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을 경계로 일본의 모바일 게임 「디시디아 파이널 판타지 오페라 옴니아」(이하 「FFOO」)가 서비스를 종료했다. 돌이켜보니 어느덧 1년하고도 절반 정도가 지나가고 있다. 이 게임은 2017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으니, 종료까지 약 7년의 서비스를 유지한 셈이다. 끝내기 직전의 라이브 방송 (게임의 새로운 정보를 소개하기 위한 방송)이 적당히 기억이 난다. 여느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 그렇듯, 앞으로의 업데이트가 충분히 남아있음을 어필하는 방송이었다. 그리고 약 1달여 뒤에, 게임이 곧 서비스를 종료할 것이라는 방송이 이어졌다. 많은 라이브 서비스 플레이어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이런 낙뢰같은 서비스 종료의 정보는 대비가 불가능한 충격을 준다.
이렇게 길게 이야기 하는 것으로 다들 눈치 챘겠지만, 나는 이 게임의 플레이어였다. 게임이 오픈할 때 뛰어들어서 7여년을 거의 매일같이 플레이했다. 중간에 잠깐 게임을 플레이할 에너지가 모자라서 3~4개월 정도 쉰 적은 있긴 하지만. 이 게임의 운영 방침은 ‘과도한 과금 없이도 플레이할 수 있도록’ 이었는데, 그래서 상당히 많은 양의 사료(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되도록 제공하는 무료의 재화), 유/무료 간 큰 차등 없는 가챠와 성장 구조 등을 갖추고 있었다. 7여년을 하는 동안 이 게임에 사용한 돈은 끽해야 20만원 안쪽일 정도로 큰 투자는 없었고, 그게 아마 서비스 종료까지 게임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일 수도 있다.
이 게임은 제목 그대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스핀오프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디시디아 파이널 판타지」시리즈에 포함되는 작품인데, 해당 시리즈는 수 편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캐릭터들을 한 곳에 집결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게임 역시 정규 시리즈, 외전 시리즈 가리지 않고 수많은 캐릭터들을 끌고 온다. 게임의 배경은 ‘전사들의 안식처’라고 불리우는 곳으로 게임 상에선 명시하지 않지만 원작의 캐릭터들이 ‘죽음’을 경험한 뒤 넘어오는 일종의 저승, 북구 신화의 ‘발할라’와도 같은 개념의 장소다. 내용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응당 그렇듯 세계의 균형이 붕괴됨으로서 시작되며, 그 붕괴를 되돌릴 수 있는 매개로 ‘크리스탈’이 제시된다.
이 때 게임의 배경이 일종의 사후세계, 즉 캐넌으로서의 서사가 끝난 이후의 세계라는 설정은 상당히 유효하게 작동한다. 이를테면 스토리가 중반에 도달하면 캐릭터들은 자신들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따라서 ‘기억의 파편’이라는 것을 모으게 되는데 이를 통해 이들이 실제로는 ‘원작 종료 이후의 존재’라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원작에서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던 갈등 따위를 끌고 들어와 후속적 조치로 연장하거나 또는 상당히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해결한다. 심지어는 원작에서는 존재만 있었을 뿐, 실제로는 플레이어 캐릭터로 사용할 수 없었던 캐릭터들까지 추가하여 이러한 서사적 드라이브를 증폭시키기도 했다. 이를테면 「파이널 판타지 V」의 전 세대 영웅들인 ‘새벽의 4전사’와 「파이널 판타지 X」의 주인공 유우나의 아버지 브라스카도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등장한다. 물론 그와 동시에 원작에서는 불가능했던 재회, 감정적 소회, 새로운 갈등과 그 봉합 등이 점진적으로 전개된다. 말할 것도 없이 이건 ‘궁극의 팬 서비스’ 게임이다.
그러니까 이건 서비스-서비스, 즉 팬 서비스와 라이브 서비스라는 이중적 서비스의 구조를 담지하는 게임이다. 여타 라이브 서비스의 모바일 게임이 그렇듯, 사실 평소에는 그다지 ‘할 게 없는’ 구조의 게임이었다. 소위 말하는 숙제(데일리 퀘스트로 부여되는 특정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마저도 약 3년차 즈음에는 스테이지 하나를 클리어 하는 것으로 축소되어 버렸을 정도다. 보통은 게임에 로그인한 뒤, 스테이지 하나를 클리어하고 게임을 종료하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게임은 (다른 게임들이 그렇듯) 어느 정도의 간격으로 ‘이벤트’를 규격화하여 제공한다. 여기에는 신 캐릭터의 추가, 고난이도의 보스, 멀티 플레이 콘텐츠 등이 추가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극의 팬 서비스’ 게임에 걸맞게 적절한 시기에 새 시나리오가 추가되는 식이다. 뭔가 거창한듯 설명했지만 이 또한 하나의 규격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첨가된 시나리오 또는 이벤트라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꽤나 관심을 끌긴 하지만 그 조차도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반복성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FFOO」가 그렇게 특별한 게임은 아니었다. 팬 서비스라는 지점을 제외하면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보편을 충실히 따랐던 편이다. 나는 이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한 지금에도 약 3개 정도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같은 방식으로, 그러니까 별 일이 없다면 ‘숙제’만 조급히 끝내는 방식으로 유지하고 있다. 「FFOO」가 사라졌다고 한들 그렇게 큰 빈자리가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나는 확실히 「FFOO」의 서비스 종료 소식에는 상당히 동요했다. 물론 나 뿐만이 아니었다. 