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10)
병원에서 PK실습 학생들을 찾는 방법은 그림으로 간단하게 나와 있으니 참조 하시면 되겠다.^^ 인터넷에 떠도는 그림인데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만들었다.
보통은 의과대학 3~4학년 기간 중 약 1년 좀 넘는 기간 동안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들을 따라 다니면서 현장실습을 하는 의대생들을 말하는 데 PK 시절이 환자를 어떻게 보는지 어렴풋이나마 감을 익히는 시간이다.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 : 열 번째 이야기 - 정신과 병동에서 PK 실습
정신과적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뇌에 병이 생긴 것이다. 간에 병이 걸린 사람을 탓할 수 없듯이 뇌도 우리 몸의 장기 중 하나일 뿐이므로 뇌에 병이 생긴 것이 비난 받거나 터부시 될 만한 일은 아니다. 다만 뇌는 그 사람의 성품에도 영향을 끼치므로 때로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비칠 수 있어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우리 몸의 중요한 장기에 병이 생긴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위가 아프면 검사 받고 치료 받듯, 뇌에 병이 생기면 당연히 검사 받고 치료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PK실습하는 학생들이 정신과 병동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데 환자들과 탁구를 치되 절대 이기면 안된다는 것이다. 만일 이겨버리면 기분이 나빠진 환자들을 통제하기가 어렵게 되기 때문에 정해진 규칙이다.
나는 탁구를 꽤나 치는 편이라 의과대학 축제 때 탁구대회를 하면 1,2등을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환자들과 탁구를 치면서 절대 이기지 말라고 하니 정말 조심스럽게 쳐야만 했다. 환자들 중에는 제법 탁구를 잘쳐서 재미있게 게임을 할 정도의 분들도 있어서 이런 분들에게 져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작 문제는 정말 너무 못치는 분들을 상대하면서 져주어야 할 때이다. 상대방은 공을 넘기기에 급급한 정도인데 그걸 보조를 맞춰가며 실수를 하고 쉬운 공도 뒤로 빠뜨리고 하려니... 완전 봉숭아 학당이 따로 없다.
나를 꺽고 탁구장을 나서며 환자분이 한마디 툭 던진다. " 앞사람과 하는 것 보니 꽤나 잘하는 것 같아서 한 번 붙었더니 영~ 형편 없구만~" ㅠ.ㅠ
그 순간 썩소를 보이면 안되니까 평정심을 유지하며 "제가 실수가 좀 많아서... 담 번엔 연습 좀 더 하고 오겠습니다. ^^" 웃으며 마무리한다.
정신과 병동에서는 약을 개인적으로 먹지 않고 간호사가 보는 앞에서 먹어야 한다. 매끼니 일렬로 식량 배급을 받듯 줄을 서서 약을 받고 그 자리에서 꿀꺽 삼킨다. 마치 전쟁터에 마련된 포로 수용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정신과 병동엔 천장이라도 뚫어서 늘 햇볕이라도 환하게 비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화분을 플라스틱으로 만든 다음 군데 군데 식물도 있으면 좋겠고... 고치고 싶은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고치고 싶었던 것은 사회적인 시선이었다. 정신과 병동의 입원환자는 의사나 간호사의 힘만으로는 완치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가족과 사회가 조금만 넉넉한 시선으로 이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면 얼마든지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아래부터는 정신과 병동 실습첫날의 일기이다.
오늘은 정신과 첫날이다.
아침에 환자들과 우리 실습생들 그리고 전공의 선생님과 교수님, 모두 둥그러니 모여 앉아서 지난 주말엔 뭐하며 보냈는지, 병동에서 지내면서 불편한 것은 없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구상을 하는 아저씨 한 분이 하신 이야기다.
"산책이 일주일에 몇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너무 아쉽다. 병동내의 녹색공간이 없으니 화분을 하나씩 갖게 되면 꽃도 키우고 분위기가 좋아질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자해 위험을 감안했는지 "플라스틱처럼 안전한 화분도 있나"는 말을 덧붙였다.
전공의 선생님은 병원방침을 이야기 하시면서 알러지 등 다른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고 난색을 표하셨다. 그러자 환자들은 봇물처럼 불만을 토로하였다.
"우리는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선부터 그어 놓고 생각을 막으면 어떡하냐?"
"꼭 화분이 아니어도 좀 더 공간을 의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느냐?" 여기 저기서 볼멘 소리를 했다.
그 때 뒤에 계시던 교수님께서 "저희도 여기 오래 있다 보니까 생각이 굳어져서 그런 신선한 발상을 못했는데 참 좋은 생각이신 것 같다. 한 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 고 한 뒤에 분위기는 진화가 되었다.
예상 외로 학력이 높은 분들도 많고 기록지에 기록된 몇 번의 이벤트를 모른다면 왜 이 분들이 이 병동에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만한 사람들도 많았다.
불만사항을 이야기 하다 보니 조회를 마칠 시간이 다 되었는데 분위기가 좀 어수선해졌다.
전공의 선생님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면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랬더니
한 남자분이 "할 얘기 있어요." 하면서 말을 가로막았다.
전공의 선생님 바로 뒤에 앉아 있던 그 남자분은 발언권을 얻지 않고 나선다고 전공의 선생님에게 몇 번 면박을 당한 뒤였다.
복수를 다짐했는지...
"다음번엔 회의시간에 방귀 좀 뀌지 맙시다."
우리는 다들 한바탕 웃으면서 회의를 마무리하고 일어섰다.
조금도 숨김없이 자기 생각과 감정을 모두 털어 놓는 이 사람들...
마음의 벽이 조금도 없어서 속내를 숨길 수 없는 이 사람들이 좋아진다.
마음의 벽이 없기 때문에 방어를 할 수도 없다.
밖에서 날아오는 타인들의 무책임한 한 마디, 작은 파편에도 쉽게 상처받는 이 사람들을 나는 탓할 수가 없다.
나는 튼튼한 마음의 벽을 세워 놓아서 내 마음을 쉽게 가릴 수도 있고 날아오는 파편들과 왠만한 공격에는 든든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두터운 마음의 벽을 세워 놓고 가운을 입고 앉아 있는 나.
하나님이 태초부터 사람 속에다 마음의 벽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면 과연 환자복을 입은 이 사람들이 환자인지 아니면 하얀 가운을 입은 내가 환자인지... 들뜬 마음이 가라 앉는다.
아직 의사면허를 받은 것도 아니니까 내일은 치료자가 아니라 정말 태초로 돌아가서 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태초에 처음 사람을 지으시고 심히 보기 좋다 하시던 분의 마음을 느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