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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베풀어주세요, 그리고 내가 나에게도 자비를!

1. 자애명상 

자애(慈, mettā, Loving-kindness)는 모든 존재가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익과 행복을 주려는 마음이며... 자애명상(mettā bhāvanā, Loving-kindness Meditation)은 자신과 타인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 라는 마음으로 자애의 마음을 계발하는 명상이다. 


2. 연민명상 

연민(悲, karuṇā, Compassion)은 모든 존재들이 지닌 불이익과 괴로움을 없애려는 마음이며... 연민명상(karuṇā bhāvanā, Compassion meditation)은 자신과 타인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의 괴로움에 공감하고,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주려는 연민의 마음을 계발하는 명상이다. 


3. 자비명상 

‘자비(慈悲)’는 빨리어로 ‘자(慈)’를 뜻하는 ‘자애(mettā, Loving-kindness)’ 와 ‘비(悲)’를 뜻하는 ‘연민(karuṇā, Compassion)’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자비 명상은 자애명상과 연민명상을 포함한 개념으로서 ‘자신과 타인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자애의 마음과 모든 존재들의 괴로움에 공감하고,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주려는 연민의 마음을 계발하는 명상’으로 정의한다.


- 이란희, '자애명상과 연민명상 기반 프로그램 연구: 정서와 대인관계 변화를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2022, 석사논문), p. 12



세계명상마을에서 명상을 배울 때, 명상 전에 '자비관'을 먼저 읽고 시작하라 하셨다. 

자비? 가톨릭 기도문에 자주 등장하는,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 기도문의 자비를 의미하는 걸까. 하느님이 나를 가엾게 여기고, 복을 베풀어주길 바라는 마음? 

불교에서도 자애, 자비, 연민은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니, 그만큼 불교식 명상에서도 자비관이라는 것이 중요한가 보다 했다.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과 열반의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비와 연민은 필요하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자비의 주체와 객체가 조금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톨릭에서는 자비는 "하느님이 나에게 베풀어주는 것"인데 비해, 불교에서는 부처님이나 다른 신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남을 위해 베풀어야 하는 것". 종교 전문가가 아니라서 깊게 이해한 건 아니지만, 두 종교를 경험해 본 초급자 입장에서 이해한 바는 그랬다. 


눈을 감고 명상하기 전, 자비관을 떠올렸다. 

각산스님은 "나 자신에 대한 자비를 먼저, 그리고 타인에 대한 자비"를 기도하라 하셨다. 

그래, 참 맞는 말씀이다. 나 자신에 대한 가여운 마음, 용서와 따뜻한 마음, 긍정적인 태도 없이 남에게 무슨 친절과 배려를 베풀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아, 이제까지 너무 열심히 살아왔구나. 

왜 그리 절박한 마음으로 열심히만 살아왔나. 

무슨 마음으로, 내가 직장에서 하는 일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온 것일까. 

내 일은 직업일 뿐, 내 존재 자체가 아니었는데. 나라는 존재의 그저 일부일 뿐이었는데. 

무슨 대단한 신념을, 목표를 성취하겠다고 나 자신을 스스로 몰아세웠나.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구나. 

불쌍하고, 어리석었다. 

이젠 그만하고 싶다. 그렇게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 


이런 마음이 들고나서 보니, 그동안 내가 매달렸던 일과 공부, 머리로 하는 일은 그만.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전혀 다른 것들을 하고 싶어졌다. 이를테면 빵을 만든다던가, 옷을 만들어본다던가. 운동도 남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 그러니, 마음이 편하다. 스트레스도 없고. 


한편으로는, 더 이상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부작용도 생긴다.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궁극적인 답인가 보다 싶기도 하다. 

그래선가,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또 일을 하게 되겠지만, 당분간은 푹 쉬고 싶기만 하다. 

이것도 나 자신에 대한 자비관, 자비명상의 긍정적인 면, 그리고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 



이젠, 남에 대한 배려도, 무조건적인 이해도 하고 싶지 않다. 

내 친절과 배려를 받을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난 과하게 친절하고 과하게 배려하고 도움을 주려 했구나. 

나의 친절에 호응하지 않는 사람, 나의 배려를 당연한 권리인 줄 아는 사람, 나의 도움을 쉽게 공짜 물건처럼 대하는 사람. 그런 이들을 냉정한 눈으로 알아보아야 했다. 뜨뜻미지근한 연민과 배려가 아니라. 


대신, 마음이 선한 이들, 친절과 배려의 가치를 아는 이들, 그리고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려는 이들에게만 내 마음을 나눠줄 생각이다. 그것이 성숙한 어른의 태도가 아닐까. 


자비와 연민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 한편은 짠하게 아린다. 그리고 몽실몽실 따뜻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 다른 한편은 한겨울 산골짜기에 부는 찬바람처럼 차가워진다. 

한 손에는 따뜻한 손난로를, 다른 한 손에는 차디찬 칼 한 자루를 쥐고 있는 기분이다. 



이란희 님 논문에 따르면, 이미 외국 학자가 만든 인지적 기반의 연민 수행, 연민심 함양 프로그램이나, 연민중심치료, 마음 챙김-자기연민 훈련 프로그램도 있다고 한다. 

물론 예상하다시피, 이러한 프로그램들에 대한 실증적 연구의 결론은 긍정적이다. 


"자애명상과 연민명상 기반 프로그램은 개인의 정서적 차원에서는 우울, 분노, 스트레스 등의 부정적인 정서를 감소시키고, 자아존중감 향상, 자기 이해 증진, 자기 친절 증진 등의 긍정적인 정서를 증진시켰다. 대인관계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대인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타인에 대한 이타심과 이타 행동 증진, 사회적 연결감을 강화하였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도움이 될 텐데, 대인관계 차원에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무조건적인 이타심, 희생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고, 사실 타인과의 연결성이라는 것도 허상이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그러나, 이러한 회의적인 생각을 멈추고 생각해 보면 핵심은 "나 자신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을 통해, 남들에게도 조금 더 너그럽고 친절해지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나는 다시 한번 "자비관"을 떠올려본다. 

신이 있다면,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아니, 자비를 신에게 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자비를!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둘 중 하나를 택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Or 가 아니라 And 여도 되지 않을까? 


신이 있다면,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그리고 나도 나 자신에게 자비를,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에게도 자비를 빕니다. 

우리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구할 수 있기를! 


마음챙김-자기연민민(Mindfulness Self-Compassion) 명상 프로그램, 위 논문 p.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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