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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풍파를 겪어본 어른이 필요하다

한 때 신문 1면 뉴스에 나올 정도로 세상 떠들썩한 논란 한가운데 있었던 A. 사실 다른 누군가의 소개로, 처음 연락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뉴스에 나온 그대로, 잘못 인정하지 않고 고집불통일까? 권력 에 비굴한?


처음 만났을 때 이미지는 공부 많이 한, 전형적인 학자 타입. 점잖고, 예의 바른 어른이었다. 학교 후배에게 도움받게 되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며 재차 겸손하게 인사도 건네셨다.


뉴스가 잠잠해지고, 그때 그 사건에 대한 재평가도 일어나서일까. 나도 마녀사냥에 가깝게 대중심리에 휘둘리던 것에서 벗어나 다시 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후에 이런저런 사건들까지 다 종합해서 보면 억울하다 싶기도 하셨을 텐데, 어떻게 그 시간들을  다 보내셨나요? 저는 그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일들 겪으면서도 삶이 무너질 정도로 힘들었었는데요."


"그땐 나름 객관적인 증거를 들어 설명도 하고, 설득도 했었죠. 끝까지 역사적 기록을 남기려고 애도 써봤어요. 하지만 언론의 입장이나 여론의 흐름도 이미 손쓸 수 없이 되어버리고, 더 큰 역사적 파고 속에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저는 종교가 있으니까, 아 이런 일을 겪게 하는 하느님의 뜻이 있겠구나. 그분의 뜻에 나를 온전히 맡기자 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나 또한 스스로를 다시 들여다보고, 많은 깨우침도 얻었어요. 그게 다 뜻이었다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생기는 일, 다 내게도 생길 수 있고. 인생에 좋은 순간 있으면, 또 나쁜 일들도 생길 수 있고. 억울하고 힘들지만, 그저 인내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순간도 있어요.

그런데 그조차 다 지나가게 됩니다. 조급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걸 배운 것 같아요. 인생에 한 챕터는 끝났지만, 그게 삶의 마지막은 아니에요. 다만 다른 챕터가 열리는 거죠."


A는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그렇게 애썼지만, 힘든 순간이 닥쳤을 때 같은 동료들이 등 돌린 것이 가장 아팠다 하셨다. 자신은 아무 상관없는 척, 모른 척.

오히려 앞장서 자신을 비난하고, 그 기회에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애쓰고.


그래, 저렇게 학식 높고 높은 자리에도 있어본 어르신도 다 겪게 되는 일인가 보다. 때로는 자신이 한 일에 비해 더 큰 대가를 치르거나, 그냥 운 없게 사건사고를 맞닥뜨리게도 되고.


일일이 다 쓸 수는 없지만, 나는 A와 만남을 통해 사람을 잘 모르면서 함부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A가 겪었던 것처럼, 나 또한 누군가로부터 어이없는 오해를 받기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평가받기도 하고. 그 때서가 되어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실패랄까, 우여곡절이랄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파고를 겪은 어른들의 초연함을 보게 된다. 저렇게 의연하게, 당당하게 살 수 있을까.



"내가 제나를 오랫동안 봐왔잖아. 꽤 오래 지켜봤는데 전문성도 있고 무엇보다 인품이 괜찮은 친구야. 이제 우리 가족 같은 친구니까 같이 좀 챙겨고. 지금 이 친구 힘든 때고, 쉬어가는 때이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어."


비가 오는 어느 날,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하며, B는 자신의 친구에게 이런 부탁을 건넸다. 갑자기 꺼난 말씀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B는 7-8년 전 일 때문에 만난 어른. 처음에는 하도 까칠하셔서, 다시는 못 만나겠구나, 나를 싫어하시나 했다. 하지만 이후로 B는 종종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르셨다.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이야기 나눌 기회도 많아졌다.


서로 입장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 대놓고 반대의견을 애기해도 아, 너는 그런 입장이구나, 하지만 사실 이면에는 이런 사연들이 있고, 이런저런 역사적 맥락이 있는 거야, 너의 말에도 일리가 있고,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알겠어. 그 점은 인정해.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단다.

가르치려 하지 않고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나의 장단점을 알게 되고, 공적인 면뿐만 아니라 개인사도 알게 되고. 그런 몇 해 시간이 지나고, 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저렇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도움주려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일로는 자신 있다, 사람들과 관계도 좋고. 모두가 날 인정하고, 내 뜻대로 잘해나갈 수 있겠다 싶을 때, 생각지도 못한 사람으로부터 뒤통수 맞았어요. 얼얼하고, 어떻게 손쓸 수도 없이 순식간에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응, 원래, 다 그렇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배신하고 상처 주는 거야. 내가 잘 나가고 정점에 있다고 생각할 때, 위기가 오고, 공격당하는 거야. 그렇게 인생의 위기가 오곤 하지."


인생의 온갖 풍파를 다 겪은 B가 해준 말이었다. 정말 슬프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며. 그래서 잘 나갈 때 바짝 엎드려 조심해야 해 한마디 덧붙이신다.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도 있지만, 또 그때 좋은 사람, 소중한 이들만 남게 되고, 정말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하셨다.


아프고 슬플 때, 그런 말씀들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아등바등 살며 겪은, 고통스러운 일 또한,  누군가 이미 다 겪은 일. 하늘 아래 새로운 일은 없구나.


그럴듯한 직장 이름과 타이틀 사라지고, 일로부터 떨어져 있는 지금, 좋은 어른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탄탄대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분들 아니라, 인생의 굴곡을 겪은 어른들로부터.


어쩔 수 없는 불행도 겪을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그 불행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기회. 사람들을 알아보는 안목, 조직과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력을 배울 수 있는 기회란 걸 알려주는.

타인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의 존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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