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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Jul 12. 2016

'비밀은 없다'는 조금 이상하지, 엄청 이상하진 않다.

심지어 꽤 괜찮을 수도 있다니까 그러네.

(스포일러 내용이 포함됐을 수 있음. 그렇지만 이거 보고 영화 보면 더 재밌을 거 같기도 함)


없다. 없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경미 감독의 신작(이었는데 벌써 내려간) ‘비밀은 없다’에 대한 찬양의 리뷰가...


그래서 쓴다. ‘비밀은 없다’의 좋은 면만 핥기 위한 편파 리뷰를. 뭐 악평은 차고 넘치니까. (흑흑)

아닌 척, 돌려서 찬양해 볼까도 생각해봤는데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말하고 시작하니 마음이 편하다.



1. 조금 이상하지, 엄청 이상하진 않다. 그러니까, 심지어 꽤 괜찮을 수도 있다.

기자시사, 일반 시사가 끝나자마자 올라오던 엄청난 혹평과 악평을 나는 기억한다. 평소, 영화는 ‘내’가 보고 ‘내’가 느끼는 것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으면서도 관심 있는 영화의 개봉 전 시사 평은 어쩔 수 없이 좀 챙겨보게 되는데, 그렇게 입을 모아 모두 욕하는 한국영화는 또 오랜만이었다. ‘아, 미쓰홍당무 감독이라 되게 기대했는데.’, ‘아, 손예진이 또...’ 정도의 생각을 하며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런데,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이건 해도 해도 좀 너무했다. 뭐가 얼마나 이상하길래 이렇게 악평밖에 없어? 궁금해서 안 되겠다. 그렇게, 불친절한 상영시간에 억지로 내 시간을 맞춰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분위기에 아주 드럽게도 잘 들어맞는 장맛비가 퍼붓는 날씨였다. 결론은, 안 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대부분의 리뷰에서 사람들은 이 영화를 ‘이상하다’고 말한다. 설정이 이상하고 전개가 이상하고, 이상하고 이상하고.. 그런데, 조금 이상한 거지 엄청 이상한 건 아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다소’ 폭발적으로 치닫고, 딸의 평소 생활이 ‘다소’ 평균과 다르고, 전체적인 연출이 ‘다소’ 친절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쉽게 감정이입이 어렵고, 이를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표현인 ‘이상함’으로 ‘퉁침’을 당하고 있는데 이 정도 가벼운 언어로 ‘퉁쳐질’ 영화는 아니다. 진짜로.


예를 들어,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이런 소재의 영화를 소위 ‘이상하지 않게, 정상적으로, 친절하게’ 연출했을 때의 관객이 겪어야 할 그 뻔함과 지루함과 절망감을.


1) 착한 내 딸이 사라지고,

2) 아빠는 선거를 포기하고,

3) 현모양처와 아이를 찾아 뛰어다닌다.

4) 경찰은 처음엔 다소 비협조적이지만 (feat. 단순 가출 아닙니까?) 나중엔 부부의 정성에 감동받아 막 셋이 힘을 합쳐…


여기까지만 썼는데 재미없어서 손이 안 움직인다(부들부들). 이렇게 보니, 이 영화가 ‘이상함’이라는 손가락질을 떼로 받고 있는 이유가 더 명확해진다. 딸은 착하지도 않고, 아빠는 선거를 포기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아이를 찾지도 않고, 경찰은 거의 나오지도 않는다. 게다가 머리 풀고 날뛰는 예쁜 여배우까지.


결국 이 소재와 이 톤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 아니 최선의 연출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감독은 천재들의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경미 감독은 ‘더 많은 관객이 들 수 있는’ 영화로도 충분히 만들 순 있었겠지. 하지만 감독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그 지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독 개인이 최대한 포기할 수 없는 선과, 상업영화감독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 맞닿은 지점에서 이 영화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2. 결정적일 땐 친절하다.

클라이맥스에 치달으면서, 속으로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제발, 제발 내가 생각하는 그 결말은 아니길. 그건 복수가 아니라고! 이러면서. 하지만 뭐, 괜한 걱정이었다. 사실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상 주인공이 남편을 문자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별로 놀라지는 않았을 거 같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 고어함의 정점을 찍으면서 장엄하게 마무리 짓는 거 아닐까란 생각도 했는데, 다행히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복수를 남편에게 감행하는데 이번에는 또 친절하게 주인공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해준다. 여기서 당신을 죽이는 건 복수가 아니야 라고.



