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뛰어넘는 법: 달리기로 깨달은 작은 자유
40년 만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야외에서 스스로 선택한 러닝을 했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달렸지만, 그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지시에 따른 달리기였다.
운동장에서, 체력장에서, 군대에서.
달리기는 늘 ‘의무’였다.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경쟁, 이탈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 정해진 속도와 시간들.
그 속에서 달리기는 늘 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누가 시킨 것도, 기록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내가 원해서,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넘어보기 위해 뛴 첫걸음이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
걷는 것은 좋아했지만, 뛰는 것은 늘 피했다. 오래 달리기는 내게 트라우마였다.
학창 시절과 군대에서 달리기는 마치 징벌처럼 다가왔다.
“운동장 10바퀴, 20바퀴, 선착순!”
자유롭게 뛰고 싶은 마음과 달리, 줄지어 달려야 하는 오래 달리기는 숨 막히게 답답했다. 체력 테스트에서는 다른 친구들을 따라 뛰다가 숨이 차올라 끝까지 완주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숨이 차오르는 불편함은 당연한 것이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단지 내 속도를 몰랐을 뿐인데, 나는 스스로 ‘능력의 한계’라고 믿어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오래 달리기를 못한다’, ‘심폐지구력이 약하다’는 틀 속에 나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다.
나는 운동을 잘하는 편이었지만, 그래서 잘하지 못하는 오래 달리기를 기피했다.
체력 테스트 날에는 최선을 다하기보다, 처음부터 뒤처져 달리는 선택을 하곤 했다.
그렇게 하면 달리기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처럼 포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핑계가 쌓이면서, 러닝은 점점 내 삶에서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독서모임에서 성실히 운동하는 동료들의 러닝 인증을 보며, 나는 부러움과 동경을 동시에 느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뛰어보고 싶다.’ 그 소박한 마음이 내 안에서 조용히 자라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무선 이어폰을 중고로 하나 샀다. 운동용으로 귀걸이형 이어폰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였지만, 러닝이나 자전거를 탈 때 좋겠다는 생각을 염두하고 있었다.
주말에 도착한 이어폰을 테스트 삼아 러닝머신에서 조금 뛰어보며, 나는 상상했다.
“만약 벨트 위가 아니라, 정해진 속도가 아닌, 나만의 속도로 맨땅을 달린다면 어떨까?”
월요일 출근길, 내 마음속에는 작은 갈망이 차올랐다.
‘지금 이 마음이 들었을 때, 진짜 한 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 여전히 두려움이 더 컸다.
만약에 러닝을 시작하면 필요한 게 무언인가 떠올려보니, 휴대폰을 넣고 달린 러닝 벨트가 필요했다.
작은 준비물 하나하나가 퍼즐처럼 맞춰지자, 내 안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진짜 오늘 한번 뛰어볼까?'
오후 5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주문하신 물품이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사무실 현관 앞 비닐봉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전 11시에 주문한 러닝 벨트가 퇴근 전에 도착을 하자, 마치 오늘부터 달려보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기회란 철저한 준비 속에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순간이 기회다’라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일을 마무리하고 계획을 세웠다.
퇴근 후 따릉이를 타고 달릴 장소까지 이동한 뒤, 남은 거리를 뛰기로 했다.
심지어 따릉이를 반납하는 순간, 갑자기 비가 내렸다. 유독 비 맞는 걸 싫어하는 나는 그날은 달랐다.
‘오늘은 젖어도 괜찮다.’
마음을 내려놓자 빗물은 시원했고, 오랫동안 두려웠던 감각이 낯설게도 편안했다.
나는 그렇게 40년 묵은 나의 숙제를 넘어섰다.
걷기에서 뛰기로, 두려움에서 자유로.
발걸음 하나하나가 새로운 선택이었다.
오늘의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두려움과 핑계를 넘어선 나 자신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 만남이 속삭였다.
“우리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40년 넘은 장벽을 뛰어넘는 것은 40년 결심이 아니라, 1초면 내딛을 수 있는 작은 걸음 하나다.
그 한 걸음이 당신을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를 막고 있던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첫 발걸음 하나가 충분했다.
그동안 내가 스스로 씌워왔던 한계는 진실이 아니었다.
오늘, 나는 비로소 나만의 속도를 발견했다.
한 걸음이 가져다줄 미래를 기대하며, 나는 다시 달릴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