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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필라멘트 빛 밝히는 전자파동 같은 존재

 선칠집중수행 5일차

5일째가 되니 이제야 명상에 집중하는 게 수월해진 듯하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오전, 명상홀은 고요하고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에 집중하고 있다.



느 순간,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암흑을 보았다.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비밀들과 어둠이 묻힌 무덤. 한참 눈물이 흘러 당황스러웠다. 어제 꺼이꺼이 울던 한 중년남자처럼, 나도 소리 내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숨을 가다듬으며, 울음을 겨우 참았다.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마음이 진정되었다.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은 후, 무덤가에서 만난 누군가와 길을 떠났다. 바람처럼 훨훨 날아, 내가 이전에 살았던 곳, 여행했던 곳들 다녀보고, 그렇게 세상 구경 하고 난 다음 돌아왔다. 나와 함께 여행했던 들은 이미 제각각 흩어져 버렸다.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돌아와 숨을 들이쉬니, 나는 내 몸 안을 여행하고 있었다. 내 심장, 혈관, 피 한 방울과 세포들을 들여다보는 기분. (요즘 양자역학에 관한 영화나 영상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걸까?)

숨을 내쉬니, 나는 저 우주 너머로 날아가 있었다. 운석에 부딪히고, 거대한 붉은빛 속에 던져지고. 하지만 아프거나 뜨겁진 않았다. 지구를 둘러싼 인공위성과 잔해들, 운석들, 빛의 파장들. 우주는 소리 없이 침묵 속에, 매우 바삐 돌아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작은 파동, 백열등 필라멘트 전구 빛 밝히는 정도의 전자파장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그 희미한 파장이 내 쇄골쯤에 따끔, 자리 잡는 기분이었다.

꿈이었는지, 망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랜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그 여행 끝 나는, 백발의 노부인이 되어 있었다. 어느 시골길, 느긋히 산책하고 있는 나의 뒷모습을 언뜻 보았다.

그렇게 지혜롭고 품위 있는 노부인이 되고 싶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사회에 기여하는 좋은 어른. 자유롭게 세상구경 많이 하고, 연륜과 통찰력이 있는 어른.

그렇게 살다 평안하게 죽을 것이다. 마음에 거리끼는 것 없이, 어떤 후회도 없이.

이 삶의 마지막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 멍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긴 꿈을 꾼 듯한 기분.


어제 스님께서 내어주신 화두. 숨 쉬는 것을 바라보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투명한 바람이었다가,

희미한 전자파동이었다가,

그저 '지켜보고 관찰하는 눈뜬 자'였다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채 사라질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원히 존재할 무엇'이기도 하다.



법회 중에, 스님은 불교의 '보살'의 개념에 대해 잠시 얘기해 주셨다.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 ' 보리살타의 줄임말. 안타깝게도 여자는 보살이 될 수 없고, 이 생에 덕을 쌓으면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고 그다음에야 보살이 될 수 있다 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반발심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난, 어쩌면 이전 생에서 여자로 태어나길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남자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나인채로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살아보길 꿈꾸었을 것이다. 내 인생의 소명이 무엇인지는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으나,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이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성숙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어서 이 모든 일을 겪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나는 기도한다.

명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올바르게 잘 쓰겠으니 권력을, 좋은 일에 쓰겠으니 힘을 달라고.

행복할 때, 불행할 때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나도 누군가의 인생에 힘이 되어줄 테니, 나에게도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내 편을 보내달라고.

아주 솔직한 내 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편안하다.



"높은 산봉우리가 있으면 산골짜기가 있습니다. 세상에 다 차별이 있습니다.

내 능력, 내 복대로 가는 것. 누구나 다 산봉우리일 수는 없습니다.

남탓할 필요도 없고, 나는 나대로 나의 복밭으로 가게 됩니다.

행복하지 않으려는 것이 행복. 만족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부처님은 왜 이 고행 속에 태어났나. 나는 왜 태어났나.

불교에서는 윤회를 끝내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모든 것은 괴로움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행복하지만, 이별하면 아픈 것처럼.

하지만 그것을 다 알면 중도로 갈 수 있습니다.


곤경에 빠져 힘들 때, 삶의 방책이 있습니다.

좌절하면 스스로 끝내는 것이고,

때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으면 시련이 힘이 됩니다.

내려간 만큼 반동이 옵니다. 하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멈추어 버립니다.

내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알고자 하는 마음이 멈추지 않으면 결국 시기인연이 도래합니다.

언제 어떻게 드러날지 아무도 모를 일.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지 않고, 생각의 덫에 걸리지 않는다면

결국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조건에, 어느 때에 깨우칠지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는데,

"정성 들여 키운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고 무심코 버들가지를 꽂았더니 나무 그늘을 이루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그저 하면 됩니다."


법회 때 스님의 말씀처럼, 나는 스스로 절망에 빠지 않을 것이다. 불행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이렇게 끌어내렸으니,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 주렴.

악연 때문에 힘들었으니, 이제 더 귀한 사람들만 내 앞에 데려다 놓으렴.

나는 포기하지도, 좌절하지도, 멈추지도 않을 테니.


스스로 멈추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결국 중요한 건 나의 인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난 이들 중에, 내가 지성과 품위 있는 인품을 발견한 언제였는가. 몇몇 분들이 떠오른다. 곰곰이 그들의 공통점도 찾아보고, 내가 바라는 내 모습도 들여다본다.


지혜와 통찰, 전문성과 지식을 가질 것. 자신감을 갖되, 겸손할 것.           

긍정적이고 지혜로운 말씨와 태도, 신중하고 품위 있는 언어, 예의 바르고 여유 있는 행동, 단정한 외모와 밝은 표정. 때와 장소에 맞는 매너.

어떤 스트레스에도 동요하지 말 것,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 것. 나의 원칙과 양심에 어긋나지 않을 것.

타인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함부로 평가하지 말 것.

도움을 청한 이들에게 무작위의 친절과 관용을 베풀 것. 함부로 연민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할 것.

그리고, 사람을 알아보는 분별력을 갖고 각각에 맞는 적절한 거리를 둘 것. 존중하되 신뢰하지 말 것. (내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지 말 것. 다 말하지 말 것.)


다섯째 날, 나 자신의 깊은 내면을 본 명상이었다. 한편으론, 망상에 빠진 것인가 싶기도 하고.

네 살 때쯤, 인생의 첫 기억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내 삶을 모조리 훑어본 하루. 똑같은 24시간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길고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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