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으로 가는 길
결국 가게를 3년 만에 쫄딱 말아먹은 남편은 다시 아무것도 없는 백수로 돌아갔다.
시댁에선 그 댁 바로 옆단지에 집을 새로 마련해 주셨다. 시아버지께 매일 얼마씩 용돈을 받아 쓰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고, 용돈을 주신다며 낮이며 밤이며 하루도 빠짐없이 불쑥불쑥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통에 집안에서 편한 옷을 입고 있을 수도 없었다.
가게로 몇억을 홀랑 날린 남편은 부족해도 용돈을 더 달라고 할 염치가 없어 얌전히 소비를 멈췄다.
방 두 개짜리 좁은 아파트에 물건을 쌓아둘 공간이 없어 1년 넘게 공들인 쇼핑몰을 접어야 해서 속이 문드러졌다. 백수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는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남편은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늦은 시간 돌아온 아내를 맞이하면서, 어제까지 넘지 못하고 있던 레벨을 드디어 오늘 올렸다며 플스(‘플레이스테이션’의 줄임말-게임기) 화면을 보여주며 자랑을 해댔다.
친구 한 명 없는 타지에서 남편 대신 돈을 벌던 나에게 종종 시어머니는 교육자 집안 어르신답게 지금 가장 마음이 힘든 사람은 본인의 아들이니 내가 이해해줘야 한다고 하셨었다.
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웃으며 알겠다고 한 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큰 육교밑으로 가서 차를 세워두고 몇십 분씩 울다가 집에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그리곤 다시 일을 하러 나갔다.
친정에서는 동생만이 내가 밤마다 남의 가게에서 서빙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도 며칠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조카들을 바꿔달라는 동생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황급히 전화를 끊는 일이 많아지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고백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 사달이 벌어진 건 국제전화 요금 12만 원 때문이었다.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 있던 중 노하신 시아버지 전화를 받고 지시대로 남편을 깨워 전화기를 건넸다. 새벽까지 열렬히 레벨업에 매달리던 남편은 전화기 너머 벼락같은 고함에 놀라 일어났고, 모른다는 답만 반복했다. 목소리가 얼마나 크셨는지 XX새끼, X새끼.. 온갖 욕이 전화기 너머 나에게까지 들려왔다.
시댁에서 백수 남편 우리 집 전화요금을 대신 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12만원이 넘는 국제전화 요금을 보시고 시아버지가 아침부터 펄펄 날뛰신 거다. 남편은 전화를 끊자마자 서랍장을 부서지도록 걷어찬 뒤 욕을 중얼거리며 영수증 모아둔 상자를 뒤지기 시작했고, 나도 옆에서 같이 뒤적거리다 지난해 7월에 날아온 고지서를 찾아냈다.
"이거다!! 작년에 이태리에서 동생이 전화했던 거. 그거였어"
동생이 유럽배낭여행을 하던 중 이탈리아에서 카메라를 도둑맞는 일이 있었다. 외국에서는 수신자부담으로 걸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출국 전 가입했던 여행자 보험에 관련한 보상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몇 차례의 짧은 통화였다. 물론 남편도 알고 있었다. 그게 왜 이제 와서 시아버지께 당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벌써 6개월 이상 지난 일이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엉뚱한 요금이 아니라 처제였으니 안심하시라 말씀드리라고 했지만, 다행으로 생각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다시 전화드릴 생각은 않고 "그러면 다야? 다냐고?"라며 내 몸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내가 상황에 맞지 않는 얘기를 한 건가 갸우뚱했다.
"혹시 요금이 커서 놀라신 거면 내 동생 때문에 나온 거니까, 그건 내가 아버님께 보내드리면 되지 않아?"
노동으로 조금씩 채워지던 내 통장에 그 만한 돈은 있었다. 애꿎게 남편에게 향했던 시아버지의 무참한 욕지거리가 출처를 알고 난 뒤, 내가 없는 자리에서 사돈처녀인 내 동생에게로 향하게 될까 봐 싫었다.
다시 아이들 앞에 쪼그려 앉아 잠시 전화 때문에 중단되었던 아침을 마저 먹이려는 중이었다.
얼굴과 어깨로 몇 차례 날아온 발길질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음식과 함께 거실에서 베란다 앞까지 나동그라졌다. 그 이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아이들에게 먹여야 할 음식을 올려놓았던 조그마한 밥상도 하늘로 날아올랐다.
음식이 온데 널브러졌고, 맞은 곳이 아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넘어진 엄마를 보며 아이들이 놀란 눈을 하더니 둘이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쓰러진 채로 우는 아이들 얼굴을 몇 초간 보고 있는 동안 귀에서는 '삐이~'하는 이명이 들려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입 안에 있는 음식을 마저 삼키지도 못한 채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울고 있는 어리고 어린 내 새끼들.
이 울음이 낯설지가 않다. 이 얼굴을 본 것만 같다.
내가 어릴 적 친아빠에게 맞는 엄마를 보며 목놓아 울던 내 울음. 내 얼굴. 그대로였다.
나는 이제 무얼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 지저분해진 옷을 갈아입곤 아무 말 없이 차키를 들고 나와 그 길로 동사무소를 향했다.
동사무소는 가끔 차를 잠시 대놓고 울고 돌아가던 비밀 장소인 큰 육교를 조금 지나자마자 우측에 있었다.
나는 이 길 위에서 오늘 같은 상황을 수도 없이 많이 상상했었다.
그래서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내 행동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능숙했다.
집에 돌아와 말없이 남편 앞에 반쪽만 작성된 서류를 내려놓고 신혼여행 이후 한 번도 열어본 적 없었던 가장 큰 트렁크의 지퍼를 열었다.
친정으로 데려다줄 택시를 기다리며 서있는 내 오른손은 첫째 아이의 조그마한 손을 잡고 있었고, 걷지 못하는 둘째 아이는 등에 업혀있었다.
그리곤 나머지 손으로 트렁크의 손잡이를 있는 힘껏 꽉 쥐었다. 이 지난한 게임의 마지막 레벨을 깨고 파이널에 도달했다. 드디어 끝이 났다.
나는 스물여섯이 되어 아이 둘을 데리고 지옥에서 탈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