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8년 1월.
해군 제복을 입은 이성현 대령과 쥐색의 슈트를 입은 한태웅 연구원은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책상에는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 한태웅이라는 명패가 있었다. 창밖은 어두컴컴했다. 방문객 접대를 위한 낮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 둘은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그 테이블 위에는 서류 봉투가 놓여있었다.
이성현 해군 대령과 한태웅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 그 둘은 7년 동안 동반자가 되어 대한민국의 자주국방을 위해 의기투합해온 사이다.
2020년, 이성현 대령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작전 계획과 지휘 통제와 같은 육상 근무보다 사병들과 함께 함정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해상 근무를 지원했다. 그중에서도 잠수함 근무에 지원하여 군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2020년, 한태웅 연구원은 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졸업 후 미국의 MIT 공대에서 유학을 마치고 2025년 귀국하였는데, 유수의 대학에서 보낸 교수초빙을 마다하고 국방과학연구소에 입사하여 드론 무기 개발 분야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2025년, 남북한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종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통일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런데 2030년, 일본은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다른 나라의 군과 같은 군을 보유했다. 다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100여 년, 일본이 욱일기를 앞세우고 벌인 ‘대동아 전쟁’의 기운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영향으로 2031년, 남북한은 통일을 대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국방부도 통일을 대비한 미래 국방력 강화를 논의하기 위해 육군, 공군, 해군이 각각 영관급 이상 장교 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소령이었던 이성현은 자신의 잠수함 경험을 토대로 미래 국방력 대한 의견으로 핵잠수함 자체 제작을 제안했다. 회의가 끝나고 난 후, 식사 시간에 이성현 소령에게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국방과학연구소에 근무하는 한태웅 연구원이었다. 한태웅 연구원이 이성현 소령이 제안한 핵잠수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둘 사이의 논쟁이 시작되었고 이후 자리를 옮겨 계속 이어갔다. 새벽까지 통일을 대비한 미래 국방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함께 밤을 보내고 난 후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흘러 이성현은 해군 전력 강화 부서를 담당하는 대령이 되었고, 한태웅은 국방과학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 되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며 한태웅 연구원이 물었다.
“그것은 분명 적국의 스파이짓으로 매국 행위에 해당하지.”
오른손의 주먹을 앞에 놓인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며 이성현 대령이 대답했다.
“그럼 그자가 적국의 스파이란 말이지?”
“그렇지! 아직도 국내외에는 미래 통일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무리가 많다네. 통일될 대한민국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단연코 일본이지.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미국도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불쾌한 마음을 지니고 있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행보를 할 것인지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을 뿐이네. 가장 골치가 아픈 존재는 북한을 이용해 반공사상과 이념 대립으로 자신의 권력과 위세를 누려왔던 국내 세력일세. 예전에는 ‘수구꼴통’, ‘일베’, ‘토착 왜구’라고 불리기도 했지. 지금은 ‘새나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 세력은 정치, 경제, 사법, 언론이 똘똘 뭉쳐서 남북한이 통일로 가는 길에 극렬히 저항하고 있다네. 이제는 아예 적국과 내통하고 스파이짓까지 하며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 한다네. 그자는 분명히 우리의 프로젝트를 적국으로 팔아넘기려고 했을 거야.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이성현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한태웅은 담배 한 모금을 내뿜고 몸을 뒤로 젖히며 의자에 기대었다. 분을 삭이지 못한 이성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창밖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웠고 인적이 드물었다.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불빛은 자동차인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037년 12월 4일 금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렸다. 이런 날은 기분이 처지고 일할 맛이 나지 않아서 모두가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어진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직원들은 퇴근 시간이 되자 서둘러 퇴청하였고, 이 모습을 이자경 연구원은 커피를 마시며 4층 연구실 창을 통해 바라보았다. 저녁 8시가 되자 연구소는 몇몇 연구실을 제외하고 연구실 대부분은 불이 꺼졌다. 이자경도 자리를 정리하고 연구실에서 나와 5분 거리의 기숙사로 갔다.
22시 20분, 기숙사에서 관련 서류를 넘겨보던 이자경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옷을 챙겨입고 연구동으로 이동했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저녁이 되어서도 추적추적 내렸다. 이자경이 1층에 들어서자 연구소 연구동 건물 전체가 정전되었다. 그 시각이 22시 30분이었다. 보안검색대마저 작동하지 않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앞이 컴컴했다. 그리고 천천히 희미하게 전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별일이네. 갑자기 정전되다니?”
이자경은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서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를 켜고 계단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1층을 지나 2층에 도착하니 전기가 들어왔다.
“어? 다시 전기가 들어왔네.”
이자경이 3층을 지나 4층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로 향하는 복도에 들어서자 복도 끝에서 송변철 연구원이 서류 가방을 메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복도 끝에는 연구팀장의 사무실이 있었다. 이곳은 1급 보안을 요구하는 곳이었다.
‘이 시간에 송변철 연구원이 연구팀장의 사무실에 무슨 일이지?’
이자경은 의아해했지만 낯익은 얼굴이라 우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 소리에 송변철은 이자경을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하고 더듬거리며 답변했다.
“네,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이 시간까지 일하고 계셨어요?”
“아니요, 기숙사에 있다가 연구실에 뭐 좀 가지러 왔어요. 그런데 송 연구원은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나요?”
“네, 팀장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왔는데 안 계시네요.”
“그렇군요. 그런데 팀장님은 지난주부터 해외 출장이신데 모르셨어요?”
“아~하, 그렇죠. 제가 깜빡했네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그래요. 월요일에 봐요.”
송변철은 주춤거리더니 어깨에 있는 가방은 매만지고 엘리베이터 쪽이 아니라 계단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이자경은 뭔가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복도 끝의 연구팀장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사무실 문은 잠겨있었다. 이자경은 주머니에서 연구팀장의 아이디 카드를 꺼내 인식하는 곳에 대었다.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갔다.
“오~, 이런, 이게 무슨 일이야!”
이자경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건물 보안팀에 연락했다.
“이자경 연구원입니다. 지금 바로 연구소의 출입을 통제하시고 송변철 연구원 신병을 확보해주세요. 아직 건물 안에 있을 겁니다. 1급 보안 상황입니다.”
이자경은 이어서 급히 연락할 곳을 더 찾아서 통화를 시도했다.
연구팀장의 사무실은 몇 가지 서류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책상의 모든 서랍이 열려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가져간거야?”
이자경은 휴대폰으로 사무실의 상황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때 보안팀에서 연락이 왔다.
