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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수 Dec 12. 2023

싱글인 부산2

싱글의 삶. 크게 기쁜 일은 잘 없지만, 결코 울 일도 없다.

   

   나는 기쁘지 않다. 

   싱글이라 기쁘지 않다. 


   하지만 기쁘지 않음이 슬픔은 아니다. 그냥 기쁘지 않은 것이다. 활짝 웃지 않는다 해서 울고 있음이 아닌 것처럼, 나의 오늘도 그저 무표정 정도인 것이다. 그러니 싱글이라 슬프지도 않다.     


   웃음도 울음도 없다만, 그렇게 건조하고 지루하다만, 이 정도면 만족이다. 연애는 내게 주식과 같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주가가 상승세일 땐 이자가 원금을 넘을 만큼 크게 행복하지만, 까딱하다 원금까지 다 잃어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반면 싱글인 지금은 신용 높은 은행에 저금리 예금을 예치한 기분이다. 뭐 그리 드라마틱하게 웃음이 나지는 않는다만 아주 안정적인 만족이 보장되어 있다.  

        


   그래, 인정한다. 연애를 할 땐 자주 웃었다. 그만큼 분명 울어대기도 했다만, 어쨌든 휘어지게 해사했었다. 좋았던 순간도 많았다. 나도 할 만큼 해 봐서 알 만큼 안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했던 순간들은 행복할수록 잔인하게 기억되었다. 매일 그렇게 활짝 웃어 보여도 어차피 언젠가는 나를 울릴 이를 향하는 웃음이 되곤 했다.     


   다시 생각해도 연애는 주식과 너무 닮아있다. 나의 주가가 치솟던 때, 새어나는 웃음을 도저히 막을 길 없는 순간들이 주는 짜릿함이란. 그러나 그게 결국 다 독이다. 주가가 바닥을 치고 내가 원금을 잃어도 고점의 기억 때문에 쉽게 손절하지 못한다.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고, 버티면 언젠가 회복할 것만 같고.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회수하지 못한 채 다 잃고 만다.     

          




   싱글로 지내며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만족만 있어도 삶은 충분히 풍요롭다는 점이다.


   나는 가령, 혼자 먹는 저녁 같은 것에서도 만족을 느낀다. 함께 먹는 이가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로만 먹을 수 있다. 뜨거운 음식을 완전히 식혀 먹는 내 버릇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너의 선택과 속도를 배려할 필요 없는 오롯한 나만의 저녁. 그것이 늘 보장되는 삶. 큰 기쁨은 아니다만 만족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러니 싱글이 백만 번 낫지 않은가. 


   제1금융권 은행은 쉽사리 망하지 않는다. 이자가 비록 미미하겠지만 언제나 확실한 만족이 보장된다. 연애는 나를 배팅하는 것이다. 언제 등 돌릴 지 모를 이에게 나의 사랑, 헌신, 희생, 배려와 같은 것들을 거는 일이다. 그걸 걸어야, 그걸 받겠지만. 그걸 걸지 않고, 그걸 받지 않는 게 더 현명하다. 그러면 최소한 무언갈 잃은 일은 없으니까.     



  싱글의 삶. 크게 기쁜 일은 잘 없지만, 결코 울 일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 잘잤느냐는 다정한 인사는 없지만.

 -이 밤, 네가 너무 보고 싶다는 절절한 고백은 없지만.

 -네가 좋아하는 색이라 골랐다는 푸른 카네이션은 없지만.

 -가라앉은 분위기에 너 요즘 무슨 일이 있냐는 따듯한 걱정은 없지만.     


 > 더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형 선고도 없고

 > 앞으로 내게 연락하지 말아 달라는 잔인한 부탁도 없고

 >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이 좋아졌다는 진심 없는 사과도 없고

 > 이제 우리는 그저 하나의 추억일 뿐이라는 서글픈 허무도 없다.      

    

   그러니 기쁘지 않다고 속상하지 말자. 울 일이 없음에 만족하며 살자. 





   그러나 찝찝하다. 


   고데기 불을 켜놓고 외출한 것 같고, 방충망 없이 창을 활짝 열어 놓은 것 같고, 어딘가 계속 불편한 기분이다. 아무도 싱글인 내게 혼자라 안됐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괜한 열등감에 자기방어적 PR을 하는 것 같달까.    


  사람은 한자로 사람 인[人]자 하나로 표기할 수 없다.  꼭 사이 간[間]자가 붙어야만 완전한 뜻을 담을 수 있는데, 인간이란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야만 진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어른들이 ‘너 언제 인간 될래?’라는 말을 하는 거라고.. 관계를 맺지 않고 사는 나는 어째 반쪽짜리 인간처럼 느껴진다.     



   아니지,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고 직장 동료와의 관계도 관계다. 사랑 하나 안 맺고 산다고 그게 뭐가 반쪽이야. 나는 지금, 완전하다. 완전한 인간이다. 진짜, 완전하다니까. 



   그래도 여전히 기분이 애매하다. 아니라고 할수록 어딘가 비참하다.    


   ... 정말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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