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개월 차
내 나이 또래 여자 목소리에 잠깐 정신이 들었다.
“저기요!! 저기요!! 어머, 어떻게 해~”
추웠다. 그중에서도 유독 한쪽 볼따귀가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지금은 겨울이니까.
차가운 바닥에 내 볼이 닿아 있는 것 같았다.
날 깨운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여러 명이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려고 해도 떠지지 않아 그대로 눈을 감은채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또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어느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고,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자 안도감이 몰려왔다. 조그맣게 엄마의 목소리도 들리고, 곧이어 뇌사진을 찍기 위해 이동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들렸다.
뇌가 아니라 눈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몇 시간이 지나자 점점 의식이 돌아오면서 안 보였던 눈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천천히 병원 벽을 더듬으며 복도를 걸어 화장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무의식적으로 거울을 보았다. 그 순간 자리에서 다시 쓰러질 뻔했다.
머리통이 울퉁불퉁 부어올랐고, 양쪽눈은 퉁퉁 붓다 못해 한계가 와서 터진 건지 눈두덩이 피부가 다 찢겨 있었다. 눈은 흰자가 있어야 할 부분이 전부 새빨간 피 색깔로 변해있었다.
난 결혼식을 올린 지 3개월 만에 남편에게 맞고 차디찬 길바닥에서 기절을 했다.
엄마와 나는 남편에게 구타를 유발하는 특이한 유전자라도 가진 걸까?
아니.
엄마는 모르겠지만, 난 분명히 아닌 것 같다. 내가 잘못한 게 없었다.
결혼 후 남편은 대학가 앞에서 맥주집을 했다. 나는 당연히 가게 일을 도왔다. 그날은 장사가 잘되어 기분이 좋다고 회식을 했던 날이다. 술이 떡이 되어 인형을 뽑아오겠다고 나간 사람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지갑도 없고 처음 와본 술집에서 외상을 할 수도 없어 민망하게 혼자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밖에서 누구와 시비가 붙었던 건지 한참만에 돌아온 남편이 갑자기 남의 가게 주방에 들어가 집기들을 집어던지고 행패를 부렸다. 겨우 말리고, 손님들과 사장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내일 전부 변상해 드리겠다고 사과를 한 뒤 내 연락처를 드렸다.
억지로 남편을 그 상황에서 끌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려는 그때, 갑자기 날 보더니 니네 집으로 가라며 소리를 질렀다.
니네 집? 우리는 결혼 몇 개월 전부터 같이 살고 있는 우리의 집이 있는데 니네 집이라니..
“우리 집으로 가야지. 니네 집이 무슨 말이야?!”
이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리곤 눈앞이 번쩍 했다.
그 후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 모르겠지만 지나가던 여자가 나를 발견하고 경찰과 119에 신고해서 한겨울 길바닥에 눈도 못 뜬 채 내동댕이 쳐진 내 목숨을 살려준 거였다.
언제나 피해자와 가해자는 서로 맞지 않는 입장을 가지기 마련이니 편파적인 내 기억일 수도 있다만,
내가 발견되기까지의 과정은 남편이 진술서에 썼던 내용과 완벽히 일치한다.
남편은 쓰러진 나를 길바닥에 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가 곧바로 경찰에게 잡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처럼 나의 엄마가 보는 앞에서 남편에게 두들겨 맞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