“보안팀입니다. 조금 전에 BMW 차량이 정문에서 통제를 무시하고 도주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바로 추격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1시간 뒤. 5층 회의실에 연구소장, 부소장, 수석연구원, 이자경 연구원, 보안팀장, 각부장이 모였다. 긴급하게 소집된 회의라 모두가 평소와는 다른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 현재 1급 보안 상황이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상황을 최초로 인지하고 보고한 이자경 연구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굳은 표정을 한 김지운 연구소장이 모여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자경 연구원입니다. 연구동 건물 전체에 정전이 된 시각 22시 30분이고 2분쯤 지나자 다시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제가 다시 4층에 도착했을 때는 정전이 된 후 아마 5분쯤 되었을 것입니다. 보안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그 사이에 송변철 연구원은 연구팀장의 사무실에 들어와 어떤 서류를 훔쳐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불과 5분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고 나서 저를 만났고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보안팀장입니다. 이자경 연구원의 연락을 받고 바로 건물 출입을 통제하는 조치를 하였는데 정문 출입의 통제를 뚫고 도주하는 검은색 BMW 차량을 추격했으나 놓쳤습니다. 차량 번호를 조회하니 대포 차량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정전의 원인을 알아보니 연구동 건물의 메인 전원에 강력한 전기 과부하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자세한 원인은 더 조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송변철 연구원이 가져간 서류는 무엇인가요?”
머리가 벗겨진 인재경영부장이 물었다.
“현재로서는 사라진 서류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사무실의 주인인 이성현 대령이 와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한태웅 수석연구원은 침착한 얼굴을 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송변철 연구원이 그런 일을 일으켰을까요?”
흰 머리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이 멋지게 어우러진 부소장 최경수가 팔짱을 끼면서 물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일은 송변철 연구원 혼자 벌인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분명히 관련 조직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자경이 힘을 주어 천천히 말했다.
“조직이라고요?”
등산복 차림의 정책기획부장이 놀란 듯이 반응했다.
“네. 그렇습니다. 첫째, 서류가 어디 있는지 알고 불과 5분 만에 일을 해치웠다는 점. 둘째, 미리 대포 차량을 도주차량으로 준비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연구동 건물 전체에 정전이 발생했다는 점. 이 모두는 혼자서 벌일 수 없는 일입니다.”
“송변철 연구원의 소재 파악을 위해 군경찰이 이미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방금 보고된 내용인데 전기 과부하가 시작된 지점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제 예정에 없던 연구동 전기안전 점검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전기안전 점검업체가 의심스럽습니다. 그쪽도 조사하겠습니다.”
보안팀장이 말했다.
“뭐라고요? 건물 전기안전 점검이 있었다고요? 인재경영부장님 이게 무슨 소리죠?”
김지운 연구소장이 인재경영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전기안전 점검은 이미 지난달에 했는데 저도 확인해보겠습니다.”
당황한 인재경영부장은 전화기를 꺼내 들더니 회의실 밖을 나갔다.
“매우 위중한 사안이니 이 일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주세요.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김지운 연구소장은 한태웅 수석연구원에게 뒷마무리를 맡기고 회의실을 나갔다.
모였던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고 회의실에는 한태웅 수석연구원과 이자경 연구원만 남았다.
“어서 이성현 대령이 돌아와야 하는데 …….”
“아마 지금쯤 귀국하는 비행기에 탑승했을 것입니다. 사라진 서류는 아마 ‘NMD’이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다른 연구와 사업은 모두 공개적으로 진행하지만, ‘NMD’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공개되는 날에는 곤란한 상황에 빠질 거야.”
“적대 세력에 넘어가지 않고 어서 회수해야 하는데 …….”
우려했던 일은 이틀이 지나고 발생했다. 야당인 자유국민당 정두완 국회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라진 서류 ‘NMD’에 관한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공익제보를 받아 알게 된 내용이며 국방부에서 은밀하게 추진 중인 새로운 무기 사업인데 관련 의혹이 많고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라 공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정두완 국회의원은 말했다.
“지금 발표하신 내용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공익제보자는 누구입니까?”
“국방부에 확인한 내용입니까?”
“관련자와 관련 부처는 어디입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 무기 사업은 대단히 위험하며 국민 혈세가 막대하게 들어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국회의 승인도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더구나 주변국을 군사적으로 자극하고 한미 군사동맹을 뒤흔드는 아주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관련자와 관련 부서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정부의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합니다.”
이 말을 끝으로 정두완 국회의원은 기자회견을 마쳤다.
다음날, 이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단독] 충격, 핵잠수함 공익제보로 드러나
노덕수 기자 입력 2037. 12. 06. 05:46
국방부는 ‘NMD’라는 이름으로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무기 사업을 진행하였다. 이는 동맹국인 미국과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한 사업으로 무려 비용이 2조 가까이 들어갈 예정이다. 자유국민당 정두완 국회의원의 기자회견에 따르면, ‘NMD’에 대한 제보는 국방과학연구소에 근무하는 한 연구원의 공익제보로 알게 된 내용으로 만일 이것이 실현될 경우, 대한민국은 핵공포에 빠지고 주변국의 군비증강은 불 보듯 뻔한 일로 매우 위험천만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비핵화를 위한 과정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으로 관련자와 관련 부처에 대한 엄중한 문책과 책임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는 ‘NMD’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외교적 성명을 내었으며, 조만간 미국은 국무부 한국 담당자가 입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관련 사안에 대해 조만간 공식 입장을 발표한다고 했으며, 경찰은 관련자 소환을 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연일 언론과 인터넷과 SNS에서는 핵잠수함에 대한 다양한 보도와 논의들이 생겨났다. ‘핵잠수함을 이제 대한민국도 보유해야 한다.’라는 주장과 ‘핵잠수함은 아직은 시기상조다.’라는 주장과 ‘핵잠수함을 절대로 보유해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이 서로 뒤엉켰다. 국방부는 3일 후 ‘NMD’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NMD’에 대한 내용 중 일부는 사실이지만, 타당성 예비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2037년 10월 초에 자체적으로 폐기되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게 여기며 관련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
이 사건은 국가수사본부가 맡았고 수사는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며 1개월 만에 마무리되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장 박영호입니다.
공익제보 형태로 시작된 국방부 미사일 방어체계 ‘NMD’에 대한 수사 보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NMD’는 국방부에서 공식 발표한 것처럼, 2037년에 국방부에서 추진한 미사일 방어체계 사업으로 예비 타당성 목적으로 검토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알고 계신 것처럼 핵잠수함 제작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와 막대한 비용에 대한 부담 그리고 주변국 군사적 마찰 우려, 비핵화 정책을 추구하는 국정과 배치되어 2037년 10월에 자체적으로 국방부는 이 계획을 폐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제보자가 해당 문건을 자유국민당 정두완 국회의원에게 전달한 과정은 적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보자는 국방과학연구소 송변철 연구원이며, 2037년 12월 4일 금요일 22시 30분경에 연구팀장의 사무실에서 ‘NMD’ 문건을 무단으로 가지고 나온 행위는 불법인 것으로 수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 ‘새나라 건설’ 줄여서 ‘새나건’이라는 단체가 관련된 것도 확인하였습니다.
