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의 허상과 괴리

청지이심, 이청득심

by 십일월



전 회사 선배의 이직 축하를 빌미로 아주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코로나로 집에만 붙어있던 나는 서울나들이 자체로 이미 들떠있었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여러 명'이나 만난다는 것도 너무 신이 났다.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님들을 만나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다니, 정말 좋네요!"


떨리는 목소리로 다소 형식적이고 유치한 멘트를 내뱉었는데, 이게 내 솔직한 마음이어서 말하기를 주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대화가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앉아있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매우 우울한 마음을 품에 꼭 안고.


나는 왜 우울한가?'. 집에 가는 내내 나의 마음을 돌아보았다. 그 이유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뭐 사실 알고 있었다. 하나는 괴리가 느껴져서였고, 하나는 내가 말을 많이 못 해서였다.


본래 단체 모임을 선호하지 않는 나는 친구를 만날 때도 한 명씩만 본다. 가끔 두 명을 동시에 만날 때도 있지만 그건 경기도에 사는 내가 어쩌다 서울에 가게 될 때, 미뤄뒀던 약속을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 쓰는 수법이지, 통상적인 만남의 방식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엄청난 수다쟁이라 말이 무척 많을뿐더러 동시에 관종이기 때문에 대화를 나눌 때만큼은 상대방이 나에게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데 다수가 나에게 집중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말이 집중을 요하며 들을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소심한 관종... 물론 내 말=생각=감정은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불특정다수가 듣는 건 좀 그렇다! 뭐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원!


그리고 대화를 나눌 때엔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수다쟁이인 것처럼 상대방도 수다쟁이라고 생각하며 상대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고등학교 영어 듣기 평가하듯 리슨캐어플리Listen Carefully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진심으로 경청해야 한다.


경청의 사전적 정의는 '귀를 기울여 듣다.'이다. 그렇다면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방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내게 어떤 반응을 바라며 얘기하는지 알아차린 다음,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건의 맥락을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한 후,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의견을 솔직히 말하고, 혹여나 상대방과 다른 나의 의견에 감정이 상하지 않게 잘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데 단체로 있으면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그냥 통보가 되는 기분이랄까?


예를 들자면 동시에 나와 대화를 나눌 A, B, C의 세 사람이 있다. 내가 셋에게 말한다.


"나 감태를 먹어 봤는데, 씁쓸하면서도 오묘한 맛이었어."


그럼 A는 "응, 그랬구나. 그런 생각을 했구나." 이러면 대화 하나가 끝난다.


그다음 B가 내 말에 대답한다. "나도 먹어 봤는데! 나는 일반 김이 더 취향에 맞더라."


그다음 C가 말한다. "나도 지난번에 먹어봤는데, 누가 사주면 잘 먹을 거 같은 맛이더라. 아무래도 비싸니까."

라고 했을 때,.. 나는 누구에게 '먼저' 반응을 해야 하나...?


B에게 답변을 하다가 C의 의견은 자연스레 묻힐 수도 있고, 다른 대화 주제로 넘어가서 C의 얘기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한마디로 누군가의 의견은 의도치 않게 묵살될 수 있다. (물론 C는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근데 내가 신경 쓰여! 그래서 나는 단체로 있을 때 누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마치 내향형은 살아남을 수 없는 캘리포니아에서 거주하는 소심이, 사회부적응자가 된 기분이라 별로다. 그래서 웬만하면 스터디같이 뚜렷한 목적이 있는 모임이 아니면 참석을 꺼린다. (애초에 그런 모임도 잘 없다.) 차라리 와글와글 인원이 너무 많아서 앞사람이랑만 얘기해도 되는 자리면 괜찮다. 여하튼 나는 그런 성격의 나를 잊은 채,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이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무방비 상태로 모임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근데 또 내가 주최함)


날 우울하게 한 주범이었던 이유 하나는 말했고, 이제 '괴리감'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전 직장 동료들과 같은 직군에 있지 않다. 여전히 그곳에 이력서를 넣고는 있지만 가망은 없어 보인다. 직업이 아니기에 직업의식이 뚜렷하지도 않고, 잠깐이지만 그곳에 몸 담아봤으니 환상도 없고, 궁금증도 없다... 즉, 난 외부인이다. 그러다보니 회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얘기나 상사 욕을 할때면(그러니까 소위 '그 바닥'얘기) 나는 멀뚱히 앉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대화의 흐름은 다 회사 관련얘기였다. 물론 그 대화에 공감할 수도 있었고, 실제로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토대로 신나게 대꾸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 내 경험은 너무 '과거'였다. 추억은 힘이 없다.


내가 꿈꾸는 직군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동료들과 함께 있으면서 나도 그 사람들과 함께 한다고, 같은 결의 사람이라 착각하고 싶었나 보다.(물론 결은 같을 수 있다...) 하지만 팩트는 나는 '외부인'이고, 내 알량한 착각은 '허상'이라는 것~ 얼마나 바보 같던지...


그렇다면 난 앞으로 이 모임에 나가지 말아야 하는 걸까? 고민도 해봤지만 그러기에는 난 이 모임이 좋다. 따라서 다음에도 내가 낄 수 없는 주제로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장난 섞인 목소리로 말해야겠다. "거참, 이제 다른 얘기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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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른 얘기 뭐하지...?



글/그림 11월



경청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말을 놓고 갑니다...


"청지이심"

음으로 듣는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진심을 이해하기 위하여 경청해야 함을 이르는 말.


"이청득심"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 그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논어論語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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