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 없는 하루도 꽤 괜찮았어

by 괜찮지않은사람

하루를 아무것도 안 하고 흘려보냈다고 자책하던 날이 있다.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린 날. 무언가를 해내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이 가슴을 짓눌렀고, ‘나는 또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구나’ 하는 무력감이 자꾸 내 어깨를 구부리게 만들었다. 그런 하루가 몇 번 반복되면, 나는 자꾸만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됐다. 남들은 전시하듯 바쁘고, 성장하고, 매일을 알차게 보내는 것 같아 더 초라해졌다. 내가 느긋한 삶을 원한다는 말조차, ‘게으른 사람’의 자기합리화처럼 들릴까봐 겁이 났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일어나고, 씻고, 밥을 먹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일을 해낸 날이었다. 내 감정을 어떻게든 달래며 하루를 넘긴 것도 나였고, 아무와도 얘기하기 싫은 마음을 애써 숨기고 평범한 하루인 척 견딘 것도 나였다. 누구도 박수쳐주지 않고, 결과로 남지 않으며, 보상받지도 못하는 그런 하루들이 내 삶에 분명 존재했지만,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였다. 성취가 없었다고 해서 실패한 하루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날이 있어야만 내일을 다시 살아낼 힘이 생긴다.

우리는 성과와 속도로 평가받는 세상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남겨야만 유의미한 하루라고 믿는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날에 우리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썼고, 마음이 아픈 날에는 그 아픔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하루를 견뎠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대단한 능력이 아닐까.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 존재해야,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 성취 없는 하루는 단지 쉼일 뿐이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숨고르기. 그리고 어쩌면, 그 쉼 속에서야말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다. 오늘도 충분히 잘 살아냈다고. 아무도 보지 않은 자리에서 나를 안아준 내가, 무너지는 걸 억지로 참아낸 내가, 끝내 주저앉지 않은 내가 자랑스럽다고. 타인의 기준에 휘둘릴 때마다, 나는 자꾸만 나를 작게 만들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날이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혼잣말이어도 좋았다. 적어도 나 자신은 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이따금씩은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도 괜찮다고, 목표 없이 살아도 된다고, 나태해지는 나를 탓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바쁘게 달리는 사람만이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남기 위해 쉬는 사람도, 주저앉은 사람도, 잠시 길을 잃은 사람도 모두 존중받을 수 있었으면.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고, 속도가 있고, 휴식이 필요하다. 성취로만 하루를 평가하는 잣대는 너무 가혹하다. 삶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랐지만, 정작 어른이 되니 그 말은 잊혀져 있었다. 나는 이제 그 말을 다시 꺼내 본다. 오늘의 나는 결과보다도,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곧 실패는 아니다. 어쩌면 이런 하루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다음을 살아내기 위한 준비 기간, 잠시 멈춰 숨을 고르기 위한 시간. 더 이상 나를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성취 없던 그 하루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하루든, 내가 살아낸 하루는 모두 의미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보듬어주는 말들이 하루의 끝에서 나를 안아주었다.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이렇게 살아낸 나를 칭찬해주기로 한다. 성취 없는 하루도 꽤 괜찮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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