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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밸런스 맞추기

by sinn Jan 27. 2025

이번 주는 무사히 넘어가나 싶었는데, 출근했던 날 하루는 돌아와서 보니 왼쪽 다리에 피가 나 있었다. 놀라서 얼마 전 들여놓은 펫홈을 다 뒤져보고 집을 다 뒤져봤지만, 카메라가 없는 방 안에서 1시부터 4시 사이에 다친 것만 알게 되었을 뿐 더 자세한 경위는 알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에 병원 다녀올 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해서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었다. 소독만 살짝 해줄 뿐 답답하고 미안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서 다리는 빠르게 아물고 오월이도 아무렇지도 않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틀 후에는 밥을 잘 먹던 오월이가 갑자기 울더니 토를 했다. 불과 2주 전에 토했었던 적이 있어서 가보니 헤어볼을 토했고, 사료는 그 와중에 먹어서 소화가 안되어 같이 나온 것 같았다. 오월이가 무언가 하나 하고 나면 아무래도 혼비백산이 되어 이것저것 찾아본다. 헤어볼은 가끔 토하는 경우도 있으니 경과를 보라는 글들이 많았다 (물론 같은 토에도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는 주장과 지켜보라는 주장이 공존하는데, 나는 오월이가 병원을 너무나도 싫어해서 아무래도 후자의 말을 보게 된다). 오월이는 토를 하고 잠시 뒤에 배고프다는 신호를 주었고, 아무래도 바로 토한 직후이기 때문에 건식 사료를 주기 좀 그래서 습식 사료를 꺼냈다 (요즘 특식처럼 먹고 있다). 하지만 이게 부족했는지 오월이가 계속 내 주위를 얼쩡거렸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요 며칠 계속 아팠던 오월이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특특 간식으로 고양이용 닭가슴살을 데워서 주었다. 습식과 닭가슴살을 연달아 먹는 오월이는 신이 나서 계속 뛰어다녔고, 나는 잘됐다 싶어서 살짝 놀아주다가 (이것도 굉장한 잘못이었다) 간식을 주고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월이가 갑자기 무릎 위로 올라와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말했지만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잠을 재웠다. 나름 평화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마침 주말이어서 이렇게 해줄 수 있어서 다행라고 도 생각했다. 



이렇게 깬 오월이를 봤을 때 나는 아차 싶었다. 오월이는 계속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전에도 분리불안에 대한 영상과 글을 몇 번 봤다. 나는 직장인이라 일주일에 몇 번 이상은 거의 하루 종일 나가 있어야 하고 당장 설 연휴에 집에 없을 예정이라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오월이가 잘 먹던 밥도 안 먹기 시작했다. 내게 와서 찡얼대는 걸 보니 아까 먹은 맛 난 걸 내놓으라는 것 같았다. 뭘 어떻게 줘도 사료를 먹지 않아 할 수 없이 사료 샘플을 조금 주고 저녁 내내 의도적으로 오월이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다른 방으로 갔을 오월이는 저녁 내내 본인을 외면하는 나를 보고 있었다. 


고양이와 산다는 것은 서로와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인 것 같다. 내가 집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사실 저녁이든 점심이든 좀 더 시간을 더 보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에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고, 이번 달은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왔지만 앞으로는 근무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어서 오월이가 적어도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건 아무도 없을 때도 했으면 한다. 그러려면 내가 집에 있더라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일정한 시간에 놀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어떤 순간에서도 균형을 지켜야 했었는데, 순간 나의 개인적인 죄책감과 감정에만 충실해서 오월이에게 일관되게 행동하지 못했었다. 


저녁 내내 나를 보는 오월이의 시선이 직접적으로 느껴진 것 이외에도, 오월이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괜스레 나 때문에 혼란스러움과 서러움을 느꼈을 것 같아서 미안했다. 오월이의 입양을 결심하고 나는 무엇을 사는 게 좋을지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만 이런 점에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외적인 환경보다 내가 오월이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지, 나의 태도나 마음가짐 그리고 철칙에 대해서 먼저 원칙을 세웠어야 했었다. 아니,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막상 지내보니 내가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 내가 시간이 좀 더 여유로운 주말, 오월이의 건강 상태에 따라 내 마음이 계속 오락가락하게 된다. 


하지만 오월이가 좀 더 오랫동안 건강하고 잘 지내게 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아픔과 내 죄책감은 묻어두고 내가 평일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일단 서로에게 잘 적응할 때까지는. 그래서 오히려 오월이가 안쓰러울 때 하룻밤의 안쓰러움과 미안함을 곱씹으면서 적당하게 대해주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오월이는 사실 오늘 아침에도 내 옆에서 찡얼대다가 내가 외면하자 5분 정도 있다가 자기 자리로 가 있다. 미안하기는 하지만 쳐다보지 않고 대답을 안 해주는 시간을 버텨야, 오월이가 혼자 지내는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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