해당 문건이 불법으로 유출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일 오후 9시 30분에 새나건 회원 조병두와 송변철 연구원은 함께 대포 차량 검은색 BMW를 타고 국방과학연구소에 들어와 연구동 지하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였습니다. 그 둘은 10시 20분쯤 함께 4층으로 이동해 조병두는 화장실에, 송변철 연구원은 연구팀장의 방 주변에 대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날 전기안전 점검을 이유로 전기안전업체가 연구동 메인 전원에 타이머 형태의 전기 과부하 장치를 설치하였습니다. 오후 10시 30분에 전기 과부하 장치가 작동하여 연구동 건물 전체에 정전이 발생하자, 보안시스템이 마비되었습니다. 송변철 연구원은 보안이 뚫린 틈을 이용하여 연구팀장의 방에 들어가 ‘NMD’ 문건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시간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미 송변철 연구원은 해당 문건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목격한 이자경 연구원이 수상히 여겨 바로 보안팀에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온 조병두와 송변철 연구원은 보안 요원의 저지를 뚫고 도주하였습니다. 이후 차량을 대전의 한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 버리고 관련 서류를 대전 유성구 자유국민당 정두완 국회의원을 찾아가 서류를 전달했습니다.
정전을 일으킨 전기안전업체의 직원 중 일부는 새나건과 관련된 것으로 확인했고, 사건 전날 이 업체에 전기안전 점검을 승인한 사람은 국방과학연구소 인재경영부장 오진모 씨로 ‘NMD’에 관한 정보를 송변철 연구원에게 전달한 것으로도 확인되었으며, 그 역시 새나건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리고 따라서 이번 사건은 공익제보가 아닌 국가 기밀 불법 유출 사건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수사본부는 앞으로도 엄정하면서도 정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장이 수사 결과에 대해 브리핑을 마쳤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관련자들은 어떤 조치를 받게 됩니까?”
“새나건은 어떤 단체입니까?”
“자유국민당 정두완 국회의원과 관련성은 없습니까?
“조병두는 어떤 인물입니까?”
기자들은 국가수사본부의 사건 브리핑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 국가 기밀 불법 유출 사건에 관련된 송변철 연구원과 새나건 회원 조병두와 국방과학연구소 인재경영부장 오진모 씨와 전기안전 점검업체에서 전기 과부하를 설치한 직원은 현재 검찰에 기소 의견 송치하였습니다. 현재까지 자유국민당 정두완 국회의원과는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조병두는 새나건 회원으로 특별한 직업은 없고 …….”
쏟아지는 겨울비를 바라보는 이성현 대령의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에 진동 소리가 울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새로운 문자가 하나 왔다. 그는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 내용을 읽은 이성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한태웅 연구원에게 말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최종 승인이 떨어졌네.”
“그래? 정말이야! 이 기쁜 소식을 이자경 연구원에게 알려야겠군.”
한태웅은 휴대폰을 켜고 이자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이자경 연구원! 좋은 소식이야. 자네가 제안한 프로젝트가 국방부에서 최종 승인이 났다는군. 축하하네. 고생 많았어.”
통화를 끝낸 한태웅은 이성현 대령에게 물었다.
“이번 프로젝트 이름은 무엇인가?”
“게임 체인저.”
테이블에 놓인 서류 봉투의 쓰인 글자는 ‘NMD-2’였다.
2031년 3월.
대전 계룡대 해군 본부.
“저 혹시 이성현 소령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국방과학연구소 한태웅 연구원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죠?”
“아까 회의 시간에 제안하신 것에 대해 여쭤보려고요.”
“네~, 무엇인가요?”
2030년, 평화헌법을 개정한 일본은 다른 나라와 같은 군을 보유했다. 이는 주변국의 군사적 긴장을 유발했다. 남북한은 일본의 군대 보유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통일에 대한 논의를 심각하게 고려한 후, 통일로 가는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물론 이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며 남북한 모두 갈등이 격화되었다. 특히 남한에서는 북한을 이용해 기득권과 이념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들이 주동이 되어 통일을 반대하였다. 연일 언론에서 통일을 다루고 많은 사회단체가 찬반 집회를 이어갔다. 결국, 남한은 통일에 대한 찬반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투표율 91%, 찬성 78%, 반대 22%. 남한은 통일에 찬성했다. 남한이 통일에 찬성하는 배경에는 2025년 남북한 종전협정이 체결되고, 2026년 남북한 철도연결, 남북한 경제특구와 관광특구 조성, 2027년 남북한 자유왕래협정 체결이 있었다. 남한 국민은 남북한이 가까워지자 서로가 한민족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남한 국민이 통일을 찬성한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이었다. 일본의 실질적인 군 보유는 군국주의 부활을 의미했고, 국민에게 일본이 자행한 강제 합병에 의한 국권 침탈과 인권 유린을 떠올리게 했다. 남북한 모두는 다시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유일한 대안이 통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통일할 수는 없는 상황이므로 10년을 두고 통일을 준비하자는 의견이 대두했다. 관련하여 국방부도 통일을 대비한 국방력 강화에 대한 논의를 벌였다. 이 자리에서 이성현 소령은 해군의 전력 강화로 핵잠수함을 제안했다. 마침 그 자리에 국방과학연구소 한태웅 연구원도 있었다.
“소령님께서 제안한 핵잠수함은 우리에게 가능할까요?”
“무슨 말씀인지 알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소령님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첫째, 현재는 공군력이 강세이지만 미래는 해군력이 강세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잠수함은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잠수함은 잠항 시간이 중요합니다. 일반 잠수함은 최대 3주라고 하지만 평균 2주라고 할 수 있는데, 핵잠수함은 무제한입니다. 드넓은 바다를 통해 어디든지 몰래 접근하여 SLBM를 이용해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둘째, 주변국들은 모두 핵잠수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러시아, 미국, 호주가 현재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10년 안에 핵잠수함을 보유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본이 실질적인 자국의 군대를 보유한 상황에서 핵잠수함을 가지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군사력을 맞추는 차원에서라도 우리도 핵잠수함을 보유해야 합니다.
셋째, 자원과 인구가 적은 나라가 큰 나라를 상대할 때 가장 효율적이며 위협적인 무기가 핵잠수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SLBM를 발사 능력을 보유했으며, 세계 최고의 미사일 현무를 비롯한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핵잠수함과 결합한다면 최상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핵이라는 것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IAEA와 같은 핵 관련 기구의 승인이 필요하고, 특히 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이 동의해서 우리가 핵잠수함을 보유한다면 이는 일본에 핵잠수함 보유에 대한 명분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 처리에 어려움이 있는 실정에서 핵잠수함에 나오는 폐기물 역시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정권에서 비핵화를 선언한 상황입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맞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통일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핵잠수함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건이 되면 강력히 주장할 생각입니다.”
이때, 둘 사이에 껴드는 사람이 있었다.
“두 분이 열띤 토론을 하고 계시는군요. 안녕하세요. 저는 KBS 고재건 기자라고 합니다.”
고재건 기자는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소령님의 발표,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핵잠수함이라? 정말 가능할까요?”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제 남은 군생활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자주국방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저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쪽보다는 드론을 이용한 무기를 개발하는 쪽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태웅 연구원이 반박했다.
“여기서 두 분의 생각이 갈리시는군요. 저는 두 분 중에 어느 분이 먼저 목표에 도달할지 지켜보겠습니다.”
