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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May 07. 2023

여섯 계절의 풍경화 - 울봄

2. $0.58 짜리 소일거리가 선물한 $99 짜리 Playstation



먹고살 것이 걱정이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건너는 짓거리를 해서 대책이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구바씨는 가장이어서 이것저것 조사를 하고 다녔지만 책상에서 펜으로만 일한 사람이 무엇을 쉽게 결정하겠나. 오랫동안 생각해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화분 안에서 돈을 꺼내 쓰면서 맘이 편치는 않았지만, 우리는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므로 찬찬히 알아보자 며 서로를 달랬다. 일단 시간은 넉넉하니 뭐 소일거리라도 하라는 선배 이민자들의 말을 아주 잘 귀담아 들어 우리는 소일거리를 하기로 했다.


세탁소 쇠 옷걸이에 종이 붙이기! 미국 세탁소에는 가느다란 쇠 옷걸이를 쓴다. 그 옷걸이에 ‘We Love You’라는 종이를 풀로 붙이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인형에 눈을 붙이는 일과 같다. 곶감 꽂이에서 곶감 빼먹는 심정이었던 우리는 용돈이라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비장한 마음으로 쇠 옷걸이, ‘We Love You’가 쓰인 하얀 종이와 풀 앞에서 흐뭇해했다. 괜스레 이민 생활에서 자리가 잡혀 가는 거라는 알량한 생각에 스스로를 기특해했다.


차로 30분쯤 가면 세탁소 공장이 있다. 거기서 그 쇠 옷걸이와 ‘We Love You’  종이 그리고 풀을 받아와 쇠옷걸이에 붙여서 다시 가져다주는 일이다. 한 상자에 쇠 옷걸이가 500개 들었다. 구바씨가 낑낑 대며 노력해도 들기 어려운 무게였다.  원 베드룸 이층형 아파트에 살았던 우리는 그 쇠 옷걸이 한 상자를 이층으로 들어 올리려면 온 식구가 대동해 용을 써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용돈이라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소일거리라도 소개해준 선배 이민자를 참 고마워했다. 한 번은. 미국으로 어린 아들과 가방 하나 들고 온 딸이 걱정되어서 엄마가 오셨다. 우리 소일거리를 보시더니 당신도 손을 보태셨다. 동네 이웃에게서 얻은 상을 하나 펴 놓고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쇠 옷걸이와 ‘We Love You’가 쓰인 하얀 종이 그리고 죽 같은 풀을 앞에 놓고 흐뭇해했다.


그 소일거리는 이랬다.  500 개가 든 한 상자를 끝내면 $7 받는다.  최소한 $50불을 받으려면 7 상자를 끝내야 한다. 무게가 만만치 않아 차에 4박스 이상은 실을 수도 없다. 2시간쯤 흘렀을까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한 상자 500 개를 끝내는 데 어른 셋이서 4시간 정도 걸린다. 당시 최저 임금이 시간당 $5 불이 채 안 되었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우리는 그 당시 시간당 약 $0.58 받은 것이다. 기름값은 갤런당 $0.98 혹은 $0.99 할 때였으니, 오며 가며 기름값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한 상자를 다 끝냈을 때는 우리 모두 ‘이게 소일거리인가’라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구바씨는 “노동의 신성함을 깨달았네!” 라며 아주 진지 하게 말했지만 가장인 그의 속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엄마 역시 허리를 자주 두드리셨지만 벌이를 시작하지 못한 딸을 돕는다는 마음에 기꺼이 허리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셨다.


어른 셋이서 거의 한 달 반을 앉아서 일한 소일거리로 $100불을 모은 날 우리는 허리를 펴고 너털거리며 웃었다. 그 100불로 어린 아들이 오랫동안 사고 싶어 했던 $99.- 짜리 Playstation을 사주기로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매일 시무룩하던 학교 생활에서 아들은 또래에게 자랑거리가 생겼다. 그 Playstation 때문에 아들은  말이 안 통해도 친구라며 일본 아이 하나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우연히 서랍 안에서 그 Playstation을  보게 되었다. 아들한테 이 고물을 왜 여태껏 가지고 있냐고 이제 제발 좀 이런 게임기는 버려라 했더니, 그것을 죽을 때까지 안 버린다고 했다.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가 어떻게 벌어서 사준 Playstation인데 내가 그걸 버려!” 하며 “그거 버리기만 햇!’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순간  눈이 흥건해졌다. 그때 6살이었던 아들이 우리의 그 소일거리를 기억하는 것도, 그리고 그 소일거리에 어른 셋이서 얼마나 온 힘을 다했는지를 기억하는 것도, 그냥 가슴에 망치질을 꽝! 하고 당한 것 같았다.  망치질당한 곳이 많이 아렸다. 고딩 아들은 또 그렇게 나를 울렸다. 그 시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 때문에 눈이 젖었나 보다.

시리고 추운 내 삶의 서러움에  위로라는 여신이 손을 내민다. 

이제 그만 추워도 된다고.

생각을 비우고, 마음도 비우고, 비워진 마음에 이제 아늑함만 담아 놓으라고.

그리고 나를 또 다독거린다.

시간당 $0.58 받는 소일거리가 $99 짜리의 Playstation이 된 것처럼 희망만 가지라고.

꿈은 멀리 있지만 보이는 희망은 지금부터라고.

이제 그만 서러우라고…


우리는 동네 가라지 세일, 그리고 근처 벼룩시장을 다니며 살림 거리들을 모았다. “미국 사람들은 쓸만한 것들을 내다 팔다니… 부자들인 가봐~” 하며. 우리는 절약했지만 궁상은 떨지 않았다. 희망 때문이었다. 아이를 six flag 놀이 공원에도 데리고 가고 보테니칼 가든도 보여주고 맨해튼도 버스로 왔다 갔다 했다. 우리에게는 Leonia에  머물런던 시간들이 새 생활의 입구를 넘어서 우리들 삶의 아늑함을 찾을 거라는 희망, 겨울과 봄사이에 계절 “울봄” 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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