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하고 나서 내가 아이에게 제일 먼저 했던 말은 "아들! 당장 뛰어! 밤새 뛰어! 이제부턴 걸어 다니면 혼나는 거야!"였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함성을 지르고 쿵쿵쿵 거센 발소리를 내며 1,2층을 수도 없이 오갔다. 그렇게 10분쯤 지나니 어찌나 온 힘을 다해 뛰었던지 "엄마, 잠시 쉬었다 뛰어도 돼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층간소음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은 비단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입주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우리 부부는 여전히 까치발을 딛고 걸어 다녔고 무심코 택배나 장본 물건을 바닥에 쿵 내려놨다가 괜스레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TV 볼륨을 줄이고 말소리를 줄이고 장난감 정리도 살살하라며 단속을 하는 내게 "엄마, 이제 아파트 아니잖아요."라며 아이가 일깨워 준 적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청소기나 세탁기를 돌릴 때,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릴 때도 더 이상 시간을 확인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여덟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음악 관련 일을 하는 남편의 방의 모습은 늘 변했지만 헤드폰을 끼고 일을 해야 하는 것만은 늘 똑같았다. 이사 온 후 드디어 헤드폰으로부터 해방이 되었고 나는 그 점을 남편이 가장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반복적으로 행복을 말하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크으~ 개운해. 바로 이 맛이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워터픽을 하며 그가 내뱉는 탄성이다. 그깟 워터픽이 뭐라고 저러나 싶었지만 한편으론 이런 사소함이 주는 행복을 당연한 듯 놓치고 살았구나 싶었다. 아파트에서도 욕실은 소음에 가장 취약한 공간이다. 그래서 퇴근이 늦는 남편은 그동안 양치질로 해결되지 않는 찝찝함을 치실에만 의존해왔다. 늘 2% 부족했던 개운함을 이제 맘껏 누리게 된 것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주택살이의 맛’이다.
목욕을 하면 기분이 좋아서 저절로 노래가 부르고 싶어 진다는 아이도 이제는 목청껏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뛰지 마." , “조용히 해."는 물론이고 "욕실에서 쉿!"도 나의 단골 잔소리 중에 하나였다.
주택살이를 시작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층간소음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껏 뛸 수 있고 큰소리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동네는 옮길 수 있지만 집은 떼어가야겠다고 말하는 아이는 ‘내가 자유로운 집’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나 역시 이제야 비로소 집에서 주어진 내 시간의 주인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