세 사람은 이번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가지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재건 기자는 기사 작성을 위해 자리를 떠났지만, 이성현과 한태웅은 회의장을 나와 조용한 술집에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제가 2020년 해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가슴에 품은 것은 자주국방의 힘입니다. 수많은 외침을 받은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이어온 것은 자주국방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구려와 발해와 고려 그리고 조선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자주국방의 힘이 있었기에 존재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굴욕을 당하거나 정복당한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자주국방의 힘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그 누구도 업신여기지 않고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길은 자주국방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MIT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가지 않고 국방과학연구소에 입사한 까닭이 뭔지 압니까?”
이미 한태웅의 목소리를 잠겼고 몸은 흐트러졌다. 이성현도 꾸벅꾸벅 고개가 흔들렸다.
“이유가 뭡니까? 저도 궁금하군요.”
“저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입니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광복군으로 활동하셨죠. 하지만 해방 후에는 좌익으로 몰려 고초를 겪으셨어요. 할아버지는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외가의 도움을 받아 겨우 대학을 마치셨지만, 대학생 때의 학생운동 전력으로 취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처가의 도움으로 조그만 출판사를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는 역사 선생님이 되셨죠. 아버지는 제게 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애국적인 삶과 나라를 지키는 힘의 소중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기계에 관심이 많아 연구원이 되고자 카이스트에 들어갔고 미국의 MIT 공대로 유학 갔습니다. 거기서 저는 어떤 강연을 들었는데 미래 전쟁의 형태가 사람이 아닌 기계가 전투를 수행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기계를 조종하여 전투를 벌이는 것입니다. 그 기계는 드론이라는 것이죠. 그때 저는 드론을 활용한 무기를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처럼 나라를 지키는 일에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한태웅은 탁자에 엎드렸다. 그 모습을 이성현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 군인 아저씨! 이제 집에 가야지. 문 닫을 시간이야.”
술집 주인이 두 사람의 테이블에 다가와서 이제 나가 달라고 말했다.
이성현은 한태웅을 부축하고 가까운 모텔에 들어갔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한태웅 누이고 자신은 바닥에 누워 잠을 잤다.
2035년 12월.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오커스(AuKus)에 편입시켰고, 일본에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제 일본이 핵잠수함을 보유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한태웅 연구원! 일본이 핵잠수함을 보유하게 생겼네. 우리도 이제 핵잠수함을 준비해야 하네. 언제까지 드론 타령만 하겠는가?”
“이런! 일본까지 핵잠수함을 보유한다면 상황이 심각한데.”
2036년 8월.
이성현 중령은 해군 참모총장에게 ‘NMD’ 프로젝트를 건의했다. ‘NMD’ 프로젝트는 새로운 미사일 방어체계로 주된 핵심적인 요소는 핵잠수함을 이용한 미사일 방어체계이다. 이는 해군 수뇌부에서 심각하게 논의된 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었다. 10월에 ‘NMD’는 예비 타당성을 전제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2036년 11월.
“이 일에 최고의 적임자가 누구인지 추천 좀 해봐?”
상기된 표정으로 이성현은 말했다.
“한 명 있긴 한데, 참여할지 잘 모르겠군.”
“누군데? 어디야? 한국? 미국? 누구야?”
“진정해. 너무 흥분하지 말라고. 지금 독일에 있어. 내가 MIT 공대에서 유학할 때 알게 된 친구인데, 핵물리학뿐만 아니라 기계공학 분야에도 뛰어나지. 이게 연락처야, 연락해봐.”
한태웅은 휴대폰으로 이성현에게 전화번호를 보냈다.
“이자경? 자네가 말한 사람이 이 사람이야? 여자일지는 생각도 못 했네. 우선 자네가 참여 의사를 물어보게나.”
“알았네. 다음에 내가 도와달라고 하면 자네도 똑같이 해줘야 해.”
한태웅은 입을 내밀었지만,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한태웅은 오늘 중으로 연락하고 자세한 내용은 편지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2036년 12월.
키 165cm의 마른 몸매를 가진 여인이 트레이닝 차림을 하고 운동장을 가볍게 달리고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로 일정한 동작을 하며 1시간째 여인은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운동장 돌기를 마쳤는지 그녀는 몸을 흔들며 팔다리의 근육을 풀어주며 운동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여인은 벤치에 앉고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서 마셨다. 그리고 주변 물건을 가방에 넣고 일어섰다. 그녀는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계단의 끝에는 동양인 남자가 서 있었다.
“혹시, 이자경 교수님이세요?”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그 남자는 180cm의 키에 검은색 코트를 입었다. 두 손은 코트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여인은 경계하면서도 동양인이라는 점과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점에 다소 안정을 느꼈다.
“누구시죠?”
계단 끝까지 올라온 그녀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한태웅 연구원의 편지를 받으셨는지요?”
“한태웅 연구원이요? 당신은 그를 어떻게 알고 있죠?”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해군 중령 이성현이라는 사람입니다. 편지에 담긴 내용을 제안한 사람입니다. 이번 일에 도움을 구하고자 참여를 부탁드렸는데 답을 받지 못해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그 얘기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참나, 핵잠수함이라니.”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드러내었다.
“혹시 참여하지 않은 이유를 여쭈어봐도 될까요?”
“여기서 계속 이야기하실 생각인가요? 날씨가 춥습니다. 저는 운동을 한 후라 씻어야 해요. 1시간 뒤 학교 앞 카페에서 봅시다. 아! 카페 이름은 ‘아마데우스’입니다.”
이성현을 세워두고 이자경은 뒤돌아 교직원이 거주하는 숙소로 달려갔다.
카페 문이 열리자, 이성현은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밤색 코트를 입고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이자경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1시간 전에 본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들어오면서 그녀는 계산대에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이성현이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자 그녀는 목에 두른 머플러를 풀고 이성현을 바라보았다.
“커피 마시고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그런데 이동영 대령을 아시나요?”
“누구요? 이동영 대령이요? 저희 아버지 함자인데 어떻게 아시죠?”
“그렇군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 이동영 대령님의 따님이셨군요.”
이성현은 환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임관 후 첫 발령을 받은 함정의 함장님이셨습니다. 이후 그분이 잠수함 부대로 자리를 옮기셨을 때 저도 그분을 따라 잠수함 부대로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잠수함의 매력에 빠져버렸죠. 그리고 우리나라 잠수함의 능력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핵잠수함이 아니라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죠.”
“대령님! 저도 핵잠수함이 강력한 무기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투에 있어서 써먹지를 못합니다. 언제든 핵을 쏠 수 있지만, 핵을 쏴서는 안 되는 무기라는 점에서 핵잠수함은 이러한 약점이 있습니다. 핵을 쏘는 순간 발생할 후폭풍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핵미사일을 탑재하지 않는 핵잠수함은 제작과 운영에 따른 비용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오히려 재래식 잠수함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령님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때 이자경이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이 커피만 마시고 저는 일어서겠습니다.”
