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이의 엄마
나는 둘째가 100일이 막 지났을 때부터 일을 했다.
14개월 차이인 아이 둘을 데리고는 집 안에서 하는 부업 밖에 답이 없었다. 부업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여러 궁리를 하다가 인터넷으로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낮에는 애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애들이 잠든 밤이 되면 컴퓨터를 켰다.
○마켓, ○션으로 조금씩 시작해 몇 달 뒤 둘째 아이 이름을 딴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했다.
명절에 친정에서 남편 몰래 받았던 65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포토샵 책을 한 권 사서 독학으로 어쭙잖게 만들기 시작한 유아복 쇼핑몰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모양새가 갖춰져 갔고, 보내야 할 택배박스가 신발장 앞에 점점 높이 쌓여갔다.
자는 시간을 쪼개서 택배를 보내는 이유는 당연했다.
엄마의 운명을 똑같이 타고났는지, 남편은 나에게 돈을 가져다준 적이 없었다.
엄마가 결혼 전 친척들 앞에서 사돈댁이 어마어마한 집안이라도 되는 듯 자랑을 일삼고 나에겐 좋은 집에 시집가는 거라며 세뇌시킨 이유는, 시부모님이 노후준비를 잘해놔서 은퇴 후의 삶이 여유로운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분들의 가족, 형제들의 고상한 직업군과 높은 학벌 때문이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술장사만 해본 엄마는 돈은 만져봤어도 평생 가질 수 없었던 집안 스펙을 사위를 통해 얻어보겠다는 졸부 같은 욕심을 가졌다. 자식 결혼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가정이 시댁 수준 가까이 올라갔다고 으쓱댔을지도 모르겠다.
시아버지는 다혈질이라 무서웠지만 책임감이 강한 분이었고, 시어머니는 신사임당 같은 분이셨다. 하지만 아쉽게도 엄마의 사위는 부모님들의 DNA를 물려받지 못한 불운아였다.
결혼 전부터 시댁에서 용돈을 받아쓰는 백수였던 남편은 결혼 후에도 똑같이 백수였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먹는 것, 비싼 술, 옷, 액세서리, 반려견에 이르기까지 소비하는데 거침이 없었고, 돈이 떨어지면 시아버지에게 가서 당연하듯 손을 벌렸다.
외동아들이라 나중에 유산 나눌 형제가 없다는 것을 아무 데나 가서 떠들었다. 본인을 돋보이게 하는 자랑거리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전문대 중퇴가 마지막 이력인 서른 넘은 아들을 아무 대책 없이 장가부터 보내놓고 우리 집에 면목이 없던 시댁에서 식을 올리고 두 달 뒤 부랴부랴 한 대학가 앞에 가게를 차려주었다. 수입맥주를 파는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펍(PUB)이었다.
그 동네에선 장사가 제법 잘 되는 가게였지만, 남편이 인수한 후 점차 손님이 줄었고, 그의 난데없는 소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어떤 날은 처음 본 반지와 팔찌를 차고 있고, 어떤 날은 명품 티셔츠를 세일 덕에 싸게 샀다며 입고 들어왔다.
또 각방을 쓰던 남편방 컴퓨터 화면에는 음란물을 결제한 내역이 떠있는 날이 있기도 했다.
나에게는 1원도 준 적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대형마트에 데려가 기저귀나 분유, 이유식 재료만 사업자카드로 결제해 줄 뿐, 내 휴대폰 요금이나 보험료를 못내는 건 물론, 계절이 바뀌어도 옷 한 벌 사 입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푼돈이라도 벌어야 했다.
내 통장에 아주 적긴 했지만 조금씩 돈이 생겼고, 그 돈은 잠자는 시간과 바꾸어 얻은 소중한 것이었다.
아침을 먹이자마자 아이들을 번갈아 등에 업으며 택배를 포장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시간에 겨우 맞춰 택배를 내보낸 뒤 목이 가슴팍까지 늘어진 남편의 티셔츠를 입고 첫째를 포대기로 업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한 손에 컵라면을 든 채 아이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서서 주워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주저앉아 한참 우는 날도 있었다.
그 당시 간간히 두부 한모, 달걀 한 판을 사러 가던 집 앞 작은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요 위에 하얀 집이지? 새댁은 몇 살이야?"
라고 물어보셨을 때, 한참 동안 대답을 못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몇 살인지.. 내 나이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집 밖으로 혼자 나가는 외출은 유일하게 그 작은 가게가 다였다.
대학생이 된 동생이 가끔 조카들을 보러 오는 것 외엔 누군가 날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남편은 점심때 나갔다가 가게를 마치면 언제 들어오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자기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늦은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다 지쳐서 아이들 옆에서 쪽잠을 자고 나면 다시 다음날 아침이 시작되는 반복이었다.
다른 사람과 교류가 없으니 말도 못 하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혼자 묻고, 혼자 대답을 하는 대화가 하루종일의 전부였다.
그러니.. 아무도 나에게 나이를 물어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당황했다.
"스물..... 스물다섯 살.. 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