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5.20.
2015.4.17.
입원 5일째. 이젠 이곳이 내 집처럼 편해질까 그것이 외려 두렵다. 수면제를 먹지 않은 지난밤을 꼴딱 또 지새우고 말았다. 시간은 어디에서건 공평히 잘 흐르지만 불면의 밤이면 마치 멈추어 있기라도 한 듯 한곳에서 같은 얼굴로 날 내려다보며 웬만해선 제가 가야 할 곳으로 쉬이 흘러가지 않는다.
타인들의 낮은 숨소리와 미세한 뒤척임까지 귓전을 시끄럽게 괴롭히고, 잊으려 겨우 애쓴 기억까지 가슴속 결결이 다시 스며들고야 만다. 무기력한 긴 밤의 유일한 벗은 이어폰을 타고 들어오는 음악뿐, 내 마음 같은 노래가 내 등을 토닥여 나를 위로하지만 미로에 빠진 듯 허둥대며 짙은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 먼동이 튼다.
치료는 생각보다 많이 부대낀다. 작년 겨울 빙판 사고 이후 여기저기 문제가 생긴 듯하다. 그때 충격으로 오른쪽 날갯죽지가 돌출이 되었고 오른쪽 엉덩이와 골반이 심하게 뒤틀렸다. 손목만이 문제가 아니었는데 그냥 미련하게 참고 넘겼더니 지금 와서 더 고생을 한다. 평소 팔과 날갯죽지 주변의 통증은 마치 센 불로 그곳을 지지는 듯, 태우는 듯 고통스러웠었다. 치료사가 보기보다 미련 곰퉁이라고 농 섞인 진심을 말한다. 오늘은 너무 힘겨운 하루였다. 참다가 참다가 진통제 주사도 맞았다. 좀 잘 수 있겠다. 깨지 않기를.
2015.4.19.
병실에 고요가 젖어들면 마치 온전히 혼자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왠지 모를 홀가분함과 까닭 없는 고적함이 공존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기분은 어둠이 짙어지면 극에 달해 눈앞에 과거의 기억과 불가능한 현실의 설정을 펼쳐놓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기도 한다. 잘 안 보기에 알림을 다 꺼놓은 카톡도 괜히 자주 들여다보며 괴로워도 슬퍼도 좀처럼 울지 않는 캔디스러운 내 휴대폰을 못내 원망하기도 한다.
며칠 전엔 귀신같은 친구 녀석이 귀신처럼 늦은 밤 전화를 해서는 죽지 말라는 주사를 떨어댔다. 가끔 술을 푸면 여기저기 전화를 거는 아주 몹쓸 병이 있는, 30여 년 가까이 되는 남자 사람 친구다. 병원이니 빨리 끊으라는 내 말에 대뜸 네가 죽으면 너무 슬프니 제발 죽지는 말아달라, 며 술에 잔뜩 꼬인 혀로 읍소하는 듯 낮게 말한다. 평소 같으면 질펀하게 욕 댓사발하고 매정하게 끊었을 텐데 친구의 한밤 무례가 하나도 밉지 않고 고맙기까지 했다. 단지 혼자 있다는 것만으로 별것에 다 너그러워진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선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단지 무료함을 떨치기 위해 스마트폰을 부쩍 자주 보게 된다. 내 언어로 빚어진 아름다운 문장 하나를 꿈꾸긴 하나 그건 정말 가당치도 않음을 고요와 어둠 속에서 금세 깨닫는 것으로 물러나 앉는다. 누구는 먹물 같은 어둠이라 했고, 또 누구는 석탄 같은 어둠이라 했다. 나는 어떤 어둠으로 할까를 고민하다 이내 접어버린다.
여기까지 끄적이곤 진통제를 기다리며 설핏 잠이 들었는데 악몽을 꾸었다. 짧은 비명 같은 헛소리를 지르다 스스로 놀라 깼다. 누군가의 머리통을 바닥에 수차례 내던지기를 반복했다. 피도 흐르지 않은 채 짓이겨진 머리통이 나뒹굴었다. 살인을 했다는 두려움에 나온 소리는 입 밖으로 흩어져 고요한 병실의 정적을 깨버렸다. 아직 진통제는 오지 않았다.
2015.4.28.
병실에서도 주말은 조금은 느긋하고 느슨하게 흐른다. 토요일은 모든 진료와 치료가 오전에 끝나기에 오후의 병실은 대체로 소란스럽거나 드물게는 고요하다. 주말 늦은 저녁에 도착한 엄마가 보고 싶어 외출을 다녀왔다. 이젠 병실이 더 친숙해졌는지 집이 편하질 않았다. 지난 목요일의 시술은 결론적으론 또 실패했다. 한 시간 가까이 뻣뻣하게 드러누운 나는 그야말로 멘털붕괴, 영혼이 가출할 뻔한 경험을 한다.
