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트라우마
나금 : 하... 지난날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어. 나의 과거와 그로 인한 상처를 들여다보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글을 쓰면서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
이나 : 나도 이 글 쓰면서 많이 울었어. 시간이 좀 지났으니까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왈칵하고 눈물이 쏟아지는 거야. 한 사흘 그랬던 거 같아.
우경 : 내가 처음 쓴 글을 엄마가 보셨거든. ‘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만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아서 힘들었다는 것을 굳이 써야 했니?’라고 하셨었지. 그런데 얼마 전에는 전체 원고를 보시더니 잘 썼다고 하시더라.
나금 : 그랬구나. 사실 한 사람의 과거, 인생이라는 게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잖아. 부모님의 일이 너의 일이기도 하지.
우경 : 맞아. 그리고 누군가가 과거의 상처를 털어놓으면 위로하는 게 당연한데, 되려 약점이 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구실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 좋은 이야기를 해도 축하받기보다는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인 듯 해.
이나 : 우경의 어머니가 처음에 글을 쓰는 거 싫다고 하셨다고 했잖아. 만약 우리 엄마도 내가 이 글 쓴다고 했다면 뜯어말리셨을 거야. 다행히 모르시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둡고 아픈 과거는 덮어두려고 해. 사실 그럴수록 속으로 곪는 건데.
우경 : 힘들었던 시기를 인정하니까 오히려 더 편해졌어. 자유로워진 것 같아. 드러내지 않으면 곪아. ‘나 이렇게 힘들었고 그래서 이런 부분이 약점이야’하고 이야기하면서 치유가 되는 게 아닐까.
이나 : 나는 가끔 화를 못 참을 때가 있는데 옛날에는 내가 왜 이러지? 정말 구제 불능인가? 생각했었거든. 근데 나의 과거가 내 일부고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까 불완전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더라.
우경 : 그래서 지금은 화 안 내?
이나 : 물론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진 않아. 대신 화가 날 것 같으면 심호흡도 하고,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초콜릿도 먹으면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 해.
나금 : 나의 트라우마는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였어. 다 내 의지로 선택한 거였지. 그래서 더 인정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 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너무 많았지만 딱 하나로 정리할 수 있게 되자 스스로 당당해진 것 같아. 가장 큰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하더라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런데 여러 가지 핑계를 찾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난 아이를 전남편에게 보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말이야. 나의 지난날을 명확히 보니까 오히려 지금 내가 뭘 해야 행복해지는지 보이는 것 같아.
이나 : 우리 부부는 가끔 애들한테 넘어져서 다쳤던 일을 상기시켜주곤 해. 아이들에게는 분명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가볍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면 애들도 같이 웃고 지나가더라고. 별거 아니라는 듯이 상처를 봐도 웃으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처를 입었던 기억이 예전보다 더 커지더라고. 하물며 몸에 난 작은 상처도 이런 치료의 과정이 필요한데 마음은 오죽하겠어.
나금 : 결론은 우린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거구나.
이나 : 응. 감추지 말고 꺼내서.
우경 : 그거 알아? 우울증 환자는 상담치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치유가 된대. 나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
나금 : 과거를 들여다보면서 객관화하는 경험. 지금의 나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과정이 중요한 듯 해. 지난날은 지금의 나를 만들기도 했지만 현재가 아닌 건 분명해. 과거를 현재로 끌어와 힘들어하는 건 결국 나잖아.
이나 : 이 책을 쓰는 게 바로 그 과정이었던 것 같아.
우경 : 우리 이제 지난날의 상처는 벗어던지고 더 자유로워지는 거야!
이나 : 상처만 벗어던져. 딴 거 벗지 말고.
(5월 출간 예정인 '프랑스식 결혼생활'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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