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괜찮지않은사람

아픈 마음에도 속도가 있다면, 나는 지금 아주 느린 쪽에 서 있다. 모두가 빨리 잊으라 하고, 금방 괜찮아지라 재촉하는 세상에서, 나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슬픔을 서두른다고 해서 덜 아픈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이 남아, 더 오래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천천히 아파보기로 했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왜 굳이 천천히 아프려 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안다. 제대로 느끼지 못한 아픔은 형태를 바꿔 다시 찾아온다는 걸. 그리고 그때는 훨씬 더 지독하게 나를 덮친다는 걸.

살면서 많은 순간을 ‘괜찮은 척’으로 덮었다. 버텨야 하는 자리에 서면, 속이 무너져도 표정은 멀쩡해야 했다. 눈물이 목 끝까지 차올라도 삼키고, 웃음 비슷한 표정을 만들었다. 그게 어른이 되는 거라고 믿었고, 강해지는 과정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건 강함이 아니라 무기력이었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힘조차 잃어버린 상태.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멈춘다. 나를 들여다보고, 무너진 감정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준다. 억울함, 서운함, 외로움, 두려움, 상실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는 괴물이 되지 않는다. 대신 내가 꺼내 안아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아픔을 제대로 마주하는 건 단순한 회복이 아니다. 그건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 방식이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은 슬픔일지라도, 나에게는 충분히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지켜주고 싶다.

조금 천천히 아플 거다. 누군가는 그게 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상처를 서두르면 흉터가 깊어지고, 충분히 쉬어간 발걸음만이 다시 길 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이 책은 나의 느린 아픔에 관한 기록이다. 한 걸음씩, 때로는 멈춰서 숨을 고르며,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 기록이, 당신이 너무 서둘러 잊으려 했던 감정을 잠시 붙잡아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함께, 천천히 아파도 괜찮다는 용기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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