어느 이가 그것을 시술이라 불러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게 했던가. 두렵긴 했지만 웬만하면 잘 견뎌낼 것이라 만만하게 본 것도 사실이다. 갈고리 달린 굵고 긴 바늘이 내 목의 중앙을 관통해 들어올 때까지도 참을 만했다. 더 이상 전진하지 않는 바늘을 망치로 두들기기 시작했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졸지에 나무토막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차라리 수면 마취라도 했으면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의사가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바늘의 철수를 명하며 다시 목 밖으로 그것이 빠져나올 때의 그 기묘한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2차 시도를 위해 다시 새 바늘이 목으로 투입되고 거침없는 망치질, 여러 스태프와 주치의의 안타까운 짧은 탄식,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시술은 단지 약만 겨우 투입하고 끝나버렸다. 고주파로 태우려 했던 곳이 이미 석회질화 되어 손쓸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퇴행도 빠르긴 하지만 작년 낙상 때 바로 치료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 방치해 놓았다.
병원에서 나는 요주의 환자가 되었다. 선뜻 다음 치료를 권하지 못한다. 개원 이래 두 번의 시술이 모두 안 된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남은 건 수술뿐인데 쉽지는 않을 듯하다. 안 하고 싶다. 대학 병원으로 옮겨보는 것을 권하기도 하지만 이젠 그만하고 싶다. 허리 시술이 남았지만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겠다. 한두 군데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몇 있겠나. 굳건히 살면 통증도 잦아들 것이라 믿는다.
2015.5.12.
내 따스한 봄날은 바람결에 한번 하느작거리지도 못한 채 병실과 치료실의 좁고 답답한 침상 위에서 맥없이 스쳐가는 중이다. 봄비는 그저 욱신한 통증만 떨궈주곤 나를 울려 놓고 가버린다. 병동 아래 저 너머로 펼쳐진 찬란한 연두와 꽃들의 향연에도 좀처럼 섞이지 못하고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처럼, 떠도는 이방인처럼 이내 눈길을 피하고 딴청을 하고 만다.
몇 날의 밤을 불면했던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불면은 나의 충실한 파수가 되어 아침이 될 때까지도 쉬이 떠나가지 않는다. 내겐 너무 긴 봄밤, 피로한 환자들이 저마다의 코로 뿜어내는 요란한 몇 중주의 실내악은 겨우 내려앉으려던 눈꺼풀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밖은 아직 생동하는 봄날이나, 내 봄날은 해마다 그러했듯 또 풍장을 기다린다.
2015.5.13.
네 번째 시술. 이번엔 허리. 갈수록 진정한 환자가 된다. 그제 했던 목 시술은 제대로 안 되었다. 다시 또 일정이 잡혔다. 다른 방법을 써야겠다고 한다. 여러 날 잠 못 들고 어제도 코골이 환자의 천둥 같은 소리에 밤을 지새우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먼저 잠들려고 했는데 이미 세 시간여 전부터 천둥이 친다. 진통제 주사와 수면제를 한꺼번에 집어넣고 잠을 청해봐야겠다. 그녀의 천둥소리가 극에 달한다. 내 통증도 거기에 닿아 있다. 갑작스러운 여고 친구들의 톡에 기껍게 응대하지 못했다. 나의 입원을 알 리 없는 그들의 대화에 온전히 끼지 못한다. 힘겨웠다. 수면제를 털어 넣고 진통제도 맞았다. 내일 아침이면 날아갈 듯 가붓해지리라 기대한다. 스스로 위로하며 마음을 내어놓으니 그나마 좀 낫다. 그리하며 견딘다. 아침까지 깨지 않기를.
2015.5.15.
병실의 다양한 사람들. 한 달여의 시간을 같이 하다 보니 그들의 성격과 삶이 고스란히 밖으로 드러나며 안타까울 때가 잦다. 처음 말을 섞을 때부터 파악이 되는 자신의 허점을 정작 당사자만 모른다. 물론 나도 그럴 터이겠지만.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은 지 오래되어서 섣불리 마음을 주지 않은 게 외려 다행이라는 생각에 이르는 씁쓸함.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타인을 무시하고, 많이 배운 것과 많이 가진 것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한 사람을 볼 때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깊이 있게 배우고 제대로 가진 사람이라면 좀처럼 하지 않을 말과 행동도 서슴없이 해버리는 무례함. 그의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숨기려 애써도 그대로 드러나는 자의식 과잉은 열등감에 닿아 있는 걸까. 그것의 근원은 무엇일까 싶다.
베푸는 호의가 처음부터 맘으로 다가오진 않아 애써 밀어냈으나 처한 상황에 하릴없이 섞이게 되고 보니 더없이 사람은 참 모를 존재라는 걸 실감한다. 매사에 마구잡이로 선을 넘으려는 이, 이미 모든 게 자기식대로인 사람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제멋대로 남의 삶을 기웃거리며 참견하려 든다.