이자경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성현은 단호한 이자경의 말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3분이 정적이 흘렀다. 마시기에 좋은 온도가 된 커피를 마시는 이자경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커피를 다 마신 이자경은 소지품을 챙기고 일어섰다.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이성현은 카페를 나서는 이자경을 바라만 보았다.
2037년 1월.
1달 전의 그 카페에 이번에는 이자경과 이성현과 한태웅 셋이 함께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 놓인 커피는 식은 채로 있었다. 이자경은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기대고 있고, 한태웅은 손짓을 써가며 열심히 설명했다. 이성현은 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할 일은 핵 관련 내용에 대해 자문하는 것이라는 말이지?”
“그렇지. 직접 참여가 어렵다면, 자문이라도 해 줘. 이렇게 친구로서 부탁한다.”
말이 없던 이성현이 작심한 듯 말했다.
“1달 전에 만났을 때 이자경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핵잠수함에 대한 저의 생각은 확고합니다. 다만, 차선책으로 핵잠수함이 아닌 새로운 잠수함을 만들어 주실 수는 없나요?”
“그게 무슨 말이신지요?”
이자경은 기대고 있던 몸을 앞으로 옮기며 눈빛을 반짝였다.
“핵잠수함 개발에 관한 자문을 하시면서 핵잠수함이 아닌 새로운 잠수함을 연구해주세요.”
“프로젝트를 두 개를 추진하겠다는 이야기야?”
한태웅이 놀란 눈을 하며 말했다.
“‘NMD-2’. ‘NMD’가 핵잠수함을 이용한 것이라면, ‘NMD-2’는 새로운 잠수함을 이용한 프로젝트입니다.”
“전 핵잠수함이 아니라면 기꺼이 참여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잠수함을 지휘하시면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보고함이 핵잠수함만큼 오래 잠항하며 빠르고 깊이 잠항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제가 만들고 싶은 잠수함은 덩치만 크고 무게를 잡는 핵잠수함이 아니라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잠수함입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이자경은 말을 마치고 식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쓴 커피에 이자경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한태웅이 웃음소리를 내었다. 이자경과 이성현도 웃음소리를 내었다.
2037년 3월.
이자경은 독일에 있는 대학교에 안식년을 신청하고, 국방과학연구소 객원 연구원 신분으로 귀국했다. 이자경은 이성현이 제안한 ‘NMD-2’를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NMD’를 지원했다. 그때 만난 연구원이 송변철이었다. 송변철은 ‘NMD’에 대한 존재는 모른 채, 어뢰 관련 부분을 연구하면서 이자경에게 가끔 기계공학적 문제를 문의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자경은 송변철이 맡은 어뢰 연구가 ‘NMD’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함구했다.
2037년 8월.
대전의 한 중식당에서 송변철 연구원과 인재경영부장 오진모가 만났다. 그들 앞에는 중국 요리가 두세 개 있고, 고량주 잔도 놓여있다. 오진모는 마오타이를 따르며 말했다.
“이번에 큰 사건이 났는지 국방과학연구소가 어수선하던데, 뭐 아는 것 없나?”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인명 사고가 난 것 같던데요. 실험 도중에 발생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술을 받으며 송변철이 말했다.
“그래? 올 초에 해군 쪽에서 이성현 대령이라는 군인이 연구팀장으로 왔는데,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 좀 알아보게. 그리고 함께 들어온 여자 연구원도 있는데, 함께 일하는 것 같으니까, 그쪽을 파보게. 나도 알아보겠네. 뭔가 냄새가 나는데 말이야, 꼬리가 잡히지 않아. 크아, 쓰다.”
입을 닦으며 오진모는 인상을 쓰고 젓가락으로 요리를 집어 입에 넣었다. 송변철도 술을 마시고 요리를 집어 먹었다.
“조직에서는 어떤 계획이라도 있나요?”
“지금 통일이 눈앞에 다가왔네. 이것을 막지 못하면 우리의 입지는 더욱 줄어드네. 그러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방해 공작해야 하는데, 건수가 없어. 이 정부 이미지에 타격을 줄만 한 건수면 되는데.”
“일본 쪽에서는 무슨 연락이 없나요?”
“그쪽도 남북한이 통일된다니까, 정신이 없는 것 같더라고. 이젠 일본도 글렀어. 경제고 문화고 정치고 모두 남한에 밀리고 있어. 필리핀이니 태국이니 말레이시아니 어디고 동남아에서마저도 남한에 뒤지고 있네. 오로지 미국만 바라보고 있어. 그리고 군비증강에만 몰두하더라고. 예전 북한을 보는 것 같아. 게다가 러시아, 중국, 남한에 군사 도발을 해서 미움을 받고 있으니 원. 술 받게.”
오진모는 송변철의 술잔을 보고 마오타이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2주 뒤. 대전의 한 한정식 식당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사고는 핵실험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더군. 참여 명단에 핵물리학자도 있더라고. 이자경 연구원이지 아마. 그렇다면 이것밖에 없는데.”
오진모는 손가락을 깍지 끼고 움직이며 ‘우드득’ 소리를 내었다.
“네. 그렇습니다. 핵잠수함입니다. 제가 맡은 부분이 어뢰인데, 핵잠수함용 어뢰와 비슷합니다.”
“이거, 이거, 대담한데. 아직 일본도 완성하지 못한 핵잠수함을 만들려고 한단 말이지. 그런데 사고가 나고 인명 피해까지.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겠군. 흐흐흐.”
오진모는 묘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벨을 눌렀다. 이윽고 종업원이 들어왔다. 그는 식사와 술을 시켰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나가자, 그는 송변철에게 손짓을 했다.
“그 사업이 뭔지 알아보게나. 나도 알아볼 테니.”
2037년 10월.
‘NMD’는 실험 도중에 발생한 사고로 결국 폐기되었다. 그러자, 이성현 대령은 즉시 ‘NMD-2’를 제안했다. ‘NMD-2’는 핵잠수함이 아닌 새로운 잠수함을 활용한 미사일 방어체계이다. 이 새로운 잠수함은 핵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잠수함보다 빠르고 잠항 기간도 길고 깊이 잠항할 수 있는 성능을 목표로 개발 중인데 그 중심에는 이자경 연구원이 있다.
2037년 11월.
국방과학연구소의 옥상에 오진모가 서 있었다. 옥상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나왔다. 그는 오진모 쪽으로 다가왔다. 송변철 연구원이었다.
“점심은 먹었나?”
오진모는 그에게 쪽지를 건넸다. 쪽지에는 영어 대문자가 적혀있었다.
“이게 뭡니까?”
“국방부 쪽에 있는 우리 조직원이 알려줬는데 8월에 있었던 사고와 관련된 것이라네. 최근까지도 비밀리에 추진된 프로젝트였는데, 사고 이후 폐기되었다고 하더군.”
“그럼. 끝난 것 아닙니까?”
“아니지, 폐기되었다고 끝나겠나. 언제든 여건이 조성되면 부활할 수 있을걸세. 그래서 이번에 그 싹을 아예 없애버려야 해! 그래서 만천하에 공개해야겠네.”
오진모는 오른손 검지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럼, 어떻게?”