각 플레이어가 자신의 상태를 적을 수 있는 프로필란 역시 게임에 대한 일종의 헌사나 애도가 가득했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면, 이 게임이 다른 게임에 비해서 ‘특별한’ 건 아니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그 ‘특별하지 않음’이 상당히 일상화된 감각을 부여하고 있었다. 단순히 오래 한 게임의 엔딩을 보고 그 여운에 잠기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인 셈이다. (다른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을 포함해)「FFOO」는 일상에 있어 ‘이벤트’를 부여하는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일상과 조응하는 방식의 감각을 줬던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 한다는 것은 어떠한 감각인가. 보편적으로 ‘스탠드 얼론 게임’은 하나의 이벤트처럼 작동한다. 그것은 내가, 자의적으로, ‘게임’이라는 초대의 감각에 응하는 것이다. 구태여 말하자면 「오즈의 마법사」의 감각이다. 이 비일상적 이벤트의 세계에 ‘잠시 갔다가’ 충분한 정도의 사건과 마주한 뒤 ‘돌아오는 것’. 그리고 이 끝에는 단기의-자극적인 일탈에 호응하는 여운의 감각이 남는다. 그와 반대로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는 이벤트의 감각 따위는 없다. 이는 반대로 내가, 자의적으로, ‘게임’을 나의 삶에 초대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떠안은 반려견(반려 게임?)의 매일 예정된 산책과도 같다. 여기에는 그 어떤 비일상도 없다. 오히려 나의 일상에 부가적인 패턴이 하나 추가되는 것이다. 이것이 ‘귀찮지 않을 정도’라면 더 좋다. 스탠드 얼론 게임은 여러면에서 삶의 패턴을 흐리고 어긋나게 만드는 감각이다. 따라서 그 재미와 몰입 만큼 삶에 ‘귀찮음’을 유발한다. (나는 매번 새 「슈퍼로봇대전」이 나오면, 도전과제를 모두 얻겠다고 수면의 양을 줄였다가 감기에 걸리곤 한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는 이러한 흐트러짐이 불요하다. 뭐 하루에 짬짬히 신경은 써줘야겠지만 결코 삶을 흐리거나 뭉텅이로 잘라버리는 청천벽력같은 마주침은 주지 않는다.
따라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예스퍼 율의 ‘하프 리얼’을 다른 방식으로 경유한다. 율에게 있어 비디오 게임이 ‘절반의 현실’인 것은 디지털 가상성과 현실의 규칙이 들러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반려-적 감각은 디지털의 상시성과 생활의 일상성이 들러붙어 ‘하프 리얼’을 이룬다. 지금이야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감각은 다른 방식을 경유한다. 예를 들어, 예전에 처음 가보는 지하철 역에서 내리자마자 휴대폰의 배터리가 모두 소진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지도앱의 감각이 사라지자 나 자신의 위치 감각 역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지도앱은 그 어떠한 현실의 감각도 아니다. 이 버드 아이 뷰와 화살표 아이콘의 감각은 리얼 바깥에 있음에도 생활이라는 리얼과 상시적으로 붙어있다. 물론 라이브 서비스 게임과 지도앱의 차이는 그것이 가진 실용성이라는 측면일 것이다. 지도앱에 대한 초대는 (어느 정도는) 효율의 증대에 그 목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에 대한 초대에는 효율의 증대는 커녕 오히려 저하의 가능성만이 도사린다. 그러니까 나는, 구태여, 7년이라는 시간을 ‘효율의 저하’를 위해 「FFOO」를 초대해 한가한 시간을 늘려나갔던 것이다.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의 등장 인물들이 느꼈던 감각이 바로 이런 것일까?
여기서 도나 해러웨이를 언급하는 것은 좀 장난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반려종’이 아닌 반려 게임과 나의 ‘공진화’라는 걸 우스꽝스럽게 상상해볼 수도 있다. 이런 이렇게 엮는다면 놀라웁게도 ‘사이보그 선언’과 ‘반려종 선언’이 하나로 뒤섞여버리기까지 하지 않는가! 하지만 정말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에 불과하다. 여기엔 ‘진화evolution’의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있을지는 몰라도 ‘공진화co-evolution’의 가능성은 결코 없다. 나의 반려-게임인 「FFOO」는 ‘고도로 축적되어 이미지가 된 자본’으로서의 스펙터클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를 진화시킬 수 없기에 우리의 사이엔 ‘co-’는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FFOO」의 서비스 종료에선 강렬한 박탈의 감정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삶에 초대한다는 하프-리얼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하는 (자본이 소유한) 스펙터클과의 일상이며, 무한한 짝사랑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2023년 9월(한국은 2024년 7월), 캡콤은 자사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었던 「록맨 X 다이브」의 서비스를 종료했으나 거의 즉시 동일한 내용을 플레이할 수 있는 「록맨 X 다이브 오프라인」을 발매한다. 구매만 하면 라이브 서비스 중의 모든 콘텐츠를 전부 즐길 수 있는 완벽한 ‘스탠드 얼론’으로의 이식 버전이다. 나는 발매 직후 구매해서 한창을 플레이 했지만 지금은 거의 손도 대고 있지 않다. 일상의 조각으로 기획된 이 게임은 ‘스탠드 얼론’이라는 이벤트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상의 편린으로 기획된 이 게임이 일상의 바깥으로 퉁겨져 나갔을때, 그와 함께할 수 있는 ‘하프-리얼’도 무심히 변색되어 버리고 말았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이러한 생활적 감각은 그것이 나와 크로노스의 시간을 공유할 때에 비로소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