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점심시간 사용설명서
한 주 동안 소진되는 건 체력만은 아니다. 일과 육아, 두 개의 바퀴를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침 없이 돌리려면 페달을 잠시도 멈출 수가 없다. 그렇게 바쁘게 살고도 한주가 지날 무렵이면 채워졌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소모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주말이면 은근히 욕심이 났다. 책이든 운동이든 사람과의 만남이든, 나를 채울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채워지고 싶은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꼬박 10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낸 아이들도 늘 부족했다. 엄마와의 대화, 스킨십,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간절했다.
먼저 채워지는 건 언제나 아이들 쪽.
평일에 제대로 해주지 못한 반찬을 만들고, 밀린 빨래를 하고, 놀이터에 가고, 이틀 중 적어도 하루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찾아 외출했다.
일요일 밤이면 잠든 아이들 옆에서 다 떨어진 샴푸나 치약, 유산균 같은 걸 구입하면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들곤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이들이 무탈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다독여야 했다.
평일 점심시간을 사수하자 주말이 달라졌다. 하루 한 시간씩 단 몇 장이라도 책을 읽고 글로 쓸 소재를 궁리하고 혼자 오락실이나 동전노래방에 다니면서부터다.
주말을 대하는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딱 맡아두었더니 주말 정도는 너그럽게 양보할 수 있게 된다.
김유진 작가는 책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에서 새벽시간은 어떤 일을 해도 잃는 것이 없는 인생의 보너스 타임이라고 했다.
'점심시간'도 그렇다. 어떤 방식으로 쓰더라도 잃는 것이 없다. 과거의 내 점심시간은 불과 일주일만 지나도 뭘 했는지 누구와 뭘 먹었는지 떠오르지 않는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쓴다고 해서 아쉬워할 사람도 미안해야 할 대상도 없다. 습관처럼 함께 밥을 먹던 동료들에게는 나를 대체할 수 있는 밥 친구들이 충분히 많다. 가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약속을 잡고 만나면 된다. 습관처럼 가지는 만남보다 어쩌다 생각이 나서, 가끔 함께 하는 점심이 훨씬 특별하고 나누는 대화도 풍성하다.
잃는 것은 없지만 얻는 것은 있다. 그런 시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 된다.
언젠가 남편이 돈 문제로 투덜댄 적이 있다.
"돈을 벌고 있는데도 벌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
각자 정해진 용돈을 받아 쓰니 돈을 벌면서도 학생일 때와 다를 게 없다는 점이 남편의 불만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플렉스 계좌를 만들어주고 100만 원을 입금한 뒤 해운대 신세계백화점에 데려갔다. 갖고 싶은 건 뭐든 고르라고, 돈 버는 기분을 제대로 느껴보라고 했다. 예산을 초과하면 카드를 내어줄 의향도 있었다.
쇼핑을 마친 남편의 손에 들린 건 구두 한 켤레였다. 플렉스 계좌에는 아직 80만 원이나 남아있었다.
"플렉스하고 싶다더니?"
"응. 다 한 건데? 내가 갖고 싶은 거 다 산 거야."
남편에게 필요했던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비싼 물건이 아니라, 언제든 원하면 갖고 싶은 걸 살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마음의 결핍을 채우는데 필요한 건 대단한 게 아니다.
날 위해 쓰는 점심시간이라고 해서 아주 특별한 걸 하는 게 아니다.
책 몇 장, 영상 몇 분, 가끔 밖에 나가서 놀기.
그 한 시간이 뭐라고, 내 몫도 챙기며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주말 아침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스터디 카페에 다녀오고 싶은 마음,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숨바꼭질하는 대신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덜 든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오롯이, 기꺼이 몰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