이해한 건 그 또한 그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엄마로 아빠로 아내로 남편으로 누군가의 상사로 또 부하로 주어진 역할을 치열하게 수행하다 보면 혼자 있는 순간이 아쉽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5분이면 닿는 아파트 주차장. 직주근접에 붐비지 않는 도로, 지방소도시의 장점이다. 퇴근시간에는 빈자리가 없어서 멀찍이 세워야 했던 차를 출입구 바로 앞에다 주차하고 유유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집 도착.

소불고기가 팬에서 익어가는 동안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밤부터 갇혀 있던 공기가 빠져나가고 아직은 차가운 3월의 바람이 훅 들어온다.

커다란 접시에 흰 밥을 얹고, 잘 익은 소불고기, 그리고 진미채볶음까지.

진미채볶음은 내가 어려서부터 한결같이 좋아한 반찬이다. 특히 우리 엄마표 진미채볶음은 손으로 찢은 듯 두툼한 진미채를 써서 씹는 재미가 있으면서도 쪄낸 뒤 양념에 버무리는 방식으로 만들어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엄마가 직접 담근 고추장과 조청의 콜라보. 딱 질리지 않을 만큼 달고 흰 밥 생각날 만큼 매콤한 맛. 하, 당장 냉장고를 열어 진미채를 꺼내먹고 싶어진다. 글을 쓰는 지금은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인데.


밥상 위에 남은 아이들 아침 먹은 흔적을 치우고 내 수저를 놓았다. 멀쩡한 식탁을 두고 굳이 작은 밥상을 택한 이유는 티비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드라마를 앞에 두고 혼자 먹는 밥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요즘 보는 드라마는 '폭싹 속았수다'. 50년대생 애순과 관식의 다사다난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드라마다. 보고 있으면 애순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애순 못지않게 없는 집에서 태어나고 없는 집에 시집와 힘들게 살았던 우리 엄마. 일생을 글로 쓰면 굵직한 이벤트만 엮어도 책 다섯 권이 부족할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이제껏 몇 마디 회상으로 간단히 요약되고 말았던 엄마의 과거가 애순의 삶을 통해 생생히 재현되는 걸 보며 먹먹한 기분이 자주 든다.

오늘 회차에서는 성인이 된 애순의 딸이 등장했다. 자기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며 중년의 엄마에게 모진 말을 쏟아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이야 한국 드라마에서는 단골이지만 들을 때마다 가시처럼 날카로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엄마의 대답이 뜻밖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행복했어. 엄마 인생도 나름 쨍쨍했어. 그림 같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다고."

애순의 딸이 이 대답을 듣고 어떤 마음이었을지 알 것 같다. 

다행이다, 너무나 다행이야. 속으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거다.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엄마인 내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까?

애 키우랴 회사 다니랴 죽어라 고생만 한 엄마로 기억되고 싶진 않다. 희생의 아이콘, 안쓰럽고 딱한 엄마로 기억되고 싶지도 않다.

'엄마는 나 키울 때 어땠어?' 묻는 딸에게 나는 애순보다 더 자신 있게 대답하고 싶다. 

엄마는 진짜 행복했어. 너희 키우면서도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어.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친구들도 자주 만났어. 좋다는 데는 다 가고 맛있는 건 다 먹고, 진짜 재밌게 살았어.

좋은 엄마이고만 싶진 않지만, 좋은 엄마이기 위해서매 순간 즐겁게 살고 싶다. 훗날 돌아본 내 삶에도 그림 같은 순간, 이왕이면 밝고 화사한 그림 같은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림 같은 순간이 뭐 별 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면 되겠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집에서 엄마가 해주신 반찬을 먹으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드라마를 보는 순간도 내겐 충분히 그림 다.

근데 이 드라마는 아무래도 점심에 보면 안 될 것 같다. 너무 슬퍼서 막 눈물이 날 것 같다. 

울면 안 되는데, 나는 다시 일하러 가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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