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최애 맛이 달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같이 먹고 있더라.
뇽과 나의 음식 취향으로 말할 것 같으면, 5대 미각으로 분류했을 때 최애 맛은 다르지만 극혐하는 맛은 정확히 일치한다. 매운맛! 정확히는 ‘기타 미각을 압도하는 매운맛’ 혹은 ‘맵기만 한 맛(캡사이신 맛)’을 너무나 싫어한다. 청양고추나 마라 소스, 불닭볶음면 같은 것은 우리 집 부엌에 평생 진입 금지이며, 외식을 하러 나가거나 배달 앱을 켜면 메뉴판에서 고추 그림이 몇 개가 떠 있는지 면밀히 살펴본다. 특히 뇽은 매운맛을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알러지가 있는 수준이어서, 둘이 함께 찜닭을 먹으면 순한맛을 주문 하면서 굳이 ‘안 맵게 해주세요’라는 멘트를 추가하곤 한다 - 매울까 봐 걱정되면 다른 걸 먹으면 되는데 의지의 돼지들 같으니 -
나는 ‘뇽에 비한다면’ 매운맛을 그나마 먹는 편이지만 한국인 평균에 비하면 미달이어서, 매운 것만 파는 음식점에 회식을 이유로 끌려가지 않고서야 내 손으로 매운 음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매운맛 애호가들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하는, 땀 나고 콧물 나며 위장이 활활 타오르는 후유증이 정말 싫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이 형벌이 되어서야 쓰겠느냐, 이 말이죠 - 이렇게 구구절절 매운맛이 싫다고 썼지만, 맵덕들의 취향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다. 어차피 내 취향도 메이저는 아니니까요 -
그렇다면 우리의 스트레스 해소는 무슨 맛으로 실현할 수 있는가? 나는 단맛, 뇽의 경우에는 짠맛(그리고 기름진 맛)이다. 단짠이라니, 이 얼마나 매혹적인 단어인가. 보통 단맛 혹은 짠맛만 주구장창 먹으면 어느 때고 질리는 순간이 오지만, 단짠에는 출구가 없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각자의 최애 맛에 집중했다면, 살림을 합친 이후부터는 ‘한 입만’으로 시작한 영역 침범이 메뉴 대통합으로 진전되어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체중 기록의 새 장을 열게 된 것이다 - 엄마가 이 사실을 아신다면 당장 방 빼고 본가로 돌아오라고 하시겠지 -
구체적인 메뉴로 예시를 들어보면, 내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찾는 음식은 떡볶이, 케이크, 빵, 과자, 기타 ‘허니’라는 접두사가 붙은 꿀 베이스의 음식과 달콤한 과일 등이다. 떡볶이는 매운 음식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모르시는 말씀! 단맛> 짠맛> 매운맛의 비율로 만든 떡볶이가 '내 입에는' 가장 맛있단 말입니다. 두끼 떡볶이로 치면 궁중소스> 짜장소스> 두끼오리지날의 비율인 것이다. 매운 맛과 달콤한 맛을 친절하게 구분해서 파는 떡볶이집에서는 당연히 달콤한 맛을 선택하고, 여름에 즐겨 찾는 비빔면도 단맛> 매운맛 비율의 소스여서 좋아한다. 가족력에 당뇨병이 있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피해야 할 맛이지만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오듯, 짜증 나면 내 손에 자연스럽게 단 게 들려있다. 매년 새해 첫날에 줄이자고 다짐하고 해당 주말에 결심을 파기하는 이놈의 인생. 의지박약한 나의 뒤에는 언제나 누텔라보다 달콤하게 부추기는 악마 같은 동거인, 뇽이 있다.
“먹으면 안 되겠지?”라고 물었을 때 정 신경 쓰이면 하나만 먹으라며 관대하게 허락하는 그녀. 내가 하나만 먹고 멈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게 만든다. 심지어 잠들기 일보 직전에 단 게 먹고 싶다고 중얼거리면 어느새 다가와 자는 입에 바나나킥 세 알을 쑤셔 넣는 과잉 친절을 베풀기까지 한다. 먹으면 이렇게 행복해하는데 어떻게 못 먹게 하냐는 뇽의 변(辯)을 듣자니 원망도 못 하겠고, 이번 생에 날씬한 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만 망할 수 없죠!
