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참 희한하게도 집안일 취향 조차 겹치지 않는다.
나는 혼자 내버려 두면 간장계란밥만 삼시 세끼를 먹어도 그만인, 먹는 건 좋아도 요리는 질색인 인간이다. 요리를 할 바에야 설거지가 낫고, 남이 해 준 요리가 맛없었던 기억은 인생 통틀어 손에 꼽힐 정도로 거의 없다. 참 다행히도 내 주변엔 요리해서 남을 먹이는 게 보람인 사람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엄마, 그리고 뇽.
뇽은 유튜브가 존재하기 전부터 요리를 곧잘 했다. 그 말인즉, ‘적당히 넣고 적당히 끓이라’ 하는 요리책의 추상적인 가르침을 찰떡 같이 알아들을 정도의 센스가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 냉장고란 아직 썩지 않은 것과 아무도 모르게 썩은 식재료의 집합체라면 뇽에게는 창작의 샘이었다. 나는 주로 “뭐가 먹고 싶어.”라고 말한다면 뇽은 거의 항상 “뭐가 만들어 보고 싶어. 너네 집에서 해도 돼?”라고 묻곤 했다. 그리고 내가 고작 식탁을 행주로 훔치고 숟가락을 놓는 사이 오늘의 요리 완성! 나는 단맛을 더 좋아하고 뇽은 짠맛을 더 좋아하지만, 둘 사이에는 ‘매운 건 질색’이라는 교집합이 있기에 뇽의 요리는 항상 맛있다. 자다가도 밥이 나오는 인생이라니 얼마나 살맛이 나는가.
하지만 식전에 활활 타올랐던 뇽의 열정은 늘 식사와 함께 사라져버리고 만다. 열정 도둑의 정체는 바로 싱크대! 각종 양념, 기름으로 더럽혀진 식기와 채소의 잔해가 넘쳐나는 그곳을 바라보는 뇽의 슬픈 눈을 못 본 척한다면, 다음 식사를 보장받을 수 없을 거라는 본능적인 위기감이 나를 덮친다. 이럴 때 주저 없이 일어나 싱크대를 선점한다면, 냄비와 뒤집개와 식칼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둔다면 나의 식탁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뇽은 늘 내가 설거지를 할 때마다 미안해하지만, 일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볶음밥을 만들겠다고 설치다가 당근을 썰 차례에서 화병이 나서 뇽에게 도마를 넘긴 나로서는 지금의 분담이 최적이다. 게다가 요리는 하고 나면 쓰레기와 설거짓거리가 쌓이지만, 설거지의 결말은 깨끗한 싱크대 득템이라 훨씬 기분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
냉장고 청소는 상한 음식 분류와 줄 세우기를 잘하는, 후각과 눈썰미 좋은 뇽의 몫이다. 요리를 거의 안 하는 데다 요거트 본래의 새콤한 냄새와 상한 냄새를 구분 못 하는 무능한 코를 가진 나는 매번 청소를 해야 하나, 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도 뇽을 불러서 이게 상한 거냐 아니냐를 물어봐서 결국 뇽이 하게 된다. 뇽의 사형 선고를 받은 음식물 처리와 그릇은 자연스럽게 싱크대로 모여 내 일거리를 이룬다. 어쩌다 식사 후 냉장고 청소를 연달아서 하는 날에는 ‘아아, 인생은 먹고 치우고의 연속이구나.’ 혹은 ‘인간이란 끊임없는 오염을 양산하는 존재다. 이런 지구의 암 덩어리. 차라리 공룡이 살아남았어야 했어.’ 따위의 생각을 하며 설거지가 압박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적성과 결과물을 놓고 봤을 때 부엌 업무 분장은 그대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뇽이 청소한 다음 날, 식사를 마친 내가 잔반을 들여놓았을 뿐인데 냉장고에 다시 찾아온 아노미 상태를 보고 있노라면 역시 냉장고 청소는 내 길이 아닌 것이다.
