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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Feb 21. 2021

불만이 존경이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직장은 직급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실력에 따라 다양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자리를 열심히 지켜가기 위해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모든 사람을 고려하는 입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 게 멀리 보면 나에게 도움되는 일이다. 나의 주장이 강해질수록 반대되는 입장은 더 크게 존재한다. 리더라면 더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주장을 내비쳐야 할 때가 있다.


내가 있는 현장에는 특히 경력이 오래되고 일 잘하는 상사가 왔다. 그만큼 뿌리 깊이 박힌 생각도 강하셨다. 어린 여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으셨는데 그건 지난 세월 동안 겪었던 일이 있겠거니 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카리스마가 있으셨다. 화났을 때 그분의 눈에서는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힘이 있었는데 유독 화났을 때 말을 아끼셨다. 그래서 눈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사람일이라는  엄한 상사나  보이고 싶은 이성 앞에서 꼬인다. 핸드폰에 언제 눌러졌는지 상사를 스팸 처리해서 전화를 한참  받는 일도 있었다.  전화를  받냐며 부르셨기에 앞에서 허겁지겁 스팸 등록을 풀었는데 그때까지도  말을  믿는 듯하셨다.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지하철을 탔는데 숨이  막히고 식은땀이 흘렀다. 도저히     같아 지하철역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와중에도 지각이라 마음이 무거웠다. 직장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두고 상사의 방으로 갔다. 매서운 눈으로  지각했냐셨다. 그대로 말씀드렸는데 어이없어하셨다. 내 말을 믿지 않으셨. 아무튼 억울해 혼자 눈물을 훔쳤다. 워낙 카리스마 있는 분이라 그냥 가볍게  말일 수도 있는데 그동안의 서러움이 터져 억울하기도 했다.


다른 곳과 다르게 우리 단에서는 주임이 완벽하게 잡일을 도맡아 했다. 잡일이 주 업무로 주어졌다는 거다. 본사일은 똑같이 주어져도 현장마다 현장의 업무는 달라진다. 본사에 가서 얘기를 했더니 본사 팀장님이 몇 개는 조율 해주셨다. 예를 들어 전화 가 울리면 먼저 받아 전화를 연결해드리는 역할 같은 것들 말이다. 이 것까지는 주임의 업무가 아니라고 선을 그으셨다. 그런데 의외로 상사가 바로 받아들이는 거다. 사실 거기서 조금 놀랐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상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나 보다.


상사는 주임에 대한 정확한 업무지침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 조직문화를 알려주셨는데 그 문화가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상사가 왜 그랬는지가 이해되었다. 그리고 내가 하던 일은 상사의 입장에서 보니 완벽히 이해되는 업무였다. 실제로 영업조직에서의 스텝은 현장의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겸한다. 현장에서 일하느라 지친 지점장님들이 단에 오면 스텝들이 커피를 타주기도 하고 지점장이 어려워하는 행정업무를 대신해주기도 하며 업무에 있어서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가까워진 관계에서 불만들을 듣고 본사에 이야기해 개선하기도 하고 본사의 입장을 설명하기도 하는 역할을 한다. 나의 상사는 다른 단과는 다르게 지점장을 조금 더 배려한 역할을 나에게 맡겼을 뿐이다. 그래서 다른 주임들보다 자잘한 일이 더 많았다. 이 외에도 왜 그런 업무를 맡겼는지를 알려주셨는데 전화를 바꿔주는 업무까지 왜 하는지가 이해되었다. 나는 그 깊이를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결국 전화를 바꿔주는 역할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것을 계기로 상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소한 것 까지 나에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게 참 감사했다. '그게 뭐 큰일이라고 본사에까지 가서 일러?'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 후부터 나를 파악하고 교육 후에는 왜 이런 교육을 했는지, 오늘은 내가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했는지, 이런 방침을 내놓았는지를 설명해주셨는데 상사의 방향을 이해하니 스텝의 일을 하는 것도 수월했고 일도 더 기분 좋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상사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시선을 갖는다는 것. 그건 값진 일이다. 덕분에 일하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냥 직원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안도 상사의 눈으로 보니 또 새로운 게 보였다. 특히 상사는 성과면에서도 대부분 1등을 놓치지 않았기에 늘 당당하게 본사에 가기도 했다. 계약직으로서의 서러움도 배웠지만 모든 배움에는 양면이 존재하고 그것만큼 값진 무언가를 배웠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모두 좋은 시간이었다.


나의 상사는 내가 4년 차 정도 되었을 때 "네가 나중에 나처럼 되었을 때"라는 말을 한 번씩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상사만큼 단단하지 못했는지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다. 상사처럼 되고 싶었기에 나름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대신 상사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만큼 멋진 사람이  되어 누군가에게 상사처럼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싶다.


그건 그래서 그런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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