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살면 집안일은 어떻게 해? -1

<뇽>취향껏 했다. 그리고 우린 취향이 겹치지 않는다.

by 뇽알

나는 그 어떤 집안일보다 확실히 ‘설거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 누가 설거지를 좋아하겠냐만 - 누군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식기세척기가 나올 리가 없지 - 설거지보다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더 재밌게 느끼는 편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설거짓거리 생산자’가 더 적성에 맞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내가 이렇게 되기까진 알의 이해와 양보가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음식을 한답시고 난장판을 만들 때마다 알은 옆에서 묵묵하게… 는 아니지만 조금은 티를 내면서 그때그때 발생한 설거짓거리를 치워주곤 한다.

“착하지?”

“어?”

“내가 어? 다 치워주는데, 어? 착해, 안 착해?”

“어유 착하지. 너 없으면 내가 어떻게 음식을 하겠어.”

“그래, 알면 됐어.”

알은 이런 작은 일에도 티 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작은 일에 맞장구쳐주는 것으로 보답을 대신하고 있다. 말 한마디를 거드는 게 낫지 설거지를 하는 것이 낫진 않으니까. 집안일 취향이 잘 맞는 친구라면 다른 무엇보다 그 친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편이 훨씬 이득일 때가 있다.

“착하다고 해.”

“아이고, 황공하옵니다.”

“오냐.”

그냥 대충 봐도 이쪽이 훨씬 살기 편하지 않은가.




'자기 자신에게 차리는 식사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혼자 먹어야 하는 일이 있을 땐 식사 후에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설거지가 하기 싫어 음식을 거르거나, 과일로 끼니를 때우거나, 시켜먹는 일이 많다. 그것이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 자기 자신을 아껴줘야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한다 - 그저 설거지 생각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져 끼니를 대충 하기 일쑤인데, 알이 있을 땐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을 두고 보지 않는 데다 본인 역시 배가 고프므로 '설거짓거리' 생산을 부추기며 응원을 한다. 여기서 또 다행인 점은 나는 요리를 하는 것을 꽤 즐거워하는 편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 엄마가 부엌에서 이것저것 만들어내는 게 신기해 옆에서 구경을 한적도 있고 조금 나이를 먹은 뒤엔 엄마가 오래전에 사놓고 쳐다도 보지 않은 요리책을 혼자 탐구하며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요리는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만들기 놀이'의 일환이라 별로 어렵거나 두려울 것이 없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아직도 칼질은 좀 형편없어 민망할 정도. 하지만 나에 반해 알의 경우 세상에서 칼질이 제일 싫다며, 지겨워 죽겠다고 하는 편인 데다 힘이 좋아 잘 다치기까지 하니 내가 하는 것이 내 마음에도 훨씬 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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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처음만들어본 알의 생일상 / (오) 피클부터 손수만든 카레정식


하지만 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된장찌개를 하나 끓이는 일에도 얼마나 많은 설거짓거리가 생산되는지 말이다. 된장을 체에 걸러서 물에 푸는 경우 채반, 숟가락이 발생하고, 야채와 두부를 써는 과정에서 도마와 칼을 씻을 일이 생긴다. 와중에 각종 야채의 끄트머리, 파뿌리 등이 쌓여 치워야 할 것 까지 산더미가 되는데 그 난리통을 지나고 나면 고작 된장찌개 '한 그릇'이 나오는다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움직임인지 굳이 말로 더 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알은 그렇게 쌓여만가는 설거지를 군소리 없이 척척 해결해놓곤 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이렇게 반쯤 누운 자세로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알은 점심 식사로 누적된 설거짓거리를 치워내고 있다.

“왜?”

“설거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냐. 흠.”

이쪽 분야에선 난 그저 말 한마디를 보태는 게 전부다.


빨래는 또 어떠한가. 놀랍게도 난 아직도 세탁기 다루는 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양말은 어떻게 빨고 속옷은 어떻게 빨고 하는 지시사항을 알과 엄마로부터 전해 듣고, 광고로 보고, 인터넷으로도 찾아봤지만 결국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속옷과 양말을 함께 빨면 안 됨' 정도라 하겠다. 그 누구보다 흰색 옷을 좋아하면서도 그 옷들이 더러워지면 자연스럽게 세탁물 바구니에 넣거나 부분 빨래가 필요하면 따로 구분해 놓는 것이 전부.

언젠가 한 번은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라는 생각에 알에게 세탁기 작동방법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나 이거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줘.”

“그냥 누르면 돼.”

“… 버튼이 너무 많은데.”

