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륜 Mar 13. 2022

사는 일

드라마 <월간 집>

  인생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주연 정소민이 나오는 드라마다. 작년 여름에 방영했다. ‘집에서 사는(live) 여자와 집을 사는(buy) 남자의 내 집 마련 로맨스’다. 정소민은 또 남자에게 월세를 내며 사는 여자로 나온다. 아… 빵원이란 별명을 가진 ‘영원’에게 감정이입을 해보았다. 부모님 덕에 함께 살며 나만의 방을 갖고 널찍한 거실과 주방을 누리고 있지만 나 혼자 이 정도 규모의 생활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 나의 공간이 필요하다. 영원이를 보면서 마음 놓고 살 내 집이 없다는 게 막막하게 느껴졌다. 2화에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 보증금을 날리고 빈털터리가 된 주인공을 보니 마치 내 처지 같아서 계속 보게 되었다. 청년이 부모 도움 없이 기반을 마련한다는 게 불가능이라 보는 시선도 있고 가능하더라도 정말 어렵다고 느낀다. 극 중 영원의 사정이 특별히 딱하다기보다는 인간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겨울에 드라마를 보았는데 극 초반에 자수성가한 남주와의 로맨스 설정이라 결국 남자 잘 만나는 걸로 문제를 해결하는 결말인가 싶었다. 그래도 정소민 연기가 좋으니 계속 보았다. 마지막에는 자기 힘으로 집을 마련하는 그림이 나왔다. 드라마틱한 결말이었는데 과정을 알 수는 없었다.


