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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Apr 30. 2021

나의 첫 마음챙김 수업

첫 명상의 기억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다가 직장내 마음챙김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게 된 인연으로 마음챙김 특강이나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행사가 아니더라도 명상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면 사람들이 내게 묻는 공통적인 질문이 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호소에 가깝다. “명상을 하면 자꾸 잡생각이 나요.” 혹은 “명상을 하다가 잠들어버렸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수강했던 첫 마음챙김 수업이 떠올라 자꾸 빙그레 웃게 된다. 


마음챙김 기반의 스트레스 감소(Mindful-Based Stress Reduction: MBSR) 수업을 들을 때였다. 명상센터에서 일하면서 명상이 포함된 강연이나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해왔지만, 나의 역할은 주로 행사를 진행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준비사항은 점검하고 행사중 일어나는 갖가지 돌발상황을 처리하느라 바빠 실제로 센터 내 평상 프로그램에서 내가 명상에 오롯이 집중하는 경험을 온전히 가져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각종 앱이나 유튜브 영상의 가이드 명상에 참여해 본적은 있지만 학생으로서 수업을 듣게 된 자리에서 처음으로 15분 짜리 바디스캔(신체 탐색) 명상을 해보았다. 교수가 안내하는대로 자리를 잡고 매트를 깔고 누우면서 15분 동안 잠이 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센터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도 이 수업을 같이 가르친다. 내가 여기서 잠든다면 분명 코를 골 텐데 사무실 사람들은 한동안 할 얘기가 많겠다고 생각하며 긴장을 늦추면 안되겠다고 다짐했다. 



수강생 모두가 매트를 펴고 눕자 교수가 명상 인도를 시작했다. 음성이 귀에 들어오는 순간, 이번에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청유형인 Let’s도, 명령형인 동사원형도 아닌 -ing로 문장이 시작되었다. “Beginning lying down.”이라니, 이건 또 뭐야,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그렇게 -ing로 시작되고, 두 개의 -ing가 연달아 나오는 문장들이 이어졌다. 

여기 나오는 -ing가 동명사인지 현재 진행형인지 생각하다가, 이런 문법이 있나 기억을 더듬어봤다. 명상에 집중하고 싶은데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혼자하는 명상 앱을 이용한 명상이었다면 앱을 꺼버리거나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을 텐데, 수업 도중에 나갈 수도 없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명상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주목을 받게 될 터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했다. 


겨우겨우 집중모드에 들어갔다. 리듬에 맞춰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쉬고, 잘 따라 하고 있는데 이번엔 엉덩이와 허리가 아파졌다. 목과 허리를 각각 크게 다친 적이 있는 나는 바닥에 일정 시간 이상 가만히 누워있으면 허리에 통증이 온다.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우면 한 2~3분 있다가 척추 마디 어딘가에서 뚝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러면 한동안 숨을 쉬기 어려워진다. 

요가를 배울 때도 휴식을 취하는, 일명 송장 자세라 불리는 사바사나를 할 때 통증이 느껴져서 깊은 휴식에 들어가기 힘들었는데, 이번엔 몸을 풀기도 전에 누웠더니 발뒤꿈치가, 엉덩이가 눌리면서 저려올 지경이었다. 침대에서 잠을 잘 때는 무릎 밑에 베게도 놓고 이리저리 뒤척이기도 하지만, 명상 수업을 들으러 오면서 커다란 베개를 들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강신청 후 받은 사전 설문지에 수업을 들으며 걱정되는 부분이 있냐는 질문이 있었던 게 기억났다. 나는 누우면 발생하는 통증에 대해 언급했고, 교수는 그럴 땐 다리를 쭉 펴고 눕지 말고 살짝 무릎을 세워 누워보라고 했다. 이게 지금 생각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발 뒤꿈치를 엉덩이에 조금 가까이 가져갔다. 통증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허리 통증이 지나가자 이번엔 추위가 찾아왔다. 이 교실이 처음인 데다 에어컨이 나오는 바람구멍이 어깨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자리를 잘못 잡았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꽉 차서 교수의 말을 듣는둥마는둥 하고 있는 와중 15분의 명상이 끝났다. 싱잉볼이 울리는 순간, 얼음땡 놀이에서 누가 땡을 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이 평온해지기는커녕 잠들지 않기 위해 긴장했고, 온몸은 쑤셨고, 추워서 떨었던지라 콧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리고 아까 그 -ing는 뭐지? 잘못 들었다기엔 너무 반복되었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명상을 마친 후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용감한 학생이 -ing에 대해 질문했다. 교수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다. 우리 뇌는 명령형의 문장을 들으면 반발심이 들게 되어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명상 스크립트는 대부분 현재 진행형으로 시작하고, 간혹 청유형을 쓰는데, 그건 너무 똑같은 문장 구조로 시작하면 지겨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뇌는 우리가 명상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왜죠? 하는 질문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교수는 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듣기라도 한 양 이렇게 말했다. 우리 뇌는 예산 통제자 같다고. 뇌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일, 그러니까 심장을 뛰게 한다거나, 체온을 유지한다거나, 혈액을 순환시킨다거나, 소화를 시킨다거나 하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들을 계속 처리해야 하니, 의식해서 하는 일은 최대한 안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 의문은 풀려서 다행이었다. 