부엌 외 나머지 영역도 이런 식으로 서로의 편의와 적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담하게 되었다. 청소 부문을 짚고 가자면 나에게 중요한 것은 화장실을 포함한 실내 전체의 바닥 청소, 쓰레기통 비우기, 거울 닦기 등 한눈에 보이는 넓은 영역이 중요하다면 뇽에게는 수도꼭지 물 자국 제거, 선반 먼지 제거, 물건 각 잡기, 수납과 같은 디테일이 중요하다. 매일 먼지 한 톨 없게 쓸고 닦는 깔끔한 어머님 슬하에서 자라 약간의 결벽이 있는 뇽은 바닥과 선반을 가리지 않고 더러운 꼴을 못 견뎌 하고 기준도 깐깐한 편이지만, 성질머리에 비해 체력이 현저히 떨어져 청소 분담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독립 초반에는 서로 상대방이 먼저 해놓은 일을 보고 아차, 싶어서 ‘다음에는 내가 그걸 해야겠다.’라며 신경 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점점 내려놓고 자기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다 챙기기에는 체력이 부족할뿐더러, 영역을 일부러 정해놓지 않아도 상호 보완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은 것. 그리고 이제는 같이 산 지 꽤 되었는데도 서로의 결과물을 보며 새삼스럽게 감탄할 때가 있다. 각자 할 일을 한 뒤에 “나 혼자 살았으면 바닥만 깨끗하고 물건은 아무렇게나 쌓았을 거야” 혹은 “나 혼자 살았으면 설거지하기 싫어서 집에서 밥을 안 먹었을걸”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함께 산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는 것도 장점.
빨래는 내가 세탁기에 돌렸다가 널고, 뽀송뽀송하게 마르면 뇽이 각을 잡아 개어놓는다. 뇽은 하얀 옷깃이 달린 블라우스, 구김이 잘 가는 면 소재의 밝은색 셔츠를 좋아하고, 나는 구김이 덜 생기고 때가 안 타는 어두운 색상의 레이온 소재 옷을 좋아한다. 취향만 봐선 뇽의 빨래가 더 많이 생길 것 같지만, 정작 뇽은 커피 얼룩을 묻힌 하얀 셔츠를 며칠째 내놓지 않고 나는 새끼손톱만 한 기름 얼룩이라도 눈에 띄면 바로 벗어버리는 편이다. 빨래통의 내용물 2/3가 내 것이라니, 지구야 다시 한번 미안하다! 그럼 제 것만 빨아버리면 되는 것을, 내게는 얼룩진 뇽의 옷을 간과하지 못하는 병이 있어서 본인이 괜찮다는데 부득부득 옷을 빼앗아버린다. 그리고는 지난한 애벌빨래와 다림질의 시간을 거쳐 생색 가득한 얼굴로 뇽 앞에 서면, 공손한 배꼽 인사와 과찬이 풀코스로 돌아온다. 그게 그렇게나 듣기 좋은 나의 생색 병은 이만저만한 중증이 아닌 것이다.
가끔 뇽의 본가에 같이 놀러 가면 깔끔하신 뇽의 어머님이 뇽의 새하얀 옷깃을 보고 “생각보다 빨래 잘해서 입고 다니네, 그거 따로 빨아야 해서 어려운데”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뇽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 어려운 빨래를 누가 했는지 굳이 말하게 유도하는 나. 써놓고 보니 정말 구질구질하지만 생색 병에는 약이 없다. 이러다 지치면 일 안 하고 생색도 안 내겠지.
기타 부문으로, 조립의 영역은 뇽의 몫이다. 크게는 가구 조립부터 작게는 청소기 흡입구 재조립이나 수저 소독기 내부 틈새에 껴서 안 빠지는 포크 뽑기 등 - 내가 석 달 가까이 방치한 걸 하루 만에 뽑아낸 기적의 금손 - 구조를 파악하거나 시간을 들여 살펴봐야 하는 일을 불평 없이 잘 해낸다. 하지만 머리로 해결할 수 없는 잼 뚜껑이나 와인 뚜껑 돌려 따기, 박스 옮기기는 반드시 나의 손을 빌려야 한다. 집안일을 어떻게 하고 있냐는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은 암묵적인 상호 불가침 조약 아래 장기간 평화롭게, 각자 잔소리 없이 잘하고 있다고 답하겠다. 남의 집 살림에 참견할 정도의 지식은 없어도 내 집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진짜로.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