“아직 그 문건은 이성현 대령 사무실에 있을 걸세. 그자가 제안한 것이라 그자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을 걸세. 그 문건은 아마도 책상의 왼쪽 세 번째 서랍에 있을 거야. 잠금장치가 있는 곳이 거기뿐이거든. 내가 구입한 책상이라 구조를 잘 알아.”
오진모는 허공에서 두 손으로 살짝 벌리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행위를 하며 말을 이었다.
“여는 방법은 아주 쉬워. 이렇게 그냥 묵직한 걸로 몇 번 치면 헐거워져 열리지.”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몇 번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 책장을 주의 깊게 살펴봤는데 눈에 띄지 않은 것으로 보아, 거기에는 없어. 책상뿐이야. 명심하게. 시간은 단 5분이네.”
“언제 실행합니까?”
송변철은 침을 삼키며 물었다.
“12월 4일 금요일 22시 30분. 거사 하루 전에 전기안전 점검을 핑계로 전기 과부하 장치를 설치할 예정이야.”
“저 혼자입니까?”
“조직원 조병두를 붙여 주겠네, 혹시 몸을 쓰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조만간 다시 연락하지.”
오진모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송변철은 오진모가 준 쪽지를 바라보았다.
쪽지에는 ‘NMD’라고 적혀있었다.
2045년 10월 25일.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 주변.
가와사키 P-1 대잠초계기가 말루쿠 섬 주변을 비행하고 있다. 3시간 전에 레이더 시설이 있는 지역이 미사일 공격을 당했다. 미사일 파편을 분석해보니 반경 50km 이내에서 발사된 순항미사일로 밝혀졌다. ‘말루쿠 공화국’의 군대 ‘파수칸 데와’는 반경 50km 주변에 숨어 있는 적을 찾기 위해 수색을 하고 있었다.
말루쿠 제도는 인도네시아의 제도로, 1,000개에 달하는 섬들이 있다. 이곳은 귀중한 향신료가 나는 곳이어서 과거 대항해시대에는 유럽인들에게 ‘향료 제도’로 알려진 곳이다. 말루쿠 제도는 두 개의 주로 나누어져 있는데 ‘말루쿠 주’와 ‘북말루쿠 주’가 있다. ‘말루쿠 주’에 10여 년 전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그 가치가 높아졌고 가장 먼저 일본이 접근하여 석유 채취권을 얻으려 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가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말루쿠 주’에 있는 인도네시아 반군을 수년간 꾸준히 지원하며 2043년에 ‘말루쿠 공화국’을 세우게 하고 동맹국 관계를 선언했다.
2044년 1월에 ‘말루쿠 공화국’이 ‘말루쿠 주’에서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갈등을 빚어 오다가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말루쿠 공화국’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북말루쿠 주’까지 장악하며 말루쿠 제도 전체를 차지했다. ‘말루쿠 공화국’이 보유한 대부분의 무기는 일본의 지원을 받아 일본군이 사용하는 무기와 같아서 그 성능과 파괴력은 인도네시아 정부군보다 우세했다. 마침내 인도네시아는 ‘말루쿠 공화국’을 제거하기 위해 국제 사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여러 나라가 비공식적으로 접촉하여 논의하였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표면적으로는 ‘말루쿠 공화국’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일본과 대립하는 형국이라 참여국에 부담이 되었다. 둘째, 반군을 제거한 후 석유 채취권 보장을 요구하는 것을 인도네시아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셋째, 대부분이 섬 지역이라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군력이 필요했다. 일본과 대립할 수 있고 석유 채취권을 포기하면서도 강력한 해군력을 갖춘 나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말루쿠 공화국’ 사령관실.
“도대체 이 미사일은 어디서 날아온 것이오?”
인도네시아 ‘말루쿠 공화국’ 총사령관이 일본인 요시다에게 물었다.
요시다는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떨어진 미사일을 분석한 결과, 순항미사일로 밝혀졌소. 이 미사일은 유효사거리가 5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섬과 바다로 이루어진 말루쿠 제도를 고려한다면 이는 해상에서 발사한 것이 틀림없소.”
“이 말루쿠 해상은 우리가 장악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오?”
“문제는 미사일을 발사한 함정이 우리의 레이더에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오. 그래서 우리의 최종 판단은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함정이 아니라 잠수함이라는 것이오.”
“잠수함?”
“그렇소. 잠수함이오!”
확신에 찬 어조로 요시다는 말하며 연신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잡을 수 있겠소?”
“물론이오. 핵잠수함이 아닌 이상, 일반 잠수함은 조만간 떠오르게 마련이니 그때 잡으면 되오. 그래서 대잠초계기를 보낸 것이오.”
미소를 띠며 요시다는 말했다.
2시간 뒤. 정찰을 나갔던 가와사키 P-1 대잠초계기가 돌아왔다. 잠수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보고가 전해졌다.
“뭐라고? 잠수함의 흔적이 없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요시다가 소리쳤다.
“잠수함이 아니라 다른 것은 아니요?”
옆에 앉아 있는 인도네시아 ‘말루쿠 공화국’ 총사령관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말했다.
“아니오! 잠수함이 아니라면 불가능하오. 계속 수색할 것이니 기다려 보시오. 반드시 우리가 잡을 것이오!”
초조해진 요시다는 큰소리를 치며 항변했다.
“상황은 어떤가?”
“고요합니다. 2시간 전에 대잠초계기가 다녀간 후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습니다.”
음탐관 정 중위가 함장 박동주 소령에게 보고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귀환하기로 하지.”
함장 박동주는 마이크를 들었다.
“전 부대원에게 알린다. 이제 적은 물러갔다. 우리는 알파 지점으로 이동하고 다음 작전까지 쉬도록 하겠다.”
“방위 290도, 잠항심도 50m, 속도는 5노트”
“방위 290도, 잠항심도 50m, 속도는 5노트”
부함장 김지호 대위의 말을 조타수가 복창했다.
“이제는 부함장이 지휘한다.”
함장은 지휘통제실에서 나와 함장실로 이동했다.
함장실에 들어온 박동주는 침상에 누웠다. 그리고 이번 작전에 관한 내용을 떠올렸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명심할 점은 우리의 존재를 노출하지 않는 것이오. 박 소령!”
“명심하겠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무엇입니까?”
“인도네시아 반군 '말루쿠 공화국'의 주요 시설과 거점을 파괴하는 것이오.”
“함께 참여하는 부대는 있습니까?”