그렇다. 요즘 나오는 세탁기 대부분이 그렇듯 세탁물마다, 세탁물의 컨디션마다 섬세하게 조절해야 하는 버튼이 세탁기 조종간(?)에 가득한 것이 문제였다.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우주선 조종 콘솔처럼, 최소 콘서트에서 섬세하게 음향을 조절하는 공연 콘솔처럼 대충 봐도 한 10개는 되어 보이는 버튼과 수많은 선택지. 불림은 뭔지 온도는 뭔지 그냥 내가 블라우스를 넣었으니까 니가 알아서 해주면 안 되는 건지. 그리고 왜 그냥 넣어도 목이나 손목의 때는 빠지질 않는 건지. 최근 S전자에서 '알아서 해줘'하면 되는 AI형 세탁기가 나온 모양인데 -TV광고로 보았다- 그것을 사용해보지도 않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것 역시 셔츠의 손목과 목부분은 별도의 손세탁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섬세한 작업의 귀찮음과 어려움의 경계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알은 내 손에 들린 셔츠를 한 번에 '휙'소리와 함께 채가며 '청소기 돌려줘' 같은 다른 미션을 내리곤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빨래 역시 알의 담당이 되어 있다.


알이 내린 지령대로 그가 빨래를 하는 동안 나는 이부자리를 정리하거나 진공청소기를 돌리는데 이 부분은 또 취향이 맞는 편이라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여자 둘이 사는 집은 꽤 많은 양이 털갈이(?)를 동반하기 때문에 청소기를 거의 매일 돌려야 하는데, 둘 다 회사를 다니느라 기력이 없는 평일에는 소파 침대를 접지도 못하고 - 살림을 마련하던 당시의 우려와 같이 - 그 주변의 머리카락 및 먼지를 치우는 게 전부다. 주로 아무런 약속이 없는 일요일 오전 함께 소파 침대도 접고, 밀린 청소나 빨래를 하는데 여기서 또 알의 활약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진공청소기를 내가 돌리더라도 이후 물걸레 청소는 또 알이 한다는 점이다.

친구와 같이 사는 이야기들을 정리하며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가 역시 '알은 나보다 힘이 세다'인데 이 부분은 팔, 손, 다리 등 신체 근육 전반에 걸친 이야기여서 지금 이 시점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겠다. 알은 악력도 아주 센 편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가 지금 왜 필요하냐면... 내가 물걸레를 빨고 그 물기를 짜는 데 있어서 형편없을 정도라 '물걸레 청소' 단락에 역시 알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기를 꽂아 돌리는 물걸레 청소기라고 해도 '걸레 쥐어짜기'라는 미션을 간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190427_105537(1).jpg 알이 꽤나 좋아하는 브랙퍼스트 정식


이처럼 집안일은 알의 전담으로 이뤄지는 부분이 많은데 간혹 내가 야근을 하거나 회식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내가 문을 여는 소리와 동시에 문 앞으로 튀어나온 알이 무엇인가를 눈치채 주길 바라는 듯 눈을 반짝이며 나를 맞이하고 서있다. 그럴 땐 재빠르게 집안을 스캔하고 적합한 멘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 청소했네! 물걸레까지 했어??”

“고맙지?”

“아이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며 90도 인사를 하면 나는 말 한마디로 꿀을 빨게 되고, 알은 자신의 행동에 자부심을 느끼며 한껏 업된 기분으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어떻게 청소했는지 설명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집안일 중 무엇을 맡았는가. 음식, 진공청소기 돌리기, 그리고… 자잘한 소품 정리와 식탁 정리 정도? 사실상 내가 하는 집안일의 비중은 매우 적은 편이라 이 챕터에서만큼은 많은 비중을 알에게 주고 싶다. 실은 위에 언급한 집안일마저도 귀찮다고 안 하기 일쑤이기 때문에. 물론 알 역시 부처가 아니어서 설거지도, 다른 집안 일도 안 하고 누워만 있으면 알은 작게 한숨을 쉬며 불만을 표출할 때가 있는데 그렇다고 잔소리를 한적은 없다. 다만, 어두운 회색 기운의 아우라를 두르고 있는 모습을 무시하기엔 나 역시 그 정도로 뻔뻔하진 않아서 한두 마디 보태곤 한다.

“설거지 안 해서 미안. 그거 그냥 두면 내가 내일 할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겠나… 최근에야 그것이 나에게 눈치를 준 것이 아니라 그냥 혼자 화가 나서 그랬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가 돕지 않아서 기분이 다운된 것만큼은 사실 아닌가.


“엄마랑 살 때 내가 누워있으면 엄마가 아프다면서도 일어나서 집안일하고 그랬거든. 그럴 때마다 ‘그냥 둬 내가 할게’ 하고 말하는데도 엄마가 계속 한숨을 쉬면서 하고, 난 ‘하기 싫으면 하지 말지 왜 하면서 짜증을 내.’라고 했었거든. 딱 그때 생각이 나네.”


그때 알의 어머님은 “내가 누워있으면 집안일이 안 돌아가잖아.”라고 말씀하셨고, 알은 지금에야 어머니의 깊은 뜻을 이해하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 때문이지만 나 때문은 아니라고…? 이런 깨달음을 얻었으면 나도 뭔가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고 알은 세탁기를 돌리고 있다.

우리의 평화로운 생활동반자 관계는 알의 너그러운 마음에서 비롯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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