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셋, 아빠한테 100만 원을 빌렸다
걱정거리
“엄마, 나 돈 좀 빌려줘.”
“얼마나 필요한데?”
“100만 원.”
올 게 왔다. 퇴사한 지 6개월, 드디어 다음 달 카드값을 막을 수 없는 순간이 와버린 것이다. 당장 내일 카드값이 빠져나가게 생겼고, 내 통장에는 빠져나갈 카드값의 반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카드회사는 정말 무섭다. 연체라도 된다면 나는 동네방네 수치스러운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들은 전화를 할 것이고, 집으로 찾아올 것이다.
“엄마 밖이니까 이따가 얘기하자.”
“어딘데?”
“아빠랑 신발 사러 나왔어.”
“갑자기 무슨 신발?”
“니 동생이 우리 신발 사 신으라고 카드 주더라.”
아, 망했다. 타이밍이 구려도 너무 구렸다. 왜 하필 동생은 오늘 부모님께 신발을 사드린 걸까. 아무 날도 아닌데. 그것도 간지 나게 카드를 내민 걸까. 현금을 줄 수도 있었는데. 아니, 이 편이 더 멋진 걸까? 동생을 원망해봤자, 동생은 좋은 마음이었을 뿐이고 문제는 나다.
왜 하필 나는 돈 빌려달라는 얘길 오늘 꺼낸 걸까. 어제 할 수도 있었는데. 미루지 말걸.
왜 진작 자금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지 못했을까? 그놈의 쿠*만 지워도 이런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실망스러웠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패배감이 느껴졌는데 그중 하나는 동생이 효도하고 있는 순간에 나는 부모님께 돈을 빌리는 ‘문제아’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방금 고양이가 키보드를 세차게 밟고 지나갔다. 이 문장에 동의하는 것 같아서 더 자존심 상한다.)
어렸을 때부터 늘 속을 썩이는 역할은 동생,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하는 역할은 나였다. 나는 조용했고 말을 잘 들었고 공부를 ‘조금’했다. 반면 동생은 대체로 놀기를 좋아했고, 게임만 했고, 반항기를 오래 거쳤으며, 공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우리 사이의 어떤 권력관계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대로 부모님의 감정받이 역할을 하기가 매우 벅찼다. 동생은 20대가 될 때까지 부모님과 말 한마디 안 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나는 늘 가운데 끼어서 부모님을 위로하는 역할이었다.
“보나야, 니가 보현(남동생, 가명)이랑 얘기 좀 해봐. 쟤 저러다가 진짜 엄마 아빠 평생 안 보고 살면 어쩌니....”
울먹이는 엄마.
“평생 안 보고 살라 그래! 이 집에서 나가라 그래! 괘씸한 것!”
소리 지르는 아빠.
문을 꽝 닫고 들어가는 동생.
설마 부모 자식의 연을 끊겠냐며 엄마를 위로하는 나, 진정 좀 하시라고, 지금 쫓아내서 어쩔 거냐고 아빠를 가라앉히는 나.
동생이 반항을 했고 내가 기대를 받은 만큼 집안에서 나의 존재는 완충제로만 작용했다. 나는 날이 흐려서, 날이 좋아서, 동생이 망쳐놓은 부모님의 기분을 어떻게든 좋게 만들어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렇게 30년 정도를 살았는데, 갑자기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정말 갑자기.
그 일은 뜬금없이 일어났다. 동생은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공부를 시작했고 1년 만에 공무원이 되었다. 공무원. 아빠가 나에게 그토록 바라던 직업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나는 백수가 되었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집에 가면 엄마는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쉿, 보현이 잔다.”
티브이 볼륨을 낮추라고 했다.
“보현이 잔다.”
그놈의 보현이 잔다. 동생은 당번근무를 하기 때문에 아침에 퇴근해서 자고 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완충제로서 나의 역할은 이제 끝이 난 것 같았다. 이제 내게 새로 주어진 역할은 ‘걱정거리’인듯했다.
“돈은 좀 남았니? 돈을 모아야지 이렇게 까먹기만 해서 어떡해.”
“이력서는 쓰고 있냐?”
“면접 연락은 좀 오니?”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걱정거리가 되어본 적이 없는 나는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안 그래도 인생이 자꾸 날 두고 혼자 폭주하며 달려가는 것 같은데 가족까지 날 뒤에 놓인 사람 취급하니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미루고 미뤘던 것이다. 돈 빌려달라는 말을.
아빠는 연 이자 50퍼센트라는 악덕 대부업자 수준의 이율로 내게 돈을 빌려줌으로써 내 자존심을 한 번 더 상하게 했다. 나도 집에서 놀지만은 않기 때문에 조만간 이 돈을 갚을 생각이지만, 동생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때 나는 부모님께 100만 원을 빌렸다는 사실은 좀 오래 충격으로 남을 것 같다.
근데 뭐 어쩌나. 이건 지금의 내가 걱정거리가 된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너무 걱정 끼치지 않고 살아온 게 문제인 것을. 엄마 아빠도 내가 조금 뒤늦은 방황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완충제 역할은, 동생이 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