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착해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조용하고, 말 잘 듣고, 무던한 사람이 되어야만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를 찌르는 말도 웃어넘겼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이해하려 애썼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어른이 되면 참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하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착하게 살아온 나는 점점 더 지쳐갔고, 말없이 삼킨 것들이 가슴 한가운데에 무겁게 쌓여만 갔다. 말하지 못했던 말들, 도망치지 못했던 순간들, 거절하지 못했던 부탁들이 결국 나를 병들게 했다. 내가 너무 착했기 때문에 무시당했고,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도 눈치채주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더는 참기 싫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 집에 돌아온 밤, 갑자기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가,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하소연을 쏟아내고, 만나자고 하고, 자기 일정을 내게 맞춰보라고 했다. 평소라면 또다시 맞춰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나는 “미안, 그럴 기분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 짧은 한마디를 하기까지 얼마나 숨을 골라야 했는지 모른다. 말하고 나서도 괜히 불편해졌을까 걱정됐다. ‘나 너무 못된 건가?’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편했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누군가에게 못된 사람이 되는 일이 이렇게 편안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내가 먼저였던 적이 있었는지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길 원했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쁜 감정을 숨기고, 불편한 말은 삼켰다. 그렇게 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늘 외로움이 자라났다. ‘왜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줄까?’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내 마음을 몰라줬던 거였다. 나는 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고, 나를 위해 싸워주지 않았으며, 나의 감정을 보호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외롭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정한 착한 사람의 기준은 잔인하다. 늘 웃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희생하는 사람. 하지만 정작 그렇게 희생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건 감사가 아니라, 점점 더 과해지는 기대였다. 착한 사람에게는 더 많은 걸 요구하고, 더 적게 돌려준다. 그리고 그 착한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이 왜 이렇게 힘든지조차 모른 채 스스로를 책망하게 된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나?’ 그렇게 자기를 의심하며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나는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못된 사람이 된다는 건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단지 내 감정을 지키기 위해 단호해지는 일이다. 더는 침묵하지 않고, 더는 끌려가지 않고, 더는 지우지 않는 것. 때로는 선을 긋고, 때로는 거절하며, 때로는 불편하다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막이다. 그런 결정을 ‘못된 일’이라고 부르는 사회가 잘못된 거다. 나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착한 사람으로 남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걸 끝까지 기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조금 못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무례한 사람에겐 웃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 용기 덕분에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만든 인생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만 남는 것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편해졌다. 가볍고, 내 삶에 중심이 생겼다.
못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그날이, 나를 위한 첫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날 이후로 내 삶은 더 진짜 같아졌다. 더 솔직해졌고, 더 사람다워졌다. 내 감정에 솔직해진 만큼, 내가 누군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순간이 오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그게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