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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칠수행 마지막 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선칠집중수행 마지막 7일차

"불교의 5계. 하나하나 현대 기준으로 논란이 될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술을 마시지 않는다라는 5계를 얘기하면 많은 분들이 아, 이건 지키기 어렵구나라고 합니다. 살생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러면 모기도, 바퀴벌레도 죽이지 말아야 하나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불필요하게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그래야 자신의 건강복도 옵니다.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는다. 도둑질하는 마음이 없어야, 재물이 옵니다.

정당하지 않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 그래야 일편단심 지고지순한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옳지 않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래야 명예를 쌓을 수 있습니다.

정신을 흐리게 하는 술이나 약물을 하지 않는다. 그래야 지혜를 쌓을 수 있습니다.


다 지키긴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흔들리는 순간이 왔을 때 한 번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법회, 스님의 불교의 5계에 대한 말씀으로 마무리하셨다. 사실 살생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 이런 것들을 엄격하게 보면 지키긴 어렵지만, 그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라는 것. 다 지키기 어렵지만 유혹의 순간에 한 번이라도 망설이고 하지 않는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하셨다.



선칠수행의 사실상 마지막 날인 오늘, 저녁에는 그동안 반납했었던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묵언도 해제. 오랜만에 카톡 메시지들을 체크했다.


"언제 시간 될 때 커피나 식사 같하는 거 어때요?"

며칠 전 도착한, 전 회사 상사의 문자.

순간, 화나는 마음이 불쑥 든다. 아니, 내가 정말 힘들 때 그때 커피 한 잔 하자고 했어야지. 너는 훌륭한 동료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좋은 친구야라고 매번 얘기했었지만, 실제로는 내게 어떤 위로도, 도움도 주지 않고 중립적인 척 거리 두기만 했으면서 말이다. 나한테 여러 번 큰 빚졌다고, 나중에 식사 꼭 한 번 살게라고 말만 하고 이제껏 미뤘으면서. 뭐가 또 아쉽고 필요해서 이런 문자를 보냈지 싶다.


그때부터였다.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마음속에 일어난 것은.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의 분노였다. 분노에 참을 수 없이 뜨거운 눈물이 콸콸 쏟아졌다.

모든 것에 대한, 모든 이들에 대한 분노. 이런 감정을 내가 느껴본 적이 언제였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런 감정이었다.  

아니, 일주일간 마음을 잘 다스리고 이제야 평온을 찾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문자 하나에 이토록 마음이 동요하다니. 그동안 그토록 애쓴 명상이 헛수고였나, 허탈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 울다 지치고나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별 것 아닌 안부 문자 하나에 이토록 분노와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났지?"

마음 가라앉히고 다시 들여다보니, 알겠다.


아, 사실 나는 이제까지 분노할 마음의 힘조차 없었구나, 이제야 화낼 수 있을 정도 마음의 힘이 돌아왔구나.


"이제야 마음의 힘이 돌아오다니, 아, 다행이다."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니, 분노는 가라앉고 마음도 평온해진다.

아, 이래서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리라고 한 것이구나. 무슨 감정과 어떤 생각인지, 그 원인 끝까지 살펴보라고 한 것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내 마음의 힘이 커졌다는 것을 알겠다.

그래, 핵심은 그것이다. 분노와 원망이 아니라, 내 마음에 힘이 생겼다는 것.


우연의 일치인지, 오늘이 공식적으로 퇴사하는 날이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휴가 이주일이 끝나는 날.

선칠집중수행 프로그램도 마지막 날. 내 인생의 한 챕터를 이곳에서 마무리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하나의 잘 짜인 시나리오 같다. 치밀하게 구성된 작전수행처럼 끝났다.

마지막 날 새벽이 되어서야 마음의 한 부분이나마 진실로,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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