“정찰 부대와 보급 부대가 함께 갈 것이네. 하지만 육군과 공군 부대의 지원은 없네. 오로지 자네의 잠수함만이 이 작전에 투입되네. 자세한 작전 지시는 현지 잠수함 참모 이성현 대령이 할 것이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박동주 소령은 대한민국이 만든 최신예 잠수함 해모수함의 초대 함장이 되었다. 해모수함은 2041년에 건조되었다. 이 잠수함이 건조된 사건이 있었다. 2037년 12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NMD’ 문건이 유출되어 핵잠수함 추진에 대한 군사기밀이 공개되었다. 이 일로 국방부와 대한민국은 곤란해졌고 더 이상 ‘NMD’를 진행할 수 없었다. 대신 핵잠수함이 아닌 새로운 잠수함을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가 ‘NMD-2’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은 이성현 대령과 한태웅 수석연구원 그리고 이자경 연구원이다. 이자경 연구원이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AIP(공기 불필요 추진시스템)의 극대화였다. 재래식 잠수함은 잠항 상태에는 산소공급을 할 수가 없어서 작전 기간에 큰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산소공급을 위해 스노클링을 해야 하는데, 스노클링을 하려면 수면 가까이 부상해야만 한다. 이때가 재래식 잠수함이 가장 취약할 때다. 그런데 AIP는 수중에서 추가적인 산소공급 없이 동력을 공급할 수 있어서 더 오랫동안 스노클링을 하지 않고 잠항할 수 있게 한다. AIP의 성능이 우수할수록 잠수함의 잠항 시간이 늘어나 작전 기간에 제약을 받지 않게 된다. 이자경 연구원은 AIP의 성능을 기존보다 2배를 늘렸다. 이외에 잠항심도를 늘리기 위해 높은 수압을 견딜 수 있는 특수강판을 사용하였고, 소음을 줄이기 위해 개량된 수중 제트 스크루 프로펠러를 달았다. 어뢰관 2문과 수직발사관 10개가 있는데 중어뢰 백상어와 범상어,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했다.
해모수함의 첫 번째 작전은 ‘말루쿠 공화국’의 눈을 마비시키기 위해 레이더 기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레이더가 파괴되면 인도네시아의 정부군이 공격하는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순항미사일을 5기를 발사하여 벌인 작전으로 ‘말루쿠 공화국’의 레이더 기지를 괴멸시켰다. 그리고 두 번째 작전은 ‘말루쿠 공화국’의 공중 공격력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레이더가 복구되기 전에 헬기 중심의 ‘말루쿠 공화국’ 공중 공격력을 무력화해야 한다.
“함장님! 알파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부함장이 인터폰으로 보고했다.
“알겠소. 부함장! 정박하는 대로 보급을 끝내고 다음 작전까지 휴식하도록 지시하시오.”
알파 지점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사이에 있는 무인도이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조차 해모수함의 존재는 모른다. 다만, 대한민국 해군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말레이시아와의 10일간 해상 합동 훈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말루쿠 공화국’의 레이더는 파괴되었습니다. 다음 작전은 언제입니까?”
“수고했소, 박 소령!”
이성현 대령은 박 함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늠름한 모습의 박 함장을 보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패기 넘쳤던 10년 전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핵잠수함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으며 살아왔던 세월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자경을 만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았고 새로운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을 완성할 적임자로 박동주를 선택했다. 박동주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우수한 장교였다. 그를 최신예 잠수함 해모수함의 함장으로 발탁한 이유는 풍부한 잠수함 지휘 경험도 있지만, 자주국방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신예 잠수함 해모수함을 운용하기 위해서 정예 승조원 25명을 선발했다. 모두 장교와 부사관으로 잠수함 경력 3년 이상인 자로만 선발했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승조원 모두가 유기체와 같이 움직였다. 그 성과는 림팩(RIMPAC)에서 드러났다. 림팩은 태평양 연안국 해군 간 연합작전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세계 최대의 국제 해군 연합훈련이다. 1971년 시작해서 2년에 한 번씩 치러지고 있으며, 해상 및 공중에서의 가상의 적에 대한 반격을 주된 훈련 내용으로 한다. 2004년 림팩에 참가한 장보고함은 미 해군 존 스테니스 항모와 2척의 이지스 순양함, 구축함 등을 합쳐 30여 척을 침몰시키면서 단 한 번도 탐지되지 않았다. 2044년에 실시된 림팩에서 해모수함은 장보고함을 뛰어넘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에 이성현 대령은 매우 만족하고 이번 작전에 해모수함을 투입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두 번째 작전은 이틀 뒤 개시되네.”
“네. 알겠습니다.”
“박 소령, 이번 작전도 완벽히 수행해주게.”
“믿으셔도 됩니다.”
이틀 뒤, 해모수함은 새벽 3시에 출항했다. 잠항한 지 3시간이 지나자 목표물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도착했다. 주변은 고요했다. 지난번 작전 지점보다 50km 더 떨어진 지점이다.
“부상하라.”
해모수함은 수면 가까이 부상하였다.
“SLBM 3기를 발사하라.”
수직발사관 3문이 차례로 열리며, SLBM이 순서대로 발사됐다. 발사된 SLBM은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해모수함은 수직발사관을 닫고 서서히 수면 아래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방위 150도, 잠항 각도 5도, 잠항심도 200m, 속도 5노트.”
5분 뒤, ‘말루쿠 공화국’의 미사일이 날아왔다. 하지만 해모수함은 작전 지점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안전 지역을 이동한 해모수함은 반군의 움직임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말루쿠 공화국’의 대잠초계기가 쉴 새 없이 날아다녔다. 3시간이 지나자 수색작전은 멈추었다. 해모수함은 서서히 잠항심도를 올리며 알파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번 작전도 완벽하게 수행했군. 자랑스럽네, 박 소령!”
“감사합니다, 대령님!”
“피곤할 테니 어서 가서 쉬게. 인도네시아 정부군이 이제 ‘말루쿠 공화국’을 밀어내기 위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군. 다 자네 덕분에 가능한 일이야. 하하하. 우리의 역할은 끝났네. 이제 귀환을 준비하게나.”
이성현 대령은 매우 흡족했다.
대한민국 해군은 10일간의 말레이시아와의 합동 해상 훈련을 마치고 귀환했다.
‘말루쿠 공화국’의 레이더 기지가 파괴되고 공중 공격력이 괴멸되자, 인도네시아 정부군은 손쉽게 ‘말루쿠 공화국’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말루쿠 공화국’의 기세가 꺾였다. ‘말루쿠 공화국’은 군사적 지원이 없으면 이 이상 버티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말루쿠 공화국’은 일본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10일 뒤, 일본은 동맹국 ‘말루쿠 공화국’을 도와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사적 지원을 결정했다. 일본은 군사 지원을 위해 항공모함 야마토함 투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국제 사회가 비난의 목소리를 내었지만, 일본은 아랑곳하지 않고 항공모함 야마토함을 인도네시아로 출항시켰다. 그러자 인도네시아의 주변국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은 일본의 항공모함 투입을 강력히 반대하며 군사적 충돌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2045년 12월 3일.
필리핀해 공해상.
일본 항공모함 야마토함이 필리핀해 공해상을 지나고 있었다. 이지스 전투함 2척, 순양함 2척, 구축함 2척, 군수지원함 1척이 항공모함 야마토함을 호위하며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잠수함에서 발사된 두 발의 중어뢰가 항공모함 야마토함 왼쪽에 있는 구축함에 명중했다. 피격을 당한 구축함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경보음이 울리며 모든 함정이 멈추기 시작했다. 항공모함에 있는 대잠헬기들이 이륙하며 파괴된 구축함으로 다가왔다. 잠수함에서 또 한 발의 중어뢰가 발사되었다. 기울던 구축함은 급격히 쓰러지며 전복되기 시작했다. 대잠헬기는 구축함 주변 해상에 대잠용 경어뢰를 발사했다. 대잠헬기는 주위를 선회하며 소노부이를 떨어뜨렸다.
