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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낫띵nothing Oct 27. 2024

<나도임> 나의 취약점 때문이었다.

나는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도망친 임상심리사입니다. 

어느 익명의 나르시시트 피해자를 상담할 때의 일이다. 익명의 무료상담의 경우는 공간(온라인)과 시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 중심으로 한다. 하지만 이분은 전문가 못지않게 나르시시스트의 증상과 내면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다. 심지어 해결책도 정확히 알고 계셔서 내가 상담해 드릴게 별로 없었다. 문제 해결 중심상담과는 맞지 않지만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신 거 같아 일단 들어주기로 했다. 그분의 나르시시스트가 한 행동과 말 그리고 그러는 이유를 한참을 설명하시다가 갑자기 말이 뚝 끊겼다. 

[..............]

"듣고 있어요. 계속 얘기하시면 됩니다"

[..............]

"괜찮으세요?"

[사실은.. 제가 심리상담사거든요...]

"그러시구나, 저에게 직업을 말해주는 이유가 있으시죠?"

[네...]

그리고 다음 말을 할 때까지 침묵하며 기다렸다.

[불쌍해요. 그 사람이 너무 불쌍해요. 다 알아요. 너무 잘 알아요. 왜 그러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족도 아니고 그냥 헤어지면 되잖아요. 안 볼 거예요. 안 볼 건데 마음이 너무 아파요. 제가 심리상담사라는 게 약점이 됐어요. 이해가 되어서 욕 할 수도 없어요. 다시 절대 안 보겠다고 장담할 수도 없어요. 저 어떻게 하죠?]

"................."

이번에는 나 자신을 돌아보느라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저분은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이 약점이었을까? 그냥 측은지심이 높은 사람은 수도 있다. 힘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상담사가 되지 않았을까? 모든 심리 관련 종사자가 그렇지는 않다. 또한 심리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도 저럴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 약한 부분이 하나 이상 존재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안다는 건 인생 전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중요하다. 


나르시시스트에게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고 마음이 약해지는 포인트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취약점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나르시시스트가 제공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 흔들리는 이유는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감정 없는 로봇처럼 이성적으로 잘 대응하다가도 참을 수없는 분노 포인트가 있을 수 있다. 돌덩이처럼 후버링에 넘어가지 않고 잘 버텼는데, 어떤 포인트에서 갑자기 무너지기도 한다. 분노, 연민, 공포, 애착 중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연민이라는 감정에 약한 사람도 그 포인트가 다 다르다. 누구는 눈물에 약하고, 누구는 풀에 죽어있는 나르시시스트를 보며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다. 어떤 이는 불안정애착유형이라 자신을 무시하는 나르시시스트에게 감정이 동요가 될 수 있고 어떤 이는 회피형 애착유형이라 매달리는 나르시시스트에게 감정이 동요될 수도 있다. 그들의 다양한 비난 중에도 유독 참지 못하고 감정이 튀어나오는 내용이 있다면 기억해둬야 한다. 




원인은 네가 나르시시스트라서,
그런데 나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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