그이의 지나친 허풍과 과시욕을 첫 대면부터 직감했다. 누구나 그러했을 터다. 단지 나보다 한참이나 위인 이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을 따름이다. 자신이 가진 힘이 막강하다고 입으로 부르짖으며 몸부림치지만 정작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고, 맹목적인 추앙을 받고 싶은 연약함만이 엿보여 심히 안타까웠었다. 내가 한 상상이 실제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허세든 허풍이든 혼자 하다 말면 그만이다. 다른 이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들어주는 귓속이 부대껴 그렇지 그냥 있으면 된다. 그러나 점차 그의 과장된 말과 행동에 피로와 더불어 불필요한 분쟁이 이는 걸 본다. 내가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자기 위주로 산다. 자신의 상황과 기분만이 중요하기에 상대가 겪을 곤혹은 전혀 생각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들은 배려가 없다. 무례하기 이를 데 없다.
오랜만에 낯선 이들을 한꺼번에 만나고 의도치 않게 관찰하게 되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도 탐욕과 알력이 보이고 같잖은 힘의 유치함과 어이없는 과대망상의 거죽을 보기도 한다. 역시 이번에도 '사람'을 만나진 못했다. 어쩌면 나는 와중에 또 '사람'을 기대한지도 모르겠다. 잠 오지 않는 밤, 수면제를 삼키고 깊은 잠을 기다리는 중이다. 내가 꿈꾸는 '사람'을 기다리듯.
2015.5.20.
미련했다. 여러 차례의 시술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것도, 갖은 치료가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도 지금껏 미련스럽게 넘기기만 한 탓이다. 치료사들도 서서히 지쳐간다. 너무 묵혀 온 탓이라고 하지만 그들도 정확한 진단을 못 하는 눈치다. 복합적인 통증의 원인을 찾지 못한 채 날이 갈수록 몸만 힘겹다.
매일 오전 오후 각 두 시간여씩의 치료는 정말 버겁다. 몸속 힘이 다 소진된 채 흠씬 두들겨 맞은 듯 축 늘어진 몸이 되어 병실로 돌아오면 아무 생각도 없다.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소변장애가 왔다. 신경안정제와 함께 털어 넣은 처방약 때문에 어제 새벽녘 위경련으로 당혹했으나 다행히 실신에 이르진 않았다. 습관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하루를 또 넘겼다.
겉으로 봐서 나는 아주 멀쩡해 뵌다. 잠을 못 잘 정도의 심한 통증도 무던히 견디며 식구들에게조차 달리 내색 않고 긴 시간을 보냈었다. 아프고 힘들어도 그걸 온전히 표현하는 데 서툰 나는 아프지 않냐고 물으면 습관처럼 괜찮다고 해버리고 만다. 시시콜콜 아픈 걸 언급하는 것도 구차해 싫고 징징대는 것도 맘에 들지 않기에 절로 눈물이 날 만큼 아파도 덤덤히 괜찮아, 가 답이 된다. 나를 잘 아는 이는 그것을 이내 알아차리지만 대개는 보기에도 멀쩡한 내가 고통을 참고 산다는 생각은 못 하게 마련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내겐 훈련이 필요하다. 병실의 그들은 아픈 구석구석을 아주 잘 표현한다. 소란스레 웃고 떠들다가도 의사가 다가오면 이내 일그러진 표정과 앓는 음성과 아픈 몸짓으로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그렇게 해야 하는데 나는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업무 보고를 하듯 무심히 간혹은 엷은 미소까지 걸친 채 말해버리고 마니 내 주치의도 환자란 걸 깜박 잊는다고 매번 골렸다. 속으로 앓는 소리를 연습해본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예의 뚝한 어조에 아무렇지 않은 듯 의미 없이 아픔을 나열하는 것으로 끝난다.
다음 주 시술을 앞두고 있지만 이번 주 퇴원을 결정했다. 나도 힘겹고 병원 측도 곤란하고 주치의도 어찌해야 할지 나로 인해 고민이 많다 하고. 몇 차례의 시술이 실패한 것도, 또 다른 시술에도 별 효과를 못 보는 것도, 긴 치료에도 차도가 없는 것도 유례가 없는 드문 경우라고 다들 의아해한다. 그야말로 지랄 맞은 몸뚱이라는. 어쩌면 병원의 치료 방향이 처음부터 잘못 맞춰진 게 아닌가 싶다.
어떻든 퇴원한다 생각하니 후련하다. 그 후의 일들은 그때 생각하련다. 까짓 통증도 내 것인 양 아껴주면 된다, 여태도 그랬던 것처럼. 일찍 자야 한다. 내일 대학 친구들이 온다. 퇴원하니 굳이 올 것 없다는데도 굳건히 오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아무에게도 병원이 어딘지 알리지 않았는데 집에서 어쩔 수 없어 얘기한 모양이다. 스멀스멀 약 기운이 온몸에 퍼지며 눈꺼풀이 무겁다. 굿나잇~
여전히 통증은 안고 살아가는 중이다.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 타지로 이사한 후 아버지가 떠나셨고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입원을 했었다. 재활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럴 정신이 없었다. 다시 원래 살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간 지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완전히 터전을 옮겼다. 그 후 해마다 일이 터졌다. 모두 시련이었다. 고난의 전초전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