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5일

by 은은
개구리.jpg

不知夫天籟之均寓(부지부천리지균우)

똑같이 자연의 소리에 소속되어

通塞之同源(통색지동원)

트이든 막히든 근원을 같이함을 알지 못한 채

必欲殄天物而逞吾志(필욕진천물이령오지)

기필코 대상물을 없앤 뒤에야 기분을 풀려고 하니

無乃蔽於理而傷於仁者耶(무내폐어리이상어진자야)

이치에 어두워 인을 행치 못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장유(張維, 1509 ~ 1638), <와명부(蛙鳴賦)


계곡(溪谷) 장유는 조선 중기 문신, 서예가, 학자로 학문이 해박하여 천문 · 지리 · 의술 · 병서 등에 두루 능통하였습니다. 특히 문장에 뛰어나 상촌(象村) 신흠(申欽),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택당(澤堂)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 4대가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신흠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관련된 한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위글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크게 깨달은 바를 기록한 시입니다. ‘賦(부)’는 감상을 느낀 그대로 적는 한시체의 하나로 글귀 끝에 운을 달고 대(對)를 맞추어 짓는 글을 말합니다. ‘賦’의 한자 뜻은 펴다, 읊다, (시가를) 짓다, 문채(文彩: 문장의 멋)의 이름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 시의 내용은 사람의 기준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해서 개구리를 해치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해대는 것이 인(仁, 사랑)을 해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구리의 기준에서는 되려 사람들이 더 시끄럽고 자신이 속해 사는 서식지를 망치는 장본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일찍이 원주 생활 협동의 창시자이자 생명 사상가인 장일순은 동네 지인들과 막걸리를 한잔 걸친 후 돌아오는 논두렁길에서 풀벌레와 개구리 소리를 듣고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고 소회를 밝힙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미물들에게서 겸손과 겸허, 신성(神性)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자기네 땅을 팔라고 하는 워싱턴 대추장에게 보내는 시애틀 추장의 글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맑게 노래하는 풀벌레들 /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의 신성한 것들”


우리는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의 신성한 것들을 너무 자주 잊고 살아가는건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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