구축함이 공격당한 후 10분이 지났을 때, 항공모함 야마토함 앞쪽에 있는 이지스함이 강한 충격으로 흔들렸다. 잠수함이 쏜 어뢰를 맞은 것이다. 주변에 있는 함정들이 이지스함 주변의 해상에 함포사격을 가했다. 대잠헬기가 이번에는 이지스함 주변 해상에 어뢰를 발사했다.
이지스함이 공격당한 후 10분이 지났다. 이번에는 항공모함 야마토함 오른쪽에 있는 구축함이 폭발했다. 위로 물기둥이 솟아오르며 구축함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이지스함과 순양함이 기울어지고 있는 구축함으로 일제히 함포사격을 시작했다. 대잠헬기는 상공에서 소노부이를 뿌렸다. 잠수함을 찾기 위해 수색을 시작했다.
항공모함 야마토함을 호위할 수 있는 함정은 이지스함 1척과 순양함 1척과 군수지원함만이 남았다. 계속 경고를 알리는 소리만 울렸다. 구축함 2척은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앞쪽의 이지스함은 전투 불능의 상태였으며, 상공에는 대잠헬기가 항공모함 야마토함 주변을 선회하며 잠수함을 수색했다. 잠수함의 흔적은 오리무중이었다. 30분 안에, 구축함 2척과 이지스함 1척이 당했다.
30분 후, 항공모함 야마토함 작전회의실에 함장과 부함장, 호위함의 함장이 모였다. 침울한 분위기가 흘렀다.
“우리의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해군이 이 무슨 꼴입니까?”
함장 하시모토가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며 큰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의 공격이 없는 것 보니 적의 피해도 상당할 것입니다.”
“도대체 어느 나라 잠수함이 이 같은 도발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잠수함이 또 언제 공격할지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해서 미치겠습니다.”
“본국에 잠수함 지원 요청을 했습니까?”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국에서 아직 이렇다할 명령은 없습니다.”
“우리는 구축함 2척과 이지스함 1척을 잃었습니다.”
“인도네시아로 가도 그놈의 잠수함을 끝장내지 않으면 또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움직이지 말고 수색을 강화하여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혹시 그 잠수함이 아닐까요?”
“그 잠수함이라면 10일 전, ‘말루쿠 공화국’의 레이더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한 잠수함 말입니까?”
“그 잠수함 별명이 ‘고스트(Ghost)’라고 합니다.”
“고스트?”
“네, 귀신같이 나타나서 공격하고 사라진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함의 상태는 어떤가?”
함장 박동주가 부함장에게 말했다.
“현재 함의 상태는 어뢰 발사대 중 1문이 고장이 났으며, 충격으로 침수된 곳이 일부가 있지만, 작전 수행에 문제는 없습니다.”
부함장 김지호가 대답했다.
“야마토함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 떨어졌는가?”
“50km입니다.”
“이제 근접 전투는 어렵겠군.”
“함장님! 방위 180도에서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음탐관 정 중위가 소리쳤다.
“종류는?”
“일본의 소류급 잠수함인 것 같습니다.”
“전대원은 전투 준비하라. 일본 잠수함이 출현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전투에 대비하라.”
함장 박동주는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함장님! 적 잠수함이 우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발각된 것인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이대로 있으면 충돌의 위험이 있습니다.”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10km입니다.”
“항해사! 주변에 숨을 만한 곳이 없는가?”
“이곳에서 5km 정도에 협곡이 있습니다.”
“좋다. 그곳으로 이동하라.”
“방위 320도, 잠항 각도 2도, 잠항심도 70m, 속도 10노트.”
해모수함은 협곡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움직이자, 적 잠수함이 우리를 발견하고,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소류급 잠수함 겐류함은 해모수함을 탐지하고 뒤쫓기 시작했다. 거리가 2km 이내로 좁혀지자, 겐류함은 어뢰를 발사했다.
“적이 어뢰를 쐈습니다.”
“충돌에 대비하라. 디코이 발사준비!”
해모수함은 충돌 직전, 디코이를 뿌리고 좌현으로 틀며 협곡으로 들어섰다. 한 발은 디코이에 반응하며 빗나갔고, 다른 한 발은 바위에 맞았다. 겐류함은 협곡 앞에 멈추었다. 협곡을 통과하기에는 몸집이 너무 컸다. 해모수함은 협곡을 돌아 나왔다. 해모수함은 겐류함을 발견하자, 어뢰를 발사했다. 겐류함은 피하려 움직였으나 회전반경이 느려 뒷부분에 맞았다. 겐류함은 폭발했다.
“명중했습니다.”
음탐관 정 중위가 소리쳤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함장 박동주는 함의 상태를 점검했다. 해모수함은 겐류함의 공격으로 침수된 곳이 더 늘어났다. 깊이 잠수할 수 없는 상태였다. 더 이상의 작전 수행은 무리였다.
“함장님! 침수된 곳이 많아 깊이 잠항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퇴각해야 합니다.”
부함장 김지호가 말했다.
눈을 감은 함장 박동주는 말이 없다. 1분여 시간이 흘렀다.
“함장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여기서 보유한 SLBM을 모두 발사한다.”
“뭐라고요? 함장님!”
부함장이 소리쳤고, 주변의 승조원들이 함장을 주시했다.
“우리가 여기서 물러나면 항공모함 야마토함은 인도네시아에 도착한다. 그러면 전쟁은 더 길어지고 주변국으로 확산이 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가 여기서 야마토함을 저지해야만 한다.”
함장 박동주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10여 초가 흐르고, 부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해사와 조타수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른 승조원도 각자의 자리에 함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야마토함이 있는 정확한 좌표를 받기 위해 부상하라.”
해모수함은 부상하여 군 정찰위성과 통신을 시도했다. 5분 후, 수직발사관 10문이 열리고 탄도미사일 10발이 순서대로 날아올라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일본 항공모함 야마토함은 필리핀해 공해상에서 침몰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은 항공모함 야마토함이 필리핀해 공해상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본국으로 되돌아왔다고 발표하였고, ‘말루쿠 공화국’에 대한 더 이상의 군사적 지원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받지 못한 ‘말루쿠 공화국’은 얼마 견디지 못하고 2045년 12월 15일 인도네시아 정부군에 항복을 선언했다. 사람들은 이 전쟁을 ‘말루쿠 전쟁’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전쟁이 끝난 후, ‘고스트(Ghost)라고 부르는 잠수함이 ‘말루쿠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항공모함 야마토함을 침몰시켰다라는 소문이 퍼졌다.
<끝>
영화 ‘붉은 10월’(존 맥티어난), 만화 ‘침묵의 함대’(가와구치 카이지), 만화 ‘남벌’(이현세)에 나온 내용을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