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레 케르테스 운명 4부작
<운명> <좌절>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청산>
이 책들을 읽어주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몇 달에 걸쳐 끝까지 읽었다. 아우슈비츠를 시작으로 어린 나이에 수용소를 거쳐 살아남은 임레 케르테스는 그 경험을 <운명>으로 썼다. 운명에서는 끔찍한 경험만 담기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주인공은 자유로워 보였다.
<좌절>은 주인공 쾨베시의 아우슈비츠 이후 생활이다. 내용이 이어진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불행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운명>을 끝내고 출판하기까지의 긴 세월 동안 작가가 살아온 시간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좌절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인물들이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쾨베시, 시클러이, 베르그가 나오는데 해설에서 그들은 모두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 각 인물의 이름이 실마리가 되었다.
- 쾨베시: 돌처럼 단단하지만 주위 변화에 동요하는 작은 돌
- 시클러이: 한 자리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암반. 시클러이는 쾨베시가 글을 쓰고 생계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그의 과거를 모두 털어 내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단계로까지 이끌지는 못한다.
- 베르그: 산이라는 뜻. 인생 역정을 거치며 불굴의 의지를 산처럼 쌓아올렸다. 그것을 글로 쓰겠다는 목표에 도전한다.
쾨베시는 성장을 통해 시클러이로, 베르그로 나아간다.
그렇게 고통을 견뎌 왔던 주인공은 새 생명 만들기를 포기한다. 그 기록이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에 있다.
'아우슈비츠라는 비인간적 존재를 허락했던 이 세상에 아이를 내던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는 이 끔찍한 세상에 아이를 낳아 자신처럼 혹독한 아픔을 겪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호하게 인류 역사의 지속성, 즉 생식을 포기하는 것이다.' (p. 216)
<청산>은 희곡이다. 자기 존재를 스스로 청산한 글쓴이의 희곡이다. 주인공은 이 사람의 희곡을 들여다보는데 알고 보면 자기 이야기다. 여기서도 주인공과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 하나다. 트라우마를 못 이겨 자살하는 인물이 있지만 그런 자신을 타자화해 홀로코스트를 청산하고 삶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이렇게 4부작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면서 조금은 지루한 감정을 참으면서 읽었다. 나는 이 작품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쓰는 사람의 고통과 다짐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