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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Y Sep 02. 2024

첫 이별, 나를 망가뜨린 시작

엄마는 처음부터 오빠를 그다지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직업군인도 아니고 제대하면 뭐 할 거 있어? 뭐 먹고 살지도 깜깜한데 무슨 결혼이야. OO이 아직 대학도 졸업 안 했어. 편입시킬 생각은 안 해? 아직 어리니까 친구로만 만나. 친구로만."


오빠가 중사로 진급하고 나서였다.

남자친구가 나와 결혼하고 싶다는데 엄마한테 빨리 인사부터 드리고 싶어 한다고 불러낸 자리에서 오빠 면전에 대고 엄마가 한 말이었다.

이발까지 하고 새 옷을 꺼내 입고 나온 오빠는 커피숍에서 엄마가 떠난 뒤 새빨개진 얼굴로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오빠는 군대에 있는 동안 나와 결혼하고 싶어 했었다.

그 부대에는 일찍 결혼한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 군인 가족들이 군아파트에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주말이면 결혼식 예도 담당이었던 오빠를 따라 전국 각지로 부대원 결혼식을 자주 다녔었다.

예도는 결혼식 식순 말미에 부대원들이 해주는 특별한 축하 의식이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양갈래로 서서 마주 보며 긴 칼끝을 맞대고 ‘축복!’이라는 구령을 외치면

그 군인들 사이로 행복한 신랑신부가 걸어 나오도록 해주는 일이었는데, 난 그 예도를 볼 때마다 신랑 신부가 부러웠고, 그 군인들의 아우라에 감동을 받았었다.


오빠는 칼을 들고 있기보단 턱시도를 입고 걸어 나오는 새신랑이고 싶어 했고,

나는 당연히 그 옆의 새하얀 웨딩드레스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믿었었다.






카드내역을 보고 오빠의 집으로 뛰어갔던 날 나는 카드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카드를 썼는지 얼마를 썼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와 썼는지 물어봤자 다른 핑계를 댈게 뻔했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머뭇거리자 할 말이 없으면 가라고 했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한참만에 입술을 떼고 며칠 전 어디 갔었냐고 묻자 오빠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침묵했고, 도대체 왜 이러냐는 내 절규에 차갑게 집으로 돌아가라며 현관문을 다시 열어젖혔다.

1000일이라는 기념 파티를 한지 고작 20일쯤 지난

날이었다.


먹을 수도 잘 수도 없었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잔인하도록 슬픈 감정이었다.

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며칠 동안 누워서 울기만 했다.

내 마음은 그대로인데.. 오히려 그 긴 시간 동안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는데.. 제대를 하고 나면 결혼을 준비하게 될 줄 알았는데.. 내 모든 게 부서져버린 느낌이었다.


오빠는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죽을 것 같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오빠는 다른 여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같고, 연애 초기에 나에게만 베풀던 달콤하고 다정한 말과 행동들을 이제는 다른 여자에게 똑같이 되풀이할 것을 생각하니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았다.

거의 두 달 동안 우울증 말기 환자가 되어 친구들조차 만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며칠을 방밖으로 나오지 않는데도 엄마는 나에게 무심했다. 나처럼 같이 안고 울어주지는 않더라도 따뜻한 위로 한마디 건네줄 수도 있었을텐데, 타인과 공감능력이 전혀 없는 엄마는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몰랐거나, 저럴 땐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고 생각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시간이 지난다고 툭툭 털어낼 수가 없었다. 여전히 너무 아팠다.

그저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고, 우울증 환자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첫 직장의 면접을 봤다. 부서진 조각을 천천히 다시 맞추고 싶었다.


직장인이 되었다는 긴장감에 아픈 감정이 잠깐잠깐 잊히기도 했다. 그렇게 보이지 않게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다가도 툭하고 눈물이 맺혀서 회사 화장실에 숨어 몰래 우는 날이 있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쯤 되었을까 오랜만에 나와서 얼굴 좀 보자는 4인방 중 한 친구를 만나러 간 술자리에서 전남편을 만났다.

그 뒤 한 달 반 만에 상견례를 했고, 상견례 며칠 뒤 바로 결혼날짜가 잡혔다.


엄마는 오빠를 소개해줬을 때랑 완전히 180도 다르게 말을 바꿨다.

내가 어리니까 저 정도 괜찮은 사람을 만난 거란다.

지금이 아니면 저렇게 괜찮은 집에 시집을 못 갈 수도 있으니 빨리 가야 한다며 하며 8살이나 많은 새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단숨에 밀어붙였다.


난 순순히 엄마 말에 따르기로 했다.


4인방은 매일같이 죽기 살기로 날 뜯어말렸지만

난 그게 오빠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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