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엄마가 불편하고 싫을까?'
이 물음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글이 며칠에 하나씩 탄생되고 있다.
무심코 SNS를 보다 보면
친정엄마가 보내온 정갈한 밑반찬이라는 사진
친정엄마와 함께 여행하는 사진
친정엄마에게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사진
이런 엄마, 저런 엄마.. 세상엔 다정하고 온화하고 돈 많은 엄마들도 참 많더라.
폼나게 사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부모들 관상부터가 좋은 것 같다.
나도 엄마가 있지만 왜 하필 나는 낮은 자존감만을 물려준 그녀의 딸이어야 했나.
엄마와 일 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지내면서 찾아온 해방감에 요즘 평온해서 좋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천륜을 배반한 딸년이라는 죄책감이 발목을 잡고 있다.
요즘 나는 글을 쓴답시고 지난날을 되짚으며 내가 엄마를 미워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타당성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만 같다.
엄마는 안 좋은 일을 맞닥뜨리면 늘 남의 탓만을 했다.
본인이 주체가 되어 벌어진 일도 뒤틀리게 되면 다른 사람을 내세워 그 뒤에 숨고 나선 피해자처럼 거리기 일쑤였다. 나와 아이들을 엄마집에서 쫓아낼 때나 심지어 새아빠가 죽었을 때도.
나도 엄마처럼 내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엄마 탓으로 돌렸던 적이 있었다.
결혼 3개월 차에 모든 걸 되돌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엄마는 안정과 평화를 내게 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마에게 달려있는 것과 똑같은 '애 둘 딸린 이혼녀'라는 꼬리표였다.
엄마는 서른여섯에 이혼녀가 되었지만, 나는 꽃다운 나이 스물여섯에 이혼녀가 되었다.
명예롭지 않은 훈장을 가슴속에 품은 지 20년 차가 되는 지금에 와서 내 이혼과정을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키보드를 튕겨내며 글로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엄마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탓도 아닌, 그저 운명의 갈림길에서 늘 잘못된 선택을 한 내 판단이 불러온 결과라고 슴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더럽게 꼬인 팔자를 타고 난 탓에 곤두박질치고 또 곤두박질치는 인생의 한복판에서 매번 이정표를 잘못 따라가고 길을 잃었었다.
그래. 모두 재수 없는 내 탓이다.
그리고, 이제 엄마를 그만 미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