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무렵의 그 서류 한 장으로 엄마의 생활이 어렵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다짜고짜 엄마 문제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정신병원이었다. 엄마가 흉기를 가지고 다녀서 겁에 질린 동네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입원을 하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안 것일까, 동생도 있는데 왜 나에게만 이러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일에 갑작스레 이러면 내 생활은 어떻게 하라고…. 정말이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순간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일을 제쳐두고 엄마가 있다는 낯선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엄마를 만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갔다. 그때 나는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았을 때였고, 엄마에 대해 가지고 있는 뒤엉킨 감정과 생각들이 여전히 정리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를 담당하게 될 의사만 만나고 왔다.
의사를 통해서 들었던 이야기는 모두 내가 처음 듣는 엄마의 인생이었다. 사실 부모님의 이혼은 내가 고등학생 때 이루어진 게 아니라 그 훨씬 이전에 성립되었다는 것. 그리고 엄마가 흔히 조현병으로 불리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계시다는 것.
엄마의 병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증상은 어떤지 등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하게 듣지 못했다. 나는 그냥 의사의 지시에 따라 엄마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엄마의 입원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나왔다.
그 뒤로도 병원에서는 몇 번씩 나를 끈질기게 붙잡아 이 서류, 저 서류에 서명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나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나도 우울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누굴 책임질 수 없는 입장으로 제발 그만 연락해달라고 몇 번이고 말을 하고 병원에 자필 내용증명까지 제출했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어 급기야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하는 와중이라 정신이 없어서 모르는 전화를 무심코 받은 게 화근이었다. 엄마가 하는 이야기에는 두서가 없었고, 내용도 없었다. 엄마가 왜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고 놀란 마음이 들어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그 뒤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엄마에게서 자주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벨이 울리는 통에 나는 결국 엄마가 거는 전화번호라고 판단되는 연락처는 모두 차단했다. 그렇게 한 1년,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빠에게 ‘네가 맞을만하니까 맞았겠지’라는 말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엄마에게서 우편이 날아왔다. 내용은 그러했다. 그냥 안부를 묻는 정도. 그런데 그 안에 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엄마는 나의 안부를 묻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