  지난달에 본 드라마를 다시 떠올렸다. 나는 내 힘으로 모든 걸 처리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주체적, 독립적 삶의 태도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내 힘이라는 게 현재로선 글밖에 없다. 글은 나의 차별화된 가치이며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졌지만 즉시 교환 가능한 경제 가치를 증명하기 전이다. 작년에 책을 내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았다. 절대적 규모는 더 꿈꿔야 하는 상태이지만, 나의 머릿속 마음속 이야기가 물건이 되어 팔리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큰 성공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떤 일을 진행하기 전에 원칙을 만들고 그에 따른 전략을 세운다. 완벽한 계획이 아니더라도 대강 큰 틀이 잡히면 즉시 실행한다. 보완점이 생기면 피드백을 반영하고 원칙에 문제가 없다면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간다. 조금 지루하더라도 묵묵히 꾸준히 유지한다. 리듬을 잃지 않는다. 규칙성을 유지하며 시간을 쌓는다. 이렇게 하면 최상의 결과가 없더라도 애쓴 것이니 나를 칭찬한다. 이러한 특성은 누구에게나 있지는 않다는 점도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는 예술만 하는 환경이다. 그렇게 예술에 집중했을 때 생각보다 더 큰 결과물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걸 만들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해볼 것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의 의미는 독종이나 집념과는 조금 다르다. 그저 계속한다는 뜻이다. 지속이 곧 최선이다. 아무런 보상이 없는데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눈에 띄지 않더라도 감정적 보상이라도 주어지기 때문에 또 할 힘이 생겨난다. 계속되고 있다는 건 확인되지 않았을 뿐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계속하기만 해도 웬만큼은 할 수 있다.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만 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면 이렇다. 우선 나는 글을 쓰고 싶을 때 마음껏 쓴다. 그리고 주 2회 운동을 한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몸 선을 가꾸는 프로그램으로 트레이너와 함께한다. 악기를 배운다. 최소 20년 이상 바라보면서 기술적으로는 물론이고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을 만든다. 전공자처럼 잘할 필요는 없다. 들어줄 만하면서 표현이 가능하면 된다. 요리하고 싶을 때 맛있게 만들어 먹으며 요리를 하고 싶지 않을 때는 건강식을 주문해서 먹는다. 건강과 약간의 미용 목적으로 마사지숍을 다닌다. 피부관리는 필요없고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전신 마사지를 정기적으로 받는다. 필요한 곳에 한 번씩 기부를 한다. 전할 때 내 마음이 꽉 차고 받는 사람에게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곳이어야 한다. 소설을 쓰는 데 좋은 영향을 줄 거라 확신이 든다면 투자한다. 국외에 머무른다든지 작품이나 음악회를 보러 간다든지. 일을 위한 일과 재테크는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금 한다. 이것들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모두 해보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자유롭게 하는 데는 제법 비용이 든다.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미래를 준비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이건 나중에, 저건 다음에 하면서 조금씩 유예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는 법은 너무 간단하다. 일은 줄이고 창작활동을 마음껏 하는 데는 돈만 있으면 된다. 문제 대부분이 돈으로 해결되지만 자산을 축적한 후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존재로서의 고민은 끝이 없다. 존재해서 고통스럽고 그것이 생명력이라고 이해했으나 진통제는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 오래 고민했고 그 해결책으로 쓰기를 택했다. 어느 날 나에게 표현 욕구가 대단히 크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건 어떤 식으로든 풀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호하고 감당되지 않는 압력에 질식하고 만다. 글을 쓰면 내가 덜 고통스러워지며 나의 창작물은 누군가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정도의 역량도 갖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계획을 세웠기에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충분한 비용만 있으면 되는 셈이다. 일하지 않거나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는 말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건 시간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다. 놀고먹는 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 다니는 일은 나쁘지 않다. 얼마간 노동의 기쁨도 있다. 사회인으로 적절히 기능하는 안정감과 사람들과 호흡하며 느끼는 소속감도 좋다. 성실히 임무를 완수한 후에는 보람도 있는 것 같다. 직장에 다닐 때보다 집에서 자유롭게 일할 때 더 오래 앉아 있었다. 눈 떠서 잘 때까지 거의 쉬지 않았던 것 같다. 일을 안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원할 때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아침 출근길 맑은 머리로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머릿속으로 문장이 써질 때가 있다. 운명의 짝꿍을 만난 기분이다. 자주 오는 직감이 아니기에 소중하다. 즉시 마음을 풀어헤치고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써 내려가고 싶다. 그렇지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야 한다. 단어 몇 개로 아이디어를 메모한 뒤 머릿속 흐름을 멈추고 일하러 간다. 그때 나는 나의 표현 욕구에 조금의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는 살고 싶지 않을 만큼 외로워진다. 대체 나는 왜 그럴까? 라고 물어봤자 소용없다. 그냥 그런 것이다. 평행우주가 있다면 직장을 좋아하는 나는 그곳에 보내고, 글쓰고 싶어 하는 나는 빈방에 가두면 좋겠는데. 나는 하나이니 알 수 없는 힘이 내 목을 조르는 듯 숨 막히는 기분을 느낀다. 기분의 원인을 파악하기 전에는 막연히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지… 평범하게 일하고 살면 되잖아. 어떤 점 때문에 고통스러운 걸까?’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많은 어느 날 내가 나만의 것을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에게 자유를 줘 보기로 했다. 열심히 일한 적도 많으니까 잠깐 그렇게 살아봐도 될 듯했다. 시간의 자유는 나의 정신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투자한 시간 만큼 결과물도 나왔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그러면 앞날을 준비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자유로운 생활을 멈추고 다시 직장생활을 택했다. 하고 있던 부업도 유지하면서 내가 감당할 정도의 환경이 갖추어져 모두 소화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전략은 직장생활과 부업을 유지하며 쓸모없는 지출을 줄이고 저축하는 것이다. 저축액에서 주식의 비중을 늘려가며 향후 부동산 구입을 시도하기로 한다. 장기적으로 투자하려면 지치지 않아야 한다.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라면 쓰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지출하고 일상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 된다. 푸른 순간을 소중히 여기려 한다.


  위의 계획은 나 하나만 생각했을 때 그렇고,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살거나 같이 지내며 밥맛 나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것과 해낼 수 있는 일들을 기억하며 계속 나아가고 싶다. 꼭 집을 사지(buy) 않아도 된다. 그러나 살면서(live) 지금의 나를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자유라고 느낀다. 지금 나는 경제적 자유, 소설, 사랑 순으로 가치를 둔다. 셋 다 순서를 가릴 수 없을 만큼 간절하지만 앞의 가치가 준비되어야 뒤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디 내가 사는 것처럼 살아가길 바란다. 내가 원하는 일상을 가지면 더욱 가뿐한 마음으로 진중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계획한 일상을 살아가는 미래의 내가 다가와 말한다. “장난해? 그건 기본이야. 더 넓게 꿈꿔봐.” 나는 대답한다. “물론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애자일 조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