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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Apr 19. 2023

(1) 글, 안 써봤는데요





  도 부캐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글쓰기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돕는/안내하는 일입니다. 요즘은 직업도 멋지게 네이밍을 하니 이런 직업을 스토리 크리에이터라고 하는데, 내가 하는 일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주는 일이니 광부 '마이너(miner)에 가깝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글쓰기 코치를 시작한 건 저의 본캐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는 12년째 대학생들과 지내고 있어요. 공부와 발표에 찌든 학생들에게 글쓰기 과제까지 내는 소위 ‘피곤한’ 교수지요. 처음 글 과제를 냈을 때 학생들의 반응도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졸업 제작까지 해야 하는 졸업 학기에 매주 리포트를 내라고요?”


  그래도 저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오전 9시 1교시 수업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이라면, 그것도 피곤한 수업인 것을 알고 온 배포라면 어쩌면 이 과제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지요. 매주 서로 다른 주제를 주었습니. 첫 주에는 ‘가장 맛있었던 음식’, 그다음 주에는 ‘그 사람의 미소’, 그다음 주에는 ‘잊을 수 없는 사람’…. 주제에 맞는 철학 개념도 연결해 주었습니다. 풍크툼, 아르카익 스마일, 대타자 같은 단어를 글로 녹여보라고 했습니다.  


  첫 주가 되었습니다. ‘가장 맛있었던 음식’에 대한 글, 정성스럽게 빼곡히 채운 A4용지가 내게 왔습니다. 어떤 학생은 강원도 군부대에서 제설 작업 후 먹은 꽃게 라면을, 어떤 학생은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끓여주셨던 손칼국수를, 홀어머니 아래 자란 학생은 새벽에서 밤까지 일하느라 도무지 얼굴을 볼 수 없는 어머니가 한밤에 끓여주신 된장찌개를 썼더군요.


  하나하나 정성껏 읽고 밑줄을 그어 돌려주었습니다. 강력한 문장에는 파란 줄을, 달리 써보기를 권하는 문장에는 주황색 줄을……. 매 수업 학생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내가 들고 들어간 삼십여 장의 과제를 보고 있었습니다. 피드백에 그다음 글을 더 정성껏 썼고요.


 매주 두 개의 좋은 글을 골라 읽어주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글을 다 읽고 나서 작가 000이라고 글쓴이를 밝히면 야단법석이었어요.

“우와~ 네가 저런 글을 썼다고?”

 작가라 불리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후드티 밑에 파묻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작은 축제였습니다.


  “한 번도 글을 안 써봐서요.”

오늘도 첫 수업에 온 분으로부터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글의 단맛은 써보기 전에 모르지요. 그 단맛에 이르게 하는 여정이 스토리 코치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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