짠맛을 사랑하는 뇽은 맛의 본질에 있어서 나보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내가 비율 타령을 하며 당 자체가 아닌 가공식품을 찬미할 때, 불 꺼진 부엌의 한 켠에서 소금 알갱이를 손가락에 콕 찍어 먹는 뇽의 뒷모습이 자주 발각되기 때문이다. 마치 순대를 찍어 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흐뭇한 얼굴로 소금 맛을 음미하며 우뚝 서 있다. 처음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는 충격과 공포였는데, 지금은 ‘오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구만’하고 애잔하게 바라보게 된다. 바나나킥을 씹으며 잠드는 사람도 있는데 소금 좀 찍어 먹기로서니 문제가 될까 - 둘 다 문제입니다 -
삼겹살을 먹는 날에는 고기를 굽는 정성 못지않게 소금 기름장을 제조하고, 중국집에서는 간짜장을 시키고, 갈비찜이나 찜닭은 고기가 다 사라져도 남은 소스를 차마 버리지 못한다. 미각으로 분류하면 이렇듯 확실하게 짠맛을 좋아하는데, 막상 좋아하는 음식을 거론하면 짠맛보다는 기름진 맛을 더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최애 음식 상위권에 삼겹살, 치킨, 햄버거, 스테이크, 돈까스가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용돈으로 사 먹은 것이 뭐냐고 이야기할 때 나는 하루 200원의 용돈을 가지고 당시 200원이었던 초콜릿을 사 먹었는데, 뇽은 일주일에 1,500원이었던 용돈을 악착같이 모아 3,500원짜리 돈까스집에 갔다고 하니, 애정의 역사로만 따지면 기름진 음식이 비교 우위임에 틀림없다. 삼겹살은 뇽에게 있어 마치 계란말이나 비엔나소시지를 먹듯 일상적인 반찬이었고, 몸이 아플 때는 죽 대신 치킨을 시켜 먹었다고 하니 참으로 범상한 위장은 아닌 것이다.
자, 이렇게 당 중독자와 소금·기름 중독자가 한 집에 모였다. 처음에는 서로의 최애 음식에 대해 “너의 취향은 존중한다만 나는 그닥”이라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취향이 개조되는 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내가 퇴근길에 기분 낸다고 자주 사 갔던 음식은 떡볶이 혹은 조각 케이크, 과자 몇봉지, 딸기와 생크림 등이었다. ‘달콤한 맛이면서 퇴근길에 바로 사갈 수 있는 음식’이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치킨이나 짜장면 같은 것도 좋아하지만 최애까지는 아닌 데다, 주문해서 배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인내하기가 싫어서 가족 중 누가 주문하자고 하지 않는 이상 잘 먹지 않았다.
뇽은 원래 밀가루 음식이나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많은 여자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빵이나 케이크의 비주얼에는 관심을 갖되 맛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단 거는 많이 못 먹겠다, 금방 물린다.’라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빵이나 케이크, 과자 같은 건 사지 않았고, 과일도 껍질을 까기 귀찮고 과즙이 손에 묻는 게 싫다며 거부했다. 대신 나에게 있어 특별한 날의 음식이었던 치킨을 아무 날도, 주말도 아닌 평일 저녁에 내킬 때마다 주문했다. 번거롭다고 아침밥을 잘 챙겨 먹지 않으면서 삼겹살을 굽는 건 아침부터도 가능하다는 성실한 덕후다. 나는 아침 밥상에 소복하게 쌓인 삼겹살을 낯설어하면서도 점점 젓가락을 대기 시작했고, 뇽은 나를 위해 케이크와 과일을 사 와서는 ‘한 입만’을 시전하다가 점차 양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우리는 동거와 함께 비로소 단짠(플러스 지방)의 세계에 제대로 눈을 뜬 것이다.
이제는 귀찮아서 주문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퇴근길에 내가 버스를 타는 순간 뇽이 배달 앱을 열기 때문이다. - 뇽의 휴대폰에는 전 브랜드 배달 앱이 깔려 있으며, LTE 무제한 요금제를 쓰고 있다 - 그리고 내가 버스에서 내렸는데 잉어빵 트럭이 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치킨이 도착하기도 전에 잉어빵을 애피타이저로 먹는 것이 가능하다. 치킨까지 먹고 나서, 더 이상은 못 먹겠다는 뇽의 옆에서 내가 귤을 까면 최소 한 알은 뇽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렇게 포식을 하고 나서 누구 한 사람이 먼저 침대에 등을 대 버리면 - 대부분 그건 나다 - 나머지 한 사람도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돼”라며 말리는 듯하다가 어느새 같이 누워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사이좋게 인생 최대 체중을 찍어버렸다. 음식 취향이 잘 맞느냐구요? 너무 잘 맞아서 문제입니다. 운동은 날씨가 따뜻해지면 시작하자고 늘 말하지만, 매년 미세먼지가 불어닥치니 이를 어쩌나… 흠흠.