3. 손예진의, 손예진에 의한, 손예진을 위한

사실은 손예진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이 글을 끌고 온 건지도 모른다. 다소 불친절한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열심히 끌고 오는 주인공. 다소 이상한 영화를 최대한 안 이상하게 보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주인공. 바로 손예진이다. 배우 손예진의 인생 연기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차고도 넘친다. (물론 아마도 차기작에서 손예진은 본인의 인생 연기를 또 한 번 경신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손멘.)


백치미 넘치는 집밥 장인 현모양처에서, 자신의 손에 흉기를 내려찍을 만큼 미쳐가는 여자의 모습을 두 시간 안에 스크린에서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30대 배우가 손예진 말고 또 있을까? 흔히들 말하는 ‘동급 최강’이란 표현이 이렇게 적합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한국 영화계에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관객이 나만은 아니리라.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리 속에 맴돌았던 생각은, 손예진이라는 배우의 가성비이다. 손예진이 이번 영화로 투자자들에게 투자의 가치 그 이상을 느끼게 해주는 몇 안 되는 배우가 되었다는 것. 솔직히 말해서 상업영화를 찍을 거라면, 입만 살아서 그놈의 ‘예술’에 대해 논하기 전에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연기를 잘하는 건, 권리를 내세우기 전에 기본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의무’라는 소리다. (자기돈으로 찍을 거면 그거야 뭐 자기 맘대로 하면 된다.) 분명 누군가는 ‘감히 예술을 논하는데 돈 얘기라니’라고 나를 속물 취급할 수도 있지만, 그러든 말든 나에게 있어 이 표현은 배우에게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찬사이다. 이른바 ‘돈 값을 하는 배우’.


남편을 응징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두 시간 동안 끌고 온 주인공의 에너지가 분노로 폭발하는데, (해당 장면의 연출 자체가 좋은 탓도 있지만) 절벽의 끝, 세상의 끝의 끝에 남편과 나란히 서 있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란… 죽을힘을 다해 한 음절씩 끊어 내씹는 몇 마디가 그 어떤 외침보다도 가슴에 오롯이 박힌다. 손멘.






뭐, 원래 우리 사회는 좀 그렇다. 나랑 좀 다르면 궁금해하기보다는 경계하고,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내 편인지 아닌지 빨리 결론을 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우리’와 같지 않으면 정체가 무엇인지 ‘예측’이 안 된다는 이유로 그냥 ‘이상하다’고 말한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안전하게 살아도 나쁠 건 없다. 어쨌든 감이 안 좋으면 피하고 보는 게 좋은 무서운 세상이니까.

그런데, 이건 ‘영화’잖나. 두 시간 동안 현실은 잊고 잠시 다른 사람의 인생에 뛰어들어보는 보급판 가상현실 체험. 우리가 그 시간까지 뻔해야 하는가. 조금 이상하기도 하고 조금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 영화니까.  


아니, 그리고 진짜 진심으로,

좀 재밌다니까요, 이 영화.


마지막으로, 이번 주말 아트나인의 ‘비밀은 없다’ 시간표를 첨부한다.




(+) 10/7 추가 수정

ㅠㅠ 25회 부일영화상, 손예진 배우의 여우주연상 수상을 정말 정말 정말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짝짝짝!!!!!! 비없으로 받아서 너무 기쁩니다.....주르륵..(오열)


(++) 10/24 추추가 수정

ㅠㅠ 36회 영평상 ㅜㅜㅜㅜㅜㅜ 이경미 감독님 감독상 정말 축하드립니다. (손배우 여주상도요.ㅜㅜ) ㅠㅜㅜㅜ감독님 ㅠㅠㅠ 정말 ㅠㅠㅠ 축하드립니다 ㅠㅠ 최종스코어 25만으로 감독상은 감독님이 유일무이 전무후무일거에요. ㅜㅜㅜㅜㅜㅠ 진짜로, 축하드려요!!!



(+++) 12/23 또 수정

올해 마지막 관람을 하고 나왔고, 내가 이런 스타일리시한 한국영화를 또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한 컷, 한 컷 감독의 시선이 안 묻어있는 장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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