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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다시 명상마을로 복귀

나만 잘 하면 돼! 이런 마인드도 좋다.

선칠수행 7박8일 이후 돌아온 서울은, 연말 분위기로 시끌벅적. 가로등불, 빌딩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 때문에 밤에도 서울은 별 하나 볼 수 없이 밝기만 하다. 북적이는 골목골목, 사람들의 목소리, 차와 오토바이 소음. 갑자기 모든 게 낯설다.


몇 분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예전부터 잡혀있던 저녁약속 몇 군데 다녔더니 10여 일이 훌쩍 지나고. 약속대로 나는 다시 명상마을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핸드폰 반납하지 않고 편안하게 사용가능하다. 자원봉사 겸 행정업무도 조금 도와드리고, 명상도 하고. 중간중간 행사들이 있지만, 그 외에는 나와 몇 분 소수만 이곳에 남아있다.

이곳은, 지난달보다 더 추워졌고, 더 일찍 해져 물어 어둡고, 더욱 고요하다.



나는 과연 달라졌는가?

그래, 나는 이전과 달라졌다.


"모든 건 마음 쓰기 나름. 곤경에 빠졌을 때 좌절하면 스스로 끝내는 것.

하지만 스스로 멈추지 않고 노력을 계속하면 그 시련이 더 큰 힘이 되고 결국 시기인연이 온다."


스님의 이 말씀 때문인지, 명상수행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꽤 편해졌다.

그리고 마치 세뇌당하듯, 계속 반복해서 들었던 말씀들.


인생은 어차피 고행이지만,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

번뇌는 과거의 기억일 뿐, 현재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

스스로 걸려있을 뿐, 털고 일어나 가버리면 그만.

모든 불행에도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또 다른 기회의 문도 열려있다.

다 보기 나름.

그러니, 지금 행복하면 된다.

지금 행복한 사람은 내일도 행복하고, 모레도 행복하지만.

지금 번뇌하고 괴로워하는 자는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 괴로워할 뿐.

그러니 비법은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를 때면, "그건 과거의 일, 지금 내게 반복되는 일이 아니니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 "Not my business!"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떠오를 때면, 알아채고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 해도 큰 성과다.



명상마을로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진행된 2박3일 중년 명상 힐링캠프. 지난 7박8일 일정에 비하면 매우 짧다. 제대로 명상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정도.

금요일 오후부터 40-50대 참석자들이 하나둘씩 도착이다. 하나같이 얼굴엔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나도 남들이 볼 땐 이랬을까. 수십 명, 비슷한 나이 또래 사람들과 다시 한번 명상수업에 참여한다.

스님께서 해주시는 말씀 익숙하긴 하지만, 다시 복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 평균 2천 번 넘어진다고 합니다.

자전거를 배울 때, 우리는 수십 번, 수백 번 넘어집니다.

넘어진 자는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일어나면, 결국 다시 걷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됩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성찰하면 됩니다.

자기 성찰이 참회입니다.

아, 잘못했구나 다음에 그 잘못을 다시 하지 않으면 됩니다.

스스로 낙인찍지 마십시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어디, 어린아이들만 걸음마, 뛰기, 자전거 타기를 배울까.

계속이다. 죽을 때까지, 아마도 계속. 우리는 계속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고, 계속 배울 것들이 생긴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어차피 계속 넘어지게 되어있다.

내가 힘이 없어서, 잘못을 저질러서, 운나빠 돌부리에 걸려서, 어떤 경우에든 넘어지게 되어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 아닌가?


다시 일어나기 힘들 땐,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그냥 잠시 앉아만 있어도 된다.

사실 나는 지쳐 쓰러져 누워있는데, 주위 사람들은 신나게 쌩쌩 달려 나가는 것을 보면 속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다. 친구와 선배들 국회의원 선거 출마한다고, 회사에서 상무로 승진했다고 그런 소식 들으면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싶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 

하지만 어쩌랴.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잘 쉬는 것, 에너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자책하고 나 자신을 계속 고문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정하게 대하는 것.

하지만 결코, 다시 일어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각산스님은 유쾌하게, 유머러스하게 직접 시범 보이면서 걷기 명상에 대해 알려주셨다.

마치 "개가 쫓아온다" 생각하고 조금 빨리 걸으라 하셨다. 

단, 자신의 호흡을 보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또 자신이 가진 질문에 집중하면서. 


전에 태국에서  배운 위빠사나 걷기 명상과는 다른 면이 있다.

예전에 위빠사나 걷기 명상 배울 때는, 발이 지면에 닿고, 발을 떼고, 무릎을 굽히고, 무릎을 펴고, 이렇게 천천히 23걸음 이내로 걸으며 자신의 몸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라고 했는데, 각산스님께서는 일부러 천천히 걸으려 할 필요 없다 하셨다.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몸의 움직임을 알아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 


불교는 어쩌면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라는 생긱이 든다. 가톨릭이나 기독교보다 오히려 더 많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남보다 나 자신을 먼저 잘 챙기고, 내가 할 일부터 잘하라 한다. 신에게 의탁하지 않고 나 스스로 끝까지 수행해서, 자신의 힘으로 깨우친 자가 되라고 한다. 

남에게 보시를 베풀고, 친절과 도움을 주는 것 좋지만, 그보다 나 자신에게 잘하는 것이 먼저다. 

나를 절대 고통에 빠뜨리게 하지 않기. 어떤 죄책감, 고통, 불안, 후회도 금지.


식사시간 때 다른 사람 접시 챙겨주는 것조차 하지 말라 하셨다. 그냥 내 접시나 신경 쓰면 되고, 남의 접시는 내 할 일 다 끝나고, 내 여력이 아있을 때나 챙겨주는 거라며. 

이기적이고, 남들에게 피해 끼치면서까지 나 자신을 챙기라는 것은 분명 아니다.그 무엇보다 나 자신을 우선에 놓으라는 말씀. 이런 자세,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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