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망치는 건 내가 아니라 사회야

by 괜찮지않은사람

누구도 처음부터 망가진 상태로 살아가진 않는다. 무기력해지기 전에는, 무기력해지지 않으려 발버둥쳤던 시간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지금의 나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걸 해보려 했고, 너무 많은 기대를 품었고,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려 하다가 고장 난 거다. 그런데 세상은 말한다. 네가 게으르기 때문이고, 네가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이고, 네가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점점 그 말에 익숙해져 갔다.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말들을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이며, 그게 진실인 양 삼켜버렸다. 사회는 언제나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요즘 애들’이 문제라고 말하고, 열정이 부족하다고 훈계하며, 당연한 권리마저도 특권처럼 굴게 만든다. 그러니까 고장이 난 건 나인데, 그 고장을 만든 건 나 자신이 아닌데, 고통을 감당하는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

‘노력하면 된다’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는 끝없이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면접장에서 스스로를 포장하다 보면 진짜 나는 어디로 간 걸까. SNS 속 반짝이는 삶을 볼 때마다 나는 얼마나 초라해지고 있었던 걸까. 그건 열등감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비교와 박탈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걸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했다. 멘탈이 약하다고 말했고, 마인드가 문제라고 했다. 누가 알려줬으면 좋았을까. 네가 문제인 게 아니라고. 시스템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아무리 버텨도 내 몫의 안정조차 주어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을 탓하고 또 탓했다. 이젠 안다. 나는 잘못된 게 없었다는 걸. 오히려 문제는 이 지독한 구조라는 걸.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싶지 않은 날이 많았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막힐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날조차 회사에 나갔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으면 당장 무너질 것 같았고, 무너지면 아무도 내 곁에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고 하면서도, 정작 아프다고 말하면 손가락질하는 이 사회가 참 싫었다. 정신과 문턱을 넘는 순간 취급이 달라지고, 잠시 쉬고 싶다고 말하면 능력 없다는 낙인이 찍힌다. 도대체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져야 할까. 누구나 잠시 쉬고 싶을 수 있고, 누구나 기운 빠진 날이 있을 수 있고, 누구나 인생의 템포가 늦어질 수 있는데, 사회는 그것마저도 용납하지 않는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 속에서, 잠깐 멈춰선 사람은 실패자로 낙인찍힌다. 그게 무서워서 나는 쉴 수 없었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억지로 부지런한 척 살아냈다. 하지만 그 부지런함조차 언젠가는 고갈된다.

나를 망가뜨린 건 나 자신이 아니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일들, 내가 원한 적 없는 경쟁, 계속해서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야만 했던 불안한 사회가 문제였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우리 탓을 하며 살아야 할까. 왜 우리는 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자신을 먼저 탓하게 되는 걸까. 사회가 병들었고, 그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다 내가 병든 건데. 그런 나를 향해 “노력하면 다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숨이 턱 막힌다. 그들이 말하는 노력은 사실 ‘복종’에 가깝다. 불합리한 현실에 아무 말 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것, 그게 그들이 말하는 성공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겠다. 더 이상 나를 탓하지 않기로.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이 사회가 나를 충분히 받아주지 않았다는 걸, 나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의 설계가 비정상적이라는 걸.

지금 무기력하다면, 그건 당신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은 수없이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 실패한 게 아니라 지친 것이다. 인정받지 못한 수고들, 말로 꺼내지 못한 고통들, 누적된 불안과 비교 속에서 생긴 상처들이 무기력이라는 이름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자. 우리를 망가뜨린 건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끝없이 버텨냈고, 살아냈고, 여기까지 도달했다. 이 문장을 읽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증명이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다.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도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 사회다. 앞으로도 아마 이 구조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또 무너질 수도 있고,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하자. 무너진 적은 있어도 잘못한 적은 없다는 걸.

keyword
이전 05화그냥 버티는 중인데, 왜 죄인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