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점심시간 사용설명서
2009년, 신입으로 막 입사했던 그 해 나의 근무지는 울산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모인 지역 내 아는 이라고는 서로뿐인 부서원들과 함께였다. 우리는 매일 점심을 우르르 나가서 같이 먹었다. 식당과 메뉴를 정하는 건 일행 중 가장 지위가 높은 본부장님이나 팀장님 몫. 주로 콩나물국밥, 부대찌개, 청국장, 돼지국밥 같은 해장용 메뉴들이었다. 신입인 내게도 물론 역할이 있었다. 자리마다 숟가락 놓고 컵에 물 따르기.
선배들은 뜨거운 국밥도 어찌나 빨리들 드시던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나는 더 먹을 수 있는데도 배부른 척 숟가락을 넌지시 내려놓곤 했다.
밥값 계산도 막내인 내 담당이었다. 카카오톡 정산하기가 없던 시절, 아직 신용카드도 만들지 않은 신입사원은 잔고가 간당간당한 체크카드로 밥값을 결제하고 오후에는 선배들 자리로 수금을 다녔다. 다 같은 메뉴를 먹은 날에는 계산이라도 편한데, 그렇지 않은 날은 받아야 할 돈이 저마다 달라 애를 먹었다. 개중에는 현금이 없다며 다음으로 미루는 얄미운 선배도 있었다.
지금은 치사하고 서럽다 싶은 순간들도 그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이어져 온 문화와 전통,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규칙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서 불평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2016년, 400여 명이 근무하는 본사로 왔다. 같은 건물에 동기도 있고 지역에서 친했던 선후배들도 꽤 있었다. 출근하는 순간부터 점심시간이 기다려졌다. 오늘은 또 어떤 맛있는 걸 먹을까. 구내식당을 두고 굳이 회사 밖으로 나가 맛집을 찾아다녔다.
점심시간이면 우리 회사 로비는 밥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달력의 맨 첫 줄에는 그날의 밥 친구를 적어두곤 했는데, 근무년수가 쌓일수록 아는 사람도 많아져서 나중에는 아직 열지도 않은 다음 달 달력까지 점심약속이 적히곤 했다.
로비에서 밥 친구와 만나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에 나는 미리 식당에 전화를 걸어 메뉴를 주문하곤 했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더 이상 수저 놓는 걸 깜빡할까 봐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아도 되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고 회사에서의 내 직위도 달라졌다. 카카오톡 정산하기 기능 덕에 밥값을 나눠 계산하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점심메뉴가 다른 사람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일도 이제는 거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다 맞춰주겠다는 듯 전에 없던 메뉴들이 생겼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다양한 음식을 앞에 두고 할 일은 그저 입이 아프도록 떠드는 것뿐이었다.
신입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호사스러운 점심시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누구도 시킨 적 없이 자발적으로 이어 온 이 점심시간 루틴이 숙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게.
상대방 사정으로 점심약속이 깨진 날에 내가 아쉬움보다는 해방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는 걸 깨달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적절한 소재를 찾아 나누는 대화는 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도.
예전부터 해왔기에 그냥 해오던 많은 일들처럼, 점심시간도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방식인지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걸 문득 알았다. 내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마냥 즐거워만 하는지, 매일 고칼로리 음식을 먹는 게 충분히 만족스러운지,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긴 한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메뉴 선택권은 더 늘었을지 몰라도, 점심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신입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루틴을 깨는 방법은 또 다른 루틴을 만드는 것.
습관적으로 잡던 점심약속을 멈추기로 했다. 안부를 주고받거나 업무 관련 대화의 마무리에 예의상 건네던 '밥 한번 먹자'는 인사도 그만두었다. '누구'랑 먹을지 고민하는 대신, '어디서', '무얼'하며,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따져보니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고 미뤘던 일들을 도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먼저 가방에 넣고만 다니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한 장이라도 더 읽으려면 동선을 줄여야 했다. 회사 건물 안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공간을 찾았다. '읽을 책'이 하나둘 '읽은 책'이 되었다. 흥미로운 영상을 발견하면 저장해 뒀다가 천천히 볼 여유가 생겼다.
모두가 만족하는 메뉴를 정하려면 아무래도 개개인의 기준에서는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게 된다. 혼자 보내는 점심시간에는 최선을 고를 수 있다. 같이 먹는 사람을 배려하느라 먹고 싶은 걸 양보할 일도, 내키지 않는 걸 먹을 이유도 없다.
아침이나 저녁은 대충 때우면서도 점심만큼은 배가 고프거나 말거나 정식으로 갖춰먹던 방식도 고수할 필요가 없어졌다. 밥 대신 컵라면이나 집에서 가져온 떡, 냉동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도 자주 있다. 그마저도 배가 고프지 않은 날에는 패스한다. 점심을 챙겨 먹지 않은 날에도 아무 문제 없이 살아지는 걸 경험해 보니 지금껏 필요 이상으로 넘치게 먹고 살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있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는 시간.
혼자 보내는 점심은 정말이지 휴식시간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디폴트값이 '혼자'가 되고 보니 이제는 다른 사람과 함께 먹는 점심이 되려 특별해졌다. 진심으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날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 신중하게 고른 맛있는 점심을 먹는다.
다가오는 화요일에는 출산을 앞둔 후배와 먹기로 했다. 듣고 싶은 얘기도 많고 해주고 싶은 얘기도 많다. 모처럼 근사한 점심을 먹을 그날을 소풍을 기다리듯 들뜬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혼자인 시간을 소중히 대했더니 함께인 시간까지 덩달아 소중해졌다.
'혼자'인 덕분에 '함께'가 더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