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내 생애 첫 삼칠기도, 내가 기도한 것은...

바라는 것도 참 많지. 하지만 결국 기도한 건 용서과 사랑, 구원!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아시는지? 조건 반사에 관한 유명한 실험. 음식을 줄 때마다 종소리를 들려주게 되면, 나중에 개는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게 된다. 개에게 종소리는 식사시간, 맛난 음식을 의미하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명상을 했던 시간들은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한편 고통스러운 인간관계, 아픈 퇴사 과정과 연동되어 있어설까. 명상했던 때를 떠올리려 하면 고통스러운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어떤 조건반사 같은 것이 되어버린 걸까. 이래서 명상 스승들께서 너무 힘든 때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평온할 때 명상하라 하셨던 것일까.

사실 시간이 흘러, 명상에 몰두했던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니 모든 게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구태여 힘든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 들여다보자니, 글 쓰는 것이 더뎌진다.



삼칠기도. 7일이 3번 반복되는 21일. 각산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사람들의 습관이 바뀌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삼칠일. 스님은 내게 적어도 3주 시간을 내서 다시 돌아오라 하셨다.

익숙한 모든 것들, 모든 이들과 떨어져 홀로 보낸 시간. 3-4평 작은 꾸띠에 머물며 무소유에 가까운 날들. 행정업무나 몇몇 행사 도와드리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은 오직 명상과 기도만 하는 아주 단순한 일과. 그 3주간 시간을 통해서 나는 정말 변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단한 변화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있다.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떠오를 때면 멈출 있는 것. 그리고 내려놓음.

한편으론, 절박한 마음을 너무 내려놓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포자기나 무기력일까? 아니, 그것과는 다르긴 한데. 불안과 두려움 없이, 인내할 있는 힘이랄까.


삼칠기도 동안, 이전 명상과 달라진 점. 무엇보다 기도시간이 루틴에 포함되었다. 자비송, 명상, 그리고 기도를 한 패키지로, 루틴으로 삼았다.

각산스님께서는 자신만의 원을 세워 깊이 기도하라 하셨다.

아차, 나의 원대한 소망이 있었던가. 나는 무엇을 바라고 요청해야 하나. 나의 이직과 성공? 사랑하는 사람? 재산과 명예, 권력? 건강? 인간이 바라고 기도하는 것 중에 이것 아닌 것들이 있을까.

나만의 원대한 꿈이 있었나, 특별한 소망이 있었던가. 큰 원이라 했으니, 높은 지위에 올라 막대한 힘을 누릴 수 있도록 해달라 기도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기운도 없다.


아, 하나 생각났다. 행운! 내게 행운을 달라 기도해야지.

지식도, 직업도, 재산과 명예도, 내 노력으로 얼마간 이룰 수 있지만. 내게 진심으로 필요한 건 좋은 운. 좋은 일과 좋은 사람들을 만날 좋은 타이밍이다.


"좋은 일을 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으니, 제발 좋은 운을 보내주세요. 왜 좋은 일이 하나 생길 때마다 나는 왜 꼭 그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나요. 그냥 좋은 일 그대로, 좋을 수는 없을까요.

그냥 마냥 행운을 달라고 조르지는 않을게요. 대신 좋은 일, 좋은 사람, 좋은 타이밍을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주시길. 행운을 알아볼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을 주시길."


예전에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참 싫어했다. 노력과 재능이 30%, 운이 70%라니!

그런데 살아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 운 좋은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아니, 스스로 운을 끌어당기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내 노력만큼이라도 운이 따랐으면 좋겠다.



스님이 주셨던 기도책을 열어본다. 불교 용어가 가득한 기도책은 영어나 외국어 하나 없는데도 읽기 쉽지 않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냥 읽으라고 하셨으니 그 말씀에 따른다. 잘은 모르겠지만, 참회의 기도는 좀 더 진심을 담아 하게 된다. 눈과 귀, 코, 혀, 몸과 의식으로 지은 죄업에 관한 참회.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저희들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좇아오면서 몸의 근본뿌리가 착하고 좋지 못한 인연으로 갖가지 감촉을 탐내고 집착하여, 이른바 여자는 남자의 몸에 남자는 여자의 몸의 부드럽고 섬세하고 연하고 매끄러움 등, 갖가지 몸의 감촉들에 탐착 하여 정신이 뒤집혀서 몸의 근본무명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번뇌의 불길이 타올라 신업을 짓고 만들었으며 세 가지 불선업인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는 살생과 주지 않는 물건을 훔치는 도둑질과 정당하지 못한 음행을 하며 모든 중생과 크게 원수 맺는 등의 각종 파계를 저질렀으며 탑과 사찰을 불 찔러 태우는 등 삼보의 재물을 사용하고 삼보를 욕되게 하였음에도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스러워하지 않았사옵니다...

향 사르고 꽃을 뿌려 몸으로 지은 죄의 허물과 과실을 드러내어 감히 덮어두거나 감추지 않겠사오니 이러한 인연으로 저와 더불어 일체중생이 몸의 근본뿌리로 지은 모든 중죄를 마침내 맑게 청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부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도에는 부처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경마음, 지난날에 대한 참회와 반성, 용서받고 다음 생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은 알겠다.


그러고 보면 모든 종교가 바라는 것은 용서와 사랑, 구원인가. 모든 인간이 그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해 온 것.

용서받고 용서하고 싶은 마음, 그 용서를 통해 불안에서 벗어나 안심하며 살고 싶은 희망.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 그 사랑을 통해 더 행복해지고 싶은 욕구.

구원받고 구원하고 싶은 마음, 그 구원을 통해 영원한 안식을 얻고자 하는 바람.


처음에는 나의 이직과 주위로부터의 제대로 된 인정,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기도했다.

그리고, 좋은 운을 달라 기도하고.

그다음에는, 용서와 사랑, 구원을 기도하게 된다.



새벽 명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곳에 의탁해 살고 있는 고양이와 마주쳤다. 사람들 손을 제대로 탄 것인지, 수행자들이 명상 마치고 마루에 앉아 신발을 신으려 하면, 턱 하니 무릎에 올라와 앉는 녀석이다.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들을 졸졸 따라다니기도 하고.

내게도 다가와 꼬리를 휘감으며 에뻐해 달라 보챈다. 예쁨 받고 사랑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래도 나를 안지 않겠다고? 나를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어쩔 수 없지. 그럼 내가 갈 수밖에."


멀뚱히 서있는 내게 다가와, 내 몸을 산타기 하듯 열심히 오른다. 영차, 매우 진지한 눈빛이다.

두려움 없이 원하는 것을 향해 직진!

나도 이런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내게 준 교훈!

이전 20화 벌써 중년이라니, 슬프지만... 중년힐링명상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