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나는 아빠와 눈을 거의 마주쳐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빠와 싸울 때 나를 노려보는 아빠의 시선에서 살기를 느낀 적은 있었다. 그럼에도 아빠의 시선이 어떤 것인지 크게 신경 쓰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17살의 여름, 엄마는 갑자기 아빠를 향해 소리쳤다.
“우리 딸을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딸을 왜 그렇게 쳐다봐?”
“너 왜 얘랑 내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모함하냐?”라고 이어지는 아빠의 말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말이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워서 나는 엄마가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무의식에서는 ‘엄마의 말이 맞으면 어떡하지?’하는 두렵고 불안한 감정이 일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엄마 없이 아빠와 남동생과 살게 되었을 때, 밤마다 방문을 잠갔으니까.
더불어 아빠와 남동생하고만 살면서 성인이 되고 왜인지 엄마의 역할을 내가 다 메워야만 한다는 압박이 들었다. 딸과 누나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 것 같고, 그런 역할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마음이 이상했다.
‘내가 왜 아빠의 아내가 할 잔소리까지 해야 하는 거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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