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내게는 달나라처럼 아주 멀리 있는 이야기였다. 예전엔 어른들이 나이에 따른 시간 체감을 차량 속도계에 비유할 때, 그저 한 귀로 듣고 흘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몇 해 전, 내게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마흔의 문턱을 넘으면서, 나 역시 그 속도계 바늘 위에 올라타게 되었다.
마흔의 문턱을 갓 넘겼을 때의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친구들과 집까지 왕래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고, 나는 해외살이를 오래 하다 보니 더군다나 그럴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찾은 서울. 베스트 프렌드들 중 한 명인 친구의 이사 간 집을 처음으로 방문했다가 친구가 키우던 강아지에게 물리는 일이 있었다. 그 강아지는 친구에게 자식만큼 소중한 존재였고, 평소에도 사랑스러운 녀석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개를 무서워하는 나이지만 용기를 내어 방문했다. 그런데 그 강아지는 내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날카로운 소리로 나를 위협하듯 짖어댔고, 나는 무서웠지만, 친구 앞에서 싫은 티를 낼 수가 없었다. 또한, 친구가 오랜만에 한국에 온 내게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겠다며 좋은 마음으로 데리고 가 준거라 더더욱 싫은 티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자식만큼 사랑하는 강아지를 믿고 풀어 둔 내 친구의 안일함이 시너지를 내어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문제는 친구가 잠시 방으로 들어갔을 때 터졌다. 나를 향해 짖던 녀석이 어느새 내 뒤로 와서 왼쪽 다리를 물어버린 것이다. 너무 작은 강아지였고 상처도 피가 철철 나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친구에게 사건을 이야기하고 쿨한 척 넘겨버렸다. 하지만 평소 건강 염려증이 있던 나는 그날 이후 혹시 병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일주일을 엄청난 스트레스로 보냈다. 차라리 상처가 컸으면 바로 병원에 갔을 텐데, 상처가 작아 초반에 응급처치도 못하고, 다음 날 약만 사다 바르고 넘긴 것이 날 더 불안하게 했다. 결국 일주일 후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너무 늦게 왔다며 파상풍 주사가 소용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맞고 왔다.
개물림 사고 이후 내 몸은 처절하게 망가지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으면 왼쪽 허벅지가 화상 입은 듯한 통증이 생겼고, 잠시만 쪼그려 앉아도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왼쪽 종아리가 잘려 나가는 듯한 통증에 절뚝거리며 걷기도 했다. 무엇보다 심한 등 통증이 척추를 도끼로 내려 찍는 듯했다.
그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로, 평소 나를 잘 챙겨주던 고마운 친구였다. 하지만 강아지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던 걸까? 추후에 내가 고통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달했음에도 별로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였고, 나는 그 친구와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함께 알던 친구들마저 그 친구의 편을 들며 나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되는 말들을 뱉었다. 상대적으로 부유하게 살고 있던 그 친구, 그렇지 못하던 나의 상황이 맞물려 괜한 자격지심까지 들며, 그렇게 나는 소중했던 오랜 친구들까지 모두 떠나보냈다.
그 시기 나는 중요한 결심을 하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일을 준비 중이었지만, 몸이 망가져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또한, 통증 때문에 더는 좋아하던 타이트한 옷이나 레깅스를 입을 수 없었고, 이런 통증들은 악취까지 동반하게 되었다. 이 악취와 통증들은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히며, 평소 좋아하던 여행을 갈 때도 비행기나 막힌 공간에서 체취로 인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까지 얻게 되었다.
전신의 극심한 통증 때문에 평소 잘 찾지 않던 병원들을 이곳저곳 다니며 온갖 검사와 치료를 받았다. 통증의학과, 정형외과, 심장외과, 그리고 처음으로 한의원까지 가보았지만, 치료법을 찾지 못한 채 1년이 흘렀다. 그 사이 병원 영수증들이 백과사전 한 권 두께로 쌓였고, 결국 나는 원인이나 치료법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통증과 공생하며 살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났지만,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새로운 증상들은 추가되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스스로 어떤 상황에서 통증이 더 심해지는지 데이터가 쌓이며 조금은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사건 이후로 늘 생각했다. 과연 이 모든 불행이 그 강아지로 인해 생긴 것이 맞을까? 마흔이 넘으면 여기저기 아프다고도 하니 하필 기가 막힌 우연은 아니었을까? 혹시 우연히 발생한 일인데, 원망할 대상을 찾았던 것은 아닐까? 백 번, 천 번을 곱씹어봐도, 그 사건 직후 발생한 증상들이기 때문에 그 사건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주로 장시간 앉아서 하는 일을 해 왔고, 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때론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해야 하는 상황도 많았다. 하지만 내 증상은 이 모든 일에 반하는 것들이라 생계에도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지만, 마흔을 넘기고 겪는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인생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또한, 오래 사귄 친구들이라 해서 그 관계가 영원히 유지될 수는 없다는 것도, 아무리 오래된 친구들이라 해도 마흔을 넘기면 새로운 기준으로 나를 대하게 된 다는 것도 절실히 느끼며 나의 40대 초반은 검은 먹물을 뒤집어쓰며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