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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낫배드파더 Aug 30. 2022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수족구

아이는 두 돌 무렵까지 법정 감염병 3개에 걸렸다. 시간 순서대로 하면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코로나19, 수족구. 가장 지독했던 건 마지막에 걸린 ‘수족구’였다. 이름만 들어보면 별것 아닌 잡병 같은데, 대단한 위력을 가졌다. 코로나19쯤은 그냥 가벼운 감기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병에 걸리면 40도까지 열이 오르고 손과 발과 입에 열꽃이 핀다. 소아과 의사는 “수족구가 뭔지 알아요? 손과 발, 입에 발진이 생겨요. 그래서 수족구예요. 근데 꼭 거기에만 피는 건 아니고”라고 말했다.


아이 열은 39.5도까지 올랐고, 해열제를 써도 38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하필 일요일이었다. 38도 이상의 고열이라 신속항원검사를 받은 뒤라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휴일에도 진료하는 동네 병원을 검색해 찾아갔다. 분명히 소아과 항목이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영유아는 진료할 수 없다고 했다. 실랑이할 여유가 없었다.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 보건소에 전화했다. 마음이 급했다. 말은 두서없이 쏟아졌다. 보건소 직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어느 동에 사는지 물었다. 이어 일요일에도 진료하는 가장 가까운 소아과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문자로 보내줬다.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그를 껴안았을 것이다.


소아과 의사는 신속항원검사를 위해 푸른 라텍스 장갑을 끼면서 “수족구 같은데”라고 말했다. 그는 긴 면봉을 아이의 코 깊숙이 집어넣었다. 아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곧 의사는 “이것 봐. 역시 코로나 아니네”라고 했다. 그는 아이 목구멍을 1초 정도 들여다보더니 곧바로 “수족구예요”라고 말했다. “염증이 목에서 바깥으로 슬금슬금 넘어오는 걸 보니 이제 막 시작한 거예요”라고 했다. 아이가 지난 4월 이미 코로나에 걸린 적이 있다고 하자 “감염 후 6개월까지는 잘 안 걸린다고 보면 된다”라고 했다. 그제야 어린이집 가정통신문에서 ‘수족구가 유행 중이니 주의하셔라’라는 내용이 있었던 게 기억났다. 가정통신문에는 쓸데없고 한가한 소리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두 번, 아니 세 번 읽어야 한다.


코로나의 시대에 다른 질병들은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다. 서운했던지 수족구는 대단한 패악질을 부렸다. 일주일 간의 격리 생활은 롤러코스터 같았다. 아이의 열은 병원에 다녀온 지 하루 만에 잡혔다. 나는 이때 다행스러워하며 안도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더 큰 게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눈 아래와 볼에 작은 열꽃이 한두 개 솟았다. ‘이러다 말겠지’하고 생각했다. 사람은 불행이 자신을 피해 갈 것이라 믿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곧 허벅지에 어른 손바닥 정도 크기로 발진이 퍼졌다. 다시 소아과에 데려가니 의사는 “이제 시작”이라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내가 “뭐라고요?”라고 되묻자 의사는 “하루 이틀 지나면 더 심해질 거예요”라고 쐐기를 박았다.


곧 발진은 몸통을 제외한 팔다리와 입 주위, 손과 발 전부에 퍼졌다. 목구멍에도 염증이 심했다. 아이는 밥을 삼키지 못했다. 평소 원샷하던 우유도 몇 모금 마시는 게 고작이었다. 의사는 “수족구가 무서운 이유는 밥을 못 먹어서 탈수 탈진 증세가 오는 거예요. 계속 못 먹으면 링거를 맞아야 할 수도 있어요”라고 했다. 의사의 조언대로 목 넘김이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였다. 아이스크림 한 입, 차갑게 식힌 죽 한 입을 번갈아가며 줬다. 이런 ‘괴식’이 있나.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아이스크림과 죽의 ‘환장 콜라보레이션’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이는 일주일 만에 나았다. 대부분의 발진은 흔적 없이 가라앉았다. 어린이집에 다시 보내기 위해서는 의사의 판정서가 필요했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의사의 판단을 기다렸다. 다가올 다음 주의 내 운명은 그의 한 마디에 달려 있었다. 의사는 “이제 어린이집 가도 됩니다. 목에 흔적이 좀 남았는데, 다 나았어요”라고 말했다. 수감 생활을 마치면 이런 기분일까. 아내는 내 표정 변화를 포착하고는 “얼굴에 갑자기 여유가 생겼다”라고 놀렸다.




일주일 내내 아이를 병간호하는 일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몹시 고통스러웠다.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격리 중이니 놀이터에 데려가거나 산책을 할 수도 없다. 책을 읽어주거나 같이 그림을 그리며 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육아 전문가들은 ‘아빠는 아이와 몸으로 많이 놀아주세요’라고 말한다. ‘이 사람들아, 일주일 내내 해봐. 그게 되나’하고 소리치고 싶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TV나 다른 영상을 무한정 보여줄 수도 없었다. 잠깐 몸이 편안할 수는 있다. 그런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괴롭다. ‘계속 보여주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바늘처럼 심장을 콕콕 쑤시는 기분이다. 주중에 한 번은 아내에게 “너무 지쳤다. 가출하고 싶다”라고 철없는 문자를 보냈다. 결국 아내는 맷집 약한 남편 때문에 하루를 재택근무했다. 나와 아내는 서로의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어머니들은 혼자서 다 키웠다는데, 도대체 어떤 세월을 보낸 걸까”하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수족구와 싸우면서 나는 또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는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깊어졌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이 다리를 촘촘히 뒤덮은 열꽃을 보면서 속상해진 마음은 날 선 목소리로, 신경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아이도, 아내도 예민한 나의 반응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기다려주기로 했던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자꾸만 쇳소리를 내며 재촉했다. 직장에서 일하는 아내에게는 계속해서 불평 섞인 문자와 사진을 보냈다. ‘애가 죽을 쏟았어’ ‘계속 울기만 해’ ‘집 나가고 싶다!’ 이런 메시지들을 수시로 보냈다. 아내가 괴로워진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했다.


아이에게 부모다운 부모가 되는 일은 잠깐의 다짐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란 걸 깨닫고 있다. ‘조금은 부모가 되어 가는 건가’하고 긴장감이 조금 풀릴 때면 여지없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일들이 닥쳐온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반성에 반성을 쌓아가면서 그렇게 부모가 되어가나 보다.


아이를 간병한 일주일의 시간에 점수를 스스로 매겨보자면 ‘C0’ 정도가 될 것 같다. 재수강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재수강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절대 없다. 궁금해서 아내에게도 점수를 물어보니  ‘A0’라는 답이 돌아왔다. 후한 점수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유는?(왜 ‘A+’가 아닌지??)”이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내가 봤을 때는 잘한 것 같은데, 아이한테 화낸 걸 속상해 하는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나는 이렇게 남편을 사랑하는 동시에 객관성도 잃지 않는 훌륭한 아내와 살고 있어 행복하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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