이번엔 교수가 우리에게 물었다. 15분 동안 얼마나 집중한 것 같냐는 질문에 선뜻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그냥 학생도 아닌, 명상센터에서 일하는 내가 15분도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교수는 센터에서 같이 일하는 나의 동료, 명상 지도자인 L을 쳐다봤다. L이 말했다. 단언컨대, 본인을 포함해서 이 방 안에 있는 누구도 15분 내내 집중할 수는 없었을 거라고. 틱낫한 그룹에서 7년 동안 명상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에 함께했던 L의 말이기에 신뢰가 갔다. 교수가 말했다. 딴생각이 드는 게 정상이라고.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은 이 수업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과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해가 안 갔다. 


 명상하다가 추워졌는데요, 정상인가요?라고 묻자 명상을 잘한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칭찬을 들었으니 기분은 좋았다. 명상을 잘하면 왜 몸이 추워지는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명상하는 동안 심박수가 평소에 비해 낮아져서 체온이 갑자기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수업에서 하는 명상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니 다음부터는 담요나 덮을 것을 옆에 준비하고 명상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중에 마음챙김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보고는 알았다. 명상하며 드는 잡생각을 부르는 용어들이 있다. 멍키 마인드(monkey mind), 잡생각 폭죽 (mental firework), 그리고 한번 떠오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건 생각 기차(train of thoughts)라고 했다. 우리가 할 일은, 알아채고, 다시 돌아오는 것,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 마음챙김 명상의 과정이라는 것이 명상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설명이다. 실제로 내가 진행하는 명상에서도 나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처음 명상을 길게 시도하는 분들께 종종 언급하고는 한다. 특히나 신체 탐색 (Body scan) 명상의 경우 가이드에서 지칭하는 부위에 특별히 차가움이 느껴진다는 분도 있었다. 내가 느낀 불편함을 개선해보려는 노력, 그 준비가 다음 명상을 조금 더 나은 경험으로 만들어준다. 준비한 담요를 실제로 사용하지 않게 되더라도 ‘추우면 덮을 것이 옆에 있다’는 마음이 명상을 방해하는 요소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그룹명상을 찾는 사람들에게 명상을 해본 경험이 있느냐고 묻는다. 마음챙김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만큼 혼자서 명상을 시도해 본 분들이 많다. 그런데 내가 잘하고 잇는 건지 모르겠고 집중이 잘 안되서 힘들다는 얘기도 들린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명상인데, 왜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는거냐며, '명상의 고수'가 되고 싶다며 그룹을 찾아오는 분들도 있다. 나는 본인의 경험을 먼저 풀어놓기를 권한다. 어떤 경험을 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무엇을 어떻게 해볼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명상에 집중이 안된다는 분들에게 나의 첫 마음챙김 명상의 기억을 나누어주고, 함께 더 좋은 명상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얘기한다.


마음챙김 명상이 내 삶에 들어온지도 어느덧 6년이 되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경험하고 나니 명상을 ‘제대로’ 하는 법을 ‘마스터’하는 것은 불가능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명상을 경험하고, 느끼고, 또 다음 날이 되면 그날의 명상을 경험하는 것, 그렇게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마음챙김의 기본원칙 중 하나인 초심 지키기(beginner's min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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