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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Jan 14. 2021

퇴사할 거면 니 이름은 미리 빼자

인터뷰

앞선 글에도 말했지만 내가 전에 다녔던 회사는 정말 이상한 곳이었다.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이렇게 치사한 회사는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출판사 기기괴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 회사에서 배운 것도 많고 얻은 인연도 많다. 사장이나 윗사람에게 기대를 하지 말라든가, 기대를 하지 않아도 그들은 언제나 기대 이하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역시 앞선 글에 말했듯이 나는 사장의 기분을 잘 맞추는 편이었다. 하지만 기분을 잘 맞추는 사람은 그만큼 다른 직원들을 위한 감정적 방패막이 역할을 하게 마련이고, 나는 그런 상황에 지쳐가고 있었다.


내가 왜...


나는 연차가 높은 사람도 아니고 임원급은 당연히 아니었다. 물론 내가 나서서 한 일이지만 신규 입사자가 늘어날수록 내가 커버 쳐야 하는 범위는 늘어났다. 당시 사장은 꼭 모든 직원이 함께 밥을 먹기를 고수했는데, 식당에 들어서기 전부터 눈치게임이 시작되곤 했다.


'누가 사장 옆에 앉을 것인가'


그건 바로 나였다. 덕분에(?) 나를 향한 사장의 신뢰도(이런  데에 신뢰라는 단어를 쓰기는 정말 싫지만 마땅히 대체할 말이 없어서 쓴다)는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드물게도 회사에서 계약하게 된 좋은 타이틀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퇴사를 갑작스럽게 선언했다. 퇴사 이유에는 우울증도 있었지만 도무지 그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미친 괴수처럼 날뛰는 기분을 맞춰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당시 일본에서 작가님을 초청해오는 큰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번역가 선생님과 함께 작가님을 밀착 수행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실제로 나는 기본적인 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 이때 번역가 님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매일 하루 종일 운전은 물론이고 각종 인터뷰 동시통역, 작가님 관광코스 선정 등을 모두 도맡으셨다. 사실은 통역사를 섭외했어야 했는데 사장이 돈 아끼자고 벌인 짓이었다.


"사장님, 번역가님께 이번 프로젝트 작업비 드려야 하는데요."

"아,.. 나 돈 없는데."


익숙한 반응이었다. 돈이 없으면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야, 그냥 00만 원으로 퉁치자."


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2박 3일 밀착수행에 각종 인터뷰, 기자회견 통역까지 하셨는데 그건 좀..,"

"어차피 그 양반도 좋아서 한 거잖아? 나 돈 없어."


그놈의 나 돈 없어 타령... 나는 다음날 바로 사표를 내밀었다. 한 달 뒤에 퇴사하겠다고. 그는 멍청한 얼굴로 왜?라고 물었다. 몰라? 그걸 니가 몰라?


그리고 치사한 상사에 의한 업무 이지메가 시작되었다. 사장은 당장 그날부터 나를 모든 업무에서 배제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회의에 들어갔을 때 나 혼자 텅 빈 사무실에 앉아있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의 유명 문예지에서 우리가 작가를 모셨던 해당 책의 한국어판 편집자의 코멘트를 듣고 싶다는 인터뷰 요청 메일이 왔다. 그녀는 일본어와 한국어에 모두 능했기에 나도 편하게 인터뷰에 응했고, 코멘트와 이름, 직책을 전달했다.


그런데..


막상 게재된 온라인 기사에는 내 이름이 빠져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기자님께 연락해서 확인해보니, 글쎄, 사장이 기자에게 전화해서 "기사에서 이보나 이름 지워달라"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무려. 아주 조금의 공이라도 내 것이 될까 봐 이렇게 치사한 짓을 벌이다니, 나는 그가 반백을 바라보는 어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가슴에서 천불만불이 올라왔다. 이렇게 뒤에서 치사한 짓을 하는 게 제일 싫다. 결국 나는 기자님께 정중하게 이메일을 보내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으니 이름을 다시 넣어달라고 했다. 이건 이름을 넣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이미 사장과 나의 진흙탕 싸움이었다. 결국 기사는 내 실명으로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을 겪고 나니 본디 글러먹은 사람의 신뢰란 얼마나 얄팍하고 치사하고 쪼잔하고 찌질한 것인가 느끼게 되었다. 찌질한 당신, 뒤에서 몰래 직원 괴롭히고 방해하더니, 지금은 살림 좀 나아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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