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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May 18. 2023

남편의 불치병

나의 남편은 20년째 나만 보면 도지는 두 가지 병을 앓고 있다. 그 병의 이름은 바로 ‘같이 병’과 ‘봐봐요 병’이다.


같이 병은 무엇이든 같이하려는 병인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분갈이하려면 흙 좀 사 와야겠네."

“다녀와요. “

“왜 다녀와요야? 같이 가야지!”

화훼단지도 바로 코앞이고 혼자 다녀오는 게 훨씬 가뿐하고 편하지 않냐고 하면 남편은 그게 왜 힘들고 귀찮은 일이냐고 되묻는다.


최근엔 이런 일도 있었다.

“여보, 나 대신 내일 녹색 어머니 해주면 안 될까?"

"당신이 같이 가주면 할게."

그게 내가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따지니 같이 하면 안 심심한 게 다르지라고 답한다.


이런 남편에게 응수하기 위해 나름 만반의 준비도 해보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의 노련함에 혀를 내두르고 만다.

“여보, 아들이 아빠하고 수영하고 싶다고 해서 2대 1 수업을 알아봤는데 어때? 성별도 같으니까 탈의실도 함께 이용하면 될 테고 아들하고 단둘이 더욱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도 될 것 같은데…”

“당신도 같이 가면 할게."

“2대 1 수업이라니까?”

“그럼 당신은 옆에서 자유수영하면 되겠네.”

철옹성 같은 그의 의지에 대적할 말이 없어 전생에 같이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냐고 쏘아대 봤지만 그러는 당신은 전생에 혼자 못해 죽은 귀신이 붙었냐며 허허 웃는다. (누가 웃는 낯에 침을 못 뱉는다 했는가.)


언제 어디서든 펴고 접을 수 있는 일명 봐봐요 의자다.


이러한 ‘같이 병’과 일맥상통하는 ‘봐봐요 병‘은 수시로 나를 불러서 "이거 봐봐!"를 외쳐대서 붙여진 병명인데, 자신의 관심사를 공감받고 싶을 때와 나 잘했지 타임을 포함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환장할 것 같은 봐봐요 타임은 따로 있는데, 바로 자기가 하는 것을 지켜봐 주기를 바랄 때이다. 심지어 그는 내가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 “옆에서 하면 되겠네.”라고 답한다. 나이 들면 남편은 더 아내 껌딱지가 되고 아내는 독립성이 강해진다고 하던데 이대로라면 내가 내명에 못살지 싶다. 노년엔 아무래도 이 집을 밀고 듀플렉스 주택을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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