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보나 Jan 12. 2021

우울증에 완치는 없다

우울증 3년 차 경력직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정말 이상한 곳이었다. 대표는 인격적으로 미성숙했으며, 그 미성숙함을 커버하기 위해 나에게 과도한 인격적 성숙이 요구되었다. 그는 언제나 모든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거나 험담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강약약강’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으므로 언제나 자신보다 약한 ‘어린 여자’만 직원으로 뽑았다. 그러고는 툭하면 ‘여자애들’이라며 직원들을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나는 그 회사에 거의 3년을 일했고 일하는 동안 천천히 병들어갔다.

나는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눈치가 빠른 편이었고, 그 때문에 그의 기분을 맞춰주는 일도 매우 잘했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은 나를 외향적이며 사회생활을 잘하는 ‘언니’로 생각했다. (나는 그때 20대 후반이었는데 그 회사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대표가 얼마나 ‘어린 여자’들만 뽑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나는 그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책상을 내려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그의 기분을 살피고 맞춰주었다. 하지만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들은 언제나 일어났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역시 워크숍이었다. 40대 후반, 미혼, 남자 사장 한 명과 20대 여자 직원들 6명의 워크숍은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했다. 이런 형태의 워크숍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워크숍에 가기 일주일 전부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그리고 워크숍에 가기 3일 전, 드디어 일이 터졌는데, 그건 우리가 대표와 같은 숙소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 펜션 안에서 사장은 2층, 우리는 1층을 쓰도록 이미 예약을 마친 것이다. 나는 정말로 대표가 독채를 쓰길 간절히 원했는데, 대표는 한 숙소를 쓰길 간절히 원했다. 게다가 대표와 친한 외주업체 직원들까지 워크숍에 합류하기로 어느새 이야기가 끝나 있었다. 참고로 이 외주업체 직원들은, 정말로 일진 언니-일진 이모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같은 분들이었기 때문에 과도하게 술을 마시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워크숍이 하루 전날로 다가왔을 때, 나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이러다가 곧 죽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감이 갑자기 밀려왔다. 나는 대표실로 달려가서 몸이 안 좋다고 말하고 반차를 쓴 다음 병원으로 달려갔다. 내가 달려간 곳은 정신건강의학과였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요. 이러다가 갑자기 죽을 것 같아요.... 아니, 죽을 것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죽고 싶은 기분도 들어요. 이렇게 사는 바에야 차라리 조용히 사라지는 게 낫지 않나... 아프고 괴로운 방법이 아니라면 그냥 죽고 싶어요.”


그때 나는 의사에게 두서없이 말했던 것 같다. 주로 했던 말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다, 사소한 일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였다. 특히 나는 이때 단어를 떠올릴 수 없는 증상을 심하게 겪고 있었다. 말을 하려고 하면 ‘어, 그 뭐죠. 그거 뭐였지... 그걸 뭐라고 말하더라.’라고 우물거리며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의사는 내게 우울증 진단을 내렸다. 나는 처음으로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 한편으로는 ‘이제 내 인생 끝났구나’ 싶었고 한편으로는 ‘역시 우울증이 맞았구나’ 싶었다. 시도 때도 없이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숨이 안 쉬어지는 기분,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 이대로 발밑이 꺼져서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분명히 내가 했던 말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 등 그때 내 상황은 심각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기에 우울증 진단을 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였다. 나는 6개월 정도면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의 나는 대체적으로 기분이 가라앉아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명랑한 편이었고, 할 말도 똑똑하게 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나는 말을 하다가도 자꾸만 멈추어야 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그에 맞는 단어를 찾지 못 했다. 이런 상태가 무려 3년이 넘게 지속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3년. 우울증 진단 후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처음보다 더 많은 용량의 약을 먹고 있다. 주변에서는 ‘약에 너무 의지하는 것 아니냐’ ‘나약해서 그런다’ ‘니가 우울증이라고?’와 같은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우울증 약은 반드시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중단해야 한다. 나도 몇 번이나 의사와 약을 끊기 위해 노력했지만, 언제나 결론은 아직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울증이란 참 무섭다. 조금 좋아진다 싶으면, 네가 행복하게 놔둘 성 싶으냐며 다시 찾아와서 이전보다 더 깊은 나락으로 끌고 들어간다. 나는 바로 지난 주말에도 의사에게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달 전에는, ‘요즘은 사는 게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제는 우울증에 완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악화되지 않도록, 자살사고가 줄어들도록 ‘관리’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것도 ‘관리’의 일환이기도 하다.


지난 3년, 우울증이 낫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나는 약물치료를 계속 해왔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치료의 효과다. 하지만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는 인생에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 사람은 ‘살아가야’만 한다. 그래서 오늘은 심리 치료를 결심했다. 이번 주 내로 상담센터를 알아보고 등록할 것이다. 부디 이것이 나의 우울